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독일 틸피츠 전함의 은신처로 이용된 노르웨이 피요르드[Used as a shelter for German Battle Ship Tirpitz Norwegian fjords]

슈트름게슈쯔 2014. 8. 31. 12:36



2차 세계대전 중반기 영국 해군의 공격을 피해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를 은신처로 이용하기 위해 항진하는 독일 해군의 대형 전함 틸피츠 





노르웨이 펠케 피요르드에 정박해 있는 독일 전함 틸피츠




영국 공군의 제 1표적이 되어 노르웨이 훼텐 피요르드를 은신처로 이용하여 정박해 있는 독일 전함 틸피츠 - 1942년 3월 





노르웨이 알텐 피요르드의 틸피츠 - 1942년 7월 5일





노르웨이 알타 피요르드의 독일 전함 틸피츠 


그 옆의 피요르는 랑 피요르드이다.





랑피요르드의 전함 틸피츠 - 랑피요르드의 산 밑에는 정박지가 있었다.






노르웨이 카피요르드에 방어망을 설치하고 정박해 있는  독일 전함 틸피츠 - 1943년 3월 




노르웨이 카피요르드에서 영국공군의 공습을 받는 독일 전함 틸피츠 - 1944년 4월 3일 



1944년 4월 영국은 독일 전함 틸피츠를 격침시키기 위해  텅스텐 작전(Operation Tungsten)을 기획하여 항모를 동원한다. 

그것은 항모에 적재된 함재기들을 띄워  독일 해군 전함 틸피츠를 격침시키고자 하였던 것이었다. 

그에 따라 2척의 전함과 2척의 항모및 5척의 호위항모와  2척의 순양함과 

16척의 구축함과 2척의 유조선으로 구성된 함대가 노르웨이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계획보다 하루 빠른 4월 2일 항해 시험을 위해 대기중이었던 틸피츠를 향해 항공기들을 출격시켰다. 

틸피츠에 대한  공격은 영국 페어리 바라쿠다(Fairey Barracuda) 뇌격기들과 

호위기들로 구성된 2개 비행대의 순차 폭격 진행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뇌격기들은 수중 폭발 피해를 입히기 위한 대잠탄, 갑판을 뚫기 위한 철갑탄,

 상부 구조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소형 폭탄들과 승무원 및 

대공병기에 피해를 입히기 위한 일반 폭탄 등 다양한 폭탄들을 적재하였다.

독일 전함 틸피츠의 승무원들은 영국 해군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방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승무원들은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전투기 일부는 갑판에 기관총을 난사하기도 하였으며 05:30에 시작된 공격은 08:00에 끝났다.

영국 해군은 3대의 항공기를 잃었고 틸피츠 전함의 승무원 122명 사망에 300명 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틸피츠 함선 자체의 피해는 상부 구조물 일부에 국한되었다.

 약간의 누수를 빼고는 본체 피해는 거의 없었으며 틸피츠의 이 피해를 수리하는데 2개월이 걸렸다.





노르웨이 알타 피요르드에 정박해 있던중 영국 공군 랭카스터 폭격기에서 투하시킨 


 톨보이 지진폭탄의 공습을 받은  독일 전함 틸피츠 - 1944년 9월 


공중 뇌격을 피하기 위한 알타 피요르드 해안의 그물 방어망과 육지와 연결되게 설치한 다리가 보인다.



영국 공군(Royal Air Force, RAF)과 미국 육군 항공단(United States Army Air Forces)은 

모스키토(Mosquito) 전폭기나 '나는 보트' 쇼트 선더랜드(Short Sunderland), 

B-17 플라잉 포트리스(Flying Fortress) 중폭격기 등을 이용한 작전을 

여러 차례 구상하였지만 대부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영국 공군은 모두 3차례의 공격을 개진하였다. 

1944년 9월 15일 패러베인 작전(Operation Paravane)에서는 

러시아에서 출발한 제 617, 제 9 편대 소속 아브로 랭카스터(Avro Lancaster) 폭격기들을 동원하여

 반즈 웰리스(Barnes Wallis)가 설계한 5톤 톨보이(Tallboy) 폭탄과 

시험 제작된 5천 파운드 '조니워커(Johnny Walker)' 수중 보행 지뢰를 투하하였다. 

연막 덕분에 대부분의 폭탄이 빗나갔지만 한발이 명중, 심각한 피해를 입히면서 

틸피츠는 더이상 연합군 수송선단을 공격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독일은 1944년 9월 23일 해군 참모 회의를 통하여 

틸피츠가 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연합군측에 숨길 것을 의결하였다.







photo from : www.kbismar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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