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하산호 전투 당시 소련군의 높았던 사망자 수치[Battle of Lake Khasan during Soviet Red Army Soldiers High Death toll high]

슈트름게슈쯔 2014. 9. 16. 15:47



하산호 전투에 투입되기 위해 하바로프스크 시내를 행진하는 소련군의 SU-5-1 자주포  - 1938년 


이 자주포는 소련군 T-26 전차의 차체에 122mm 1910-30 곡사포를 장착시킨 형태였다.





하산호 근처에서 나뭇가지로 위장한 소련군의 T-26 전차 




하산호 전투 당시 소련군 포병대 - 1938년 




하산호 전투 당시 나뭇가지로 위장한 일본 관동군의 마쯔다 -GO  COP 1937년형 수송용 바이크 - 1938년 





하산호 전투 당시 미국제 포드 1937형 V8 모델에 나뭇가지로 차체를 덮어 위장한 일본군 장교용 차량 






하산호 전투 당시 파괴된 소련군의 T-26 전차위에 올라가서 차체 내부를 살펴보는 일본군 




하산호 전투 당시 파괴된 일본 관동군의 95식 하고(Ha Go) 경전차 - 1938년 




하산호 전투 당시 일본 관동군 무전병 





하산호 근처의 언덕을 바라보는 일본군 병사 - 1937년 






하산호 전투 당시 일본 관동군이 노획한 소련군의 무기 




하산호 전투에서 사망한 자들의 시체를 묻은 공동표지의 묘비석에 글을 새기는 일본군 병사 - 1938년 8월 




하산 호 전투는 1938년 7월 29일부터 8월 11일까지 일본 점령하의 조선과 만주국및

 소련의 국경인 두만강의 하산에서 벌어진 국경분쟁으로 일어난 전투였다. 

 이 전투의 발단은 일본군의 선제 공격이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7월 29일에 일본군의 공격을 막는 데 성공했으나

 7월 31일에는 일본군의 공격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이후 소련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을 이용하여 일본군에게 반격을 가한다. 

8월 2일부터 8월 9일까지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군은 결국 소련군에게 대패했다.

 10월에 일본 수상은 미국 정부에 평화 협상 중재를 요청했다. 

11월에 소련과 일본, 쌍방은 서로에 대한 군사적 적대 행위를 중지했고,

이후 1939년 5월-9월의 할힌골 전투 때까지 양국의 전투는 없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의 압도적인 화력앞에 일본군은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련군은 승리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피해도 엄천났다.

그래서 하산호 전투의 지휘의 총책임자였던 바실리 블류헤르 원수는

 스탈린의 신임을 잃고 숙청당한후 바로 처형되었다.

역사적으로 일본인들이 장고봉 사건으로 지칭하는 하산호 전투는 

당시 일본군이 대패하여 일방적으로 당한 전투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소련군 전사자 7952명 부상자 2752명으로

 일본군의 사상자를 능가하는 수치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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