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카미카제에 의한 미 해군 CV-13 프랭클린 항모공함의 데미지[Damage in the USS Franklin (CV-13) by Kamikaze attacked]

슈트름게슈쯔 2014. 9. 17. 15:47













카미카제의 공격으로 대파된 미항모 CV-13 프랭클린(Franklin) - 1944년 10월 30일



1944년10월25일 미 항모 st 루이스는 필리핀 레이테만 상공에 홀연히 나타난 일본 전투기 한대를 발견한다. 

그것은 일본 201항공대 소속 모토하루 오카무라의  A6 제로센 이었다. 

미군은 자국 항공모함으로 돌진하는 이 일본 전투기를 보며 경악하는 가운데 뒤늦게 자살공격임을 깨닫는다.  

비로소 미군에게 2차 세계대전식 일본 카미카제 자살폭격의  첫 신호탄이 알려진 것이었다. 

이 날의 카미카제 자살공격으로  일본군은 100여명의 미군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피해를 끼쳤다.  

 5일 뒤 10월 30일에는 미 항공모함 프랭클린이 카미카제의 공격으로 대파되었다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진 일본의 미국에 대한 마지막 방어수단은 

카미카제라는 자살공격의 형태를 드러내었고 이러한 카미카제의 공격에 종전까지 미군함정 34척을 격침시켰다. 

그에따른 일본군 5000여명의 조종사들 또한  카미카제 자살공격의 불귀객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미군은 전쟁막바지에 카미카제의 출현으로 필리핀과 이오지마 오키나와 등지에서

  3000명의 생명이 희생되는 피해를 입어야 했다. 

미국의 일본 본토에 대한 원폭투하의 가장 큰 궁극적인 이유는 태평양전쟁을 

그만 둘수없었던 집요했던 일본의 카미카제 공격에 대한 응징이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카미카제 특공기의 공격을 받아 대파된 미 해군 CV-13 프랭클린 항모공함 - 1945년 3월 19일 





 뉴욕항에서 수리를 받는 미 항모 프랭클린 CV-13 프랭클린 - 1945년 4월 








태평양전쟁 당시 미 해군의 에섹스급항공모함은 요크타운급보다 더욱 발전된 항공모함이었다.

에섹스급 항공모함은  어뢰에 대한 방어능력강화에 가장 큰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비행갑판역시 조금 더 넓어졌다. 

원래 에섹스급은  1944년부터 생산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산시기가 앞당겨졌으며 2차 세계대전중반부터 

대전이 끝날때까지 미국이 엄청난 산업생산능력을 총동원 짧은 기간내에 거의 20여척이 건조되었다. 

에섹스급은 일본군의 함재기들의 공격에 의한 방어를 위해 철갑비행갑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구성이 매우튼튼했으며 비행갑판의 중앙엘리베이터를 사이드로 배치하여 

비행갑판의 중앙이 파괴되었을 때 이착함이 모두정지되어 버리는 것을 최소화 시켰으며

 수리 또한 쉽게 할 수 있게 제작 하였다. 

에섹스급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주력이었으며 속도와 대공방어능력도 뛰어났다. 

그로 인하여 태평양전쟁 당시 에섹스급 항공모함은 단 한척도 격침되지 않았으며 

일본군 함재기에 의한 공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후에도 수리를 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에섹스급 항공모함의 강한 내구성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1943년 이후 일본항공모함 세력의 약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에섹스급 항공모함들은 2차 세계대전후에 대대적인 항공모함들의 개조작업이 이루어저

 경사갑판을 갖춘 신형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다.

1945년 3월 19일 미 해군 에섹스급 항모 프랭클린(CV-13)는 일본 카미카제 

특공기의 공격에 의해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1945년 3월19일 일본 제58기동부대에 대하여 과감한 반격을 시도했다.

 3월19일 오전 7시 10분 미 해군항공모함 프랭클린은 비행갑판과 격납고 갑판에

 무장과 연료를 만재한 함재기들이 가득 찬 상태에서

1대의 카미카제 특공기가 투하한 2발의 250kg 폭탄 공격을 받았다.

그 즉시 엄청난 유폭과 함께 치명적인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미 항모 프랭클린은 우수한 손상관리 시스템과 

손상관리요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겨우 침몰은 면했다.

하지만 724명의 고귀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고 그만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으며 

265명이 부상을 당하고 프랭클린의  함체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역사학자이자 프랭클린 항공모함 죽음의 투쟁 저자인 조셉 A 스프링거는 

최근에 프랭클린 항모의 사상자수를 다시 발표했다.

그가 그동안 조사한 연구 발표에 따르면 1945년3월 19일 

프랭클린 항모에서 사망한 수병들의 숫자는 807명이며

부상자수는 487명으로서 나중에 부상으로 사망한 이들의 수까지 합하면 모두 924명이라고 밝혔다. 

 그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미 항모 프랭클린은 침몰되지는 않았고 

바다위에서 임시수리를 받은후 기지로 귀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 항모 프랭클린은 개보수를 포기했을 정도로 사실상 침몰이나 다름없는 중상을 입었다. 

프랭클린은 귀환후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나서 선체의 앞쪽 비행갑판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비행갑판과 격납고를 철거한후 다시 제작해야 했다.








photo from : www.navsour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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