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희대의 대전차전 - 쿠르스크 대전차전[Battle of Kursk of the World Largest Rare Panzer Tanks War]

슈트름게슈쯔 2015. 2. 16. 14:55



































































































































































쿠르스크 전투 치타델 작전의 종말 - 1943년 7월 ~8월



제2차 세계대전의 중후반기였던 1943년 7월부터 8월까지 무더운 여름에  

동부전선 쿠르스크 돌출부에서 나치 독일군과 공산주의 소련군이 

격돌한 쿠르스크 전투는 소련군이 독일군을 물리치고 

승기를 잡아 독소전쟁의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킨 전환점으로 작용된 전투였다. 

또한 쿠르스크 전투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전이 벌어진 희대의 대전차전이었다. 

 그리고 이 전투는 단일 규모의 전투로도 가장 큰 전투 중 하나였다.

쿠르스크 전투로 인해  1달도 되지않는 기간 동안 단일 전선에서 

독일과 소련 양 군 합계 병력 약 200만명 전차 약 6,000대, 항공기 약 5.000대라는 

가공할 전력이 충돌했던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투였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내리막길로 치달아 

소련 군대에 항복하는날 까지 독일 본토로의 비참한 패주를 계속 하게 된다.

쿠르스크 전투는 독일군 뿐만 아니라 소련군에게도 극심한 전력 손실을 입혔다.

 그러한 예중 하나로  쿠르스크를 방어했던 로트미스트로프의 제5근위전차군의 

전차 수는 600여대에서 50대로 줄어 간신히 방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소련군은 이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긴 했으나  손실은 독일군에 비해 훨씬 많았다. 

소련군의 병력 손실만 해도 독일의 4배가 되었고, 전차같은 경우는 독일군에 비해 거의 7배의 손실을 입었다.

 그런데도 소련군이 승리한 것은 대단한 소련 인구수에 의한 병력의 뒷받침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독일군만 상대하면 되는데 비해 

독일은 이탈리아에 서방 연합군이 상륙했기 때문에 더 이상 동부전선의 소련군만 상대할 수 없었고

 전력의 상당부분을 서부전선에 할애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인구나 자원으로나 소련에 비해 뒤쳐저 있는 독일에게 전략적으로 치명타였다. 

쿠르스크 전투는 여러모로 독소전에서 독일군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투였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 이후에도 독일군은 소련군 상대로 대규모 공세를 펼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독일군의 마지막 하계공세인 쿠르스크 전투 이후로는 

어떤 독일군 부대도 다시는 제대로 된 공세를 펼칠 수가 없게 되었다. 

소련에 대한 독일의 공세는 사실상 이것이 마지막으로 쿠르스크 전투에 

모든 사활을 걸었던 독일군은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결국 최종적으로 베를린을 수비하는 입장에 놓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쿠르스크 전투 이후 독소전쟁의 주도권은 완전히 소련군으로 넘어갔던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쿠르스크 전투는 태평양 전선의 미드웨이 해전과 

북아프리카 엘 알라메인 전투와 함께  

제 2차 세계대전 승패 갈림길의 전환점이 되었던 전투였다.








모스크바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러시아인들이 

대조국 전쟁(The Great Patriotic War -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이라고 

지칭하는 독소전쟁 당시 쿠르스크 전투를 묘사한  전쟁화 





러시아 쿠르스크의 근래 모습 




photo from : www.battleofkurs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