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유보트 U-234 독일 잠수함의 어뢰 폭침[Torpedoes Explosion sinks of the U-boat U-234 German submarine]

슈트름게슈쯔 2015. 3. 1. 15:15



항복한 독일 해군의 유보트 U-234를 호송하는 미국 해군 USS Sutton (DE-771)서튼 구축함- 1945년 5월 14일 


미국 해군의 USS Sutton (DE-771)서튼 구축함은 1957년 2월 2일 대한민국에 대여되어 

장기간에 의한 선박 부품 소모로 인해 1977년 12월 28일 필리핀으로 이송될때 까지 

한국 해군의 강원함(F-72)으로 지정되어 대한민국의 국방을 위해 봉사했다.




미국 동부 해안 메사추세츠 코드 곶에서 미 해군 잠수함 그린피쉬에서 

발사된 어뢰에 의해 폭침되는 독일 해군의 유보트 잠수함 U-234 - 1947년 11월 20일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막바지에 독일 유보트 잠수함 U-234는 

1945년 4월 15일에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산(Kristiansand)항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U-234는 XB타입의 잠수함으로 그때까지 독일에서 건조된 잠수함중에서 제일 큰 크기였다.

 XB타입의 잠수함들은 모두 8대가 건조되었지만 6척은 격침되고 U-234와 U-219만 남았다. 

이 유보트 잠수함들은 모두 높은 건조비용과 느린 제작속도, 자원의 부족의 희생양이 되어 버렸던것이다.  

 U-234의 함장인 중위 요한 하인리히 펠러(Johann-Heinrich Fehler,John "Dynamite" Fehler")는 

이 유보트 잠수함에 중요한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그들은  독일 공군 중장 케슬러(Lieutenant General Ulrich Kesssler), 산트라트 대령및 

네이쉬링 대령, 그리고 제트로켓 전문가와 일본 해군의 장교 

히데오 토노나가(Hideo Tomonaga)와 겐죠 쇼지(Genzo Shoji)가 타고 있었다. 

이 승객들과 화물은 일본으로 보내어져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해 히틀러 총통이 보낸것이다. 

그것은 전세의 악화로 제 3제국의 최후의 날은 다가왔지만 나치 독일은 동맹국인 일본을 돕기로 한다  

 펠러 함장은 가능한한 적과의 교전을 삼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U-234는 2주일간 깊고 조용하게 전진했다. 

영국해협을 지나가고 있을때 막 대서양에 들어설때 함장은 놀라운 무전을 들었다. 

1945년 5월 10일의 되니츠 제독의 항복 메세지가 담긴 초단파였다.

 나의 유보트 맨들..너희는 사자처럼 싸웠다. 

무기를 내려놓아라. 지시는 명확했다. 

가까운 연합군 항구에 항복을 하라는 것이었다. 

 함장은 전의를 상실하고 미국에 항복하기로 한다.

일본의 두 장교는 잡히지 않기 위해 자살을 해버린다.

유보트 U-234는 1945년 5월 14일 포츠머스 항구(Portsmouth)에 나타나

 미 해군의 캐논급  구축함 서튼(USS Sutton)호에 항복을 한다.

   미 해군이 독일 잠수함 유보트 내부의 승무원들과 화물을 

검사하는 동안 알게된 것은 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독일 장군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가족코트와 반짝이는 

부츠를 신고 철십자훈장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U-234의 비밀 수화물이 들어있는 창고가 열리자 경악을 금할수 없었다. 

여기에는 240톤의 문서와, 두대의 메서슈미트 Me-262 슈발버 제트 전투기가 나왔다. 

무었보다 놀라운 것은 10개의 박스(여기에는 "일본군"마크가 찍혀있었다.)가 열렸을 때였다.

 여기에는 560kg의 우라늄이 들어 있었다. 

이 물질은 도쿄에 있는 Osaka and the Riken Laboratory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제트기 개발과 핵폭탄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그후 2년뒤 미국 동부해안까지 견인된 U-234는 1947년 11월 20일 

미국 해군 잠수함 USS-Greanfish (SS-351 Balao 급) 잠수함의 시험용으로 

활용되어 어뢰를 맞고 침몰 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핵무장 꿈은 그것으로 끝이 난건 아니었다.  

1945년 8월 12일 흥남 앞 바다에선 작은 원폭 실험이 있었다.  

이 날은 일본에서 포츠담 선언 수락 여부를 결정하는 어전회의가 열린 긴박한 날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 군부는 수락반대를 일본왕 히로히토에게 요청해 놓은 상태였다.   

2차 대전 당시 참전국들은 경쟁적으로 당시 최신무기인 원폭개발에 뛰어들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1941년에는 육군 주도로 동경대 이화학 연구소에서, 42년에는 해군주도로 

교토제국대에서 원자 폭탄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일본의 원폭개발은 독일 나치와의 유대가 큰 힘이 되었다.  

일본과의 동맹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던 나치는 원폭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우라늄을 지원해주었다. 

그런 연유로 독일잠수함 U-234호는 독일이 패망한 그 순간에도 

우라늄 10박스를 싣고 일본으로 향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군의 B-29의 일본 폭격으로 이화학연구소가 파괴되자, 

일본에서 행해지던 원폭실험의 주요무대는 한반도 이북 지역으로 옮겨지게 된다.

 전력과 우라늄 공급이 용이한 북한 흥남으로 옮겨서 개발을 계속 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흥남에서1945년 8월 12일 원폭 실험은 성공한다.   

흥남 핵실험이 성공한 바로 그 달, 소련군은 한반도 이북으로 진주해왔다. 

일본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소련으로 잡혀갔고 흥남의 원폭개발시설은 소련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후 3 일뒤 일본은 항복한다.   

일본의 원폭실험의 비밀은 왜 히로히토 일본왕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고도 

곧 바로 항복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푸는 단서를 마련해준다. 

히로시마 피폭으로 인해 확연해진 패세(敗勢)를 미국 본토에 대한 

카미카제식 자살원폭을 통해 뒤집을 수 있다는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에 의해 조선의 

흥남에서 비밀리에 행해지던 원폭개발과 여기에 관련된 인력과 시설은 

이후 소련 핵 개발의 모태가 된다. 

그로 인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원폭을 보유하게끔 소련의 핵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소련의 핵개발은 다시 북한의 핵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오늘날 북한 핵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폭침된 독일 해군의 유보트 잠수함 U-234는 2년전이었던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독일의 유보트 10형 잠수함으로 전쟁 말기 일본으로 기술자 및 Me262, 우라늄을 수송하던 중 

독일이 1945년 5월 9일 무조건 항복을 한 후 연합군에 항복한 잠수함이었다.

 원래 유보트10형은 기뢰 부설함으로 설계되었으나, U-234는 기뢰 적재 공간을 제거하고 수송용으로 개조했다. 

이 잠수함의 처음이자 유일한 임무는 우라늄과 기타 독일의 진보된 무기의 기술을 일본에 수송하는 것이었다. 

   U-234는 1945년 3월, 240톤의 화물을 싣고 키일을 출발하여 일본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화물 외에도 2명의 일본군 장교와 일본으로 가는 9명의 독일인 등 모두 11명이 탑승했다. 


 일본인 승객


항공공학자인 겐죠 쇼지 대좌 잠수함 설계 전문가인 히데오 도모나가 해군 대좌. 


독일인 승객


리하르트 불라 소령 - 해공 협동작전 전문가 

프리츠 산드라트(Fritz Sandrath) 공군 대령 - 전 브레멘 대공 방어 사령관 

에리히 멘첼(Erich Menzel) 공군 대령 - 통신 장교. 공군 무관의 기술 보좌관 

하인리히 헬렌도른(Heinrich Hellendorn) 해군 소령 - 해상 대공방어 전문가

 하인츠 슐리케(Heinz Schlike) - 레이더, 적외선 및 방향탐지 분야 과학자 

카이 니슐링 (Kai Nieschling) 공군 중령 - 나치 판사

아우구스트 브링게발트 (August Bringewald) - 메서슈미트 사 선임 연구원. 

Me262, Me163 코메트 및 로켓 추진 분야 

프란츠 루프 (Franz Ruf) - 메서슈미트사 전문가 

카이 니슐링은 도쿄 주재 독일 대사관의 조르게 간첩 사건에 대해 대사관 직원들을 조사하고, 

항해 중에는 다른 승객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들 중 2명의 일본군 장교들은 독일 항복 후 U-234도 연합군에 항복하자 수면제로 자살했고, 

그들의 시체는 바다에 수장되었다.  

1947년 11월 독일 유보트 잠수함 U-234는 미국 메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에서 미 해군 잠수함 그린피쉬의 어뢰 표적으로 격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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