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사이판섬 동굴속의 일본인들[The Japanese people in the island of Saipan cave]

슈트름게슈쯔 2015. 3. 4. 16:03



사이판섬 일본군의 보급품 창고로 이용된 동굴을 확보한 미 해병대 - 1944년 


태평양전쟁 사이판 전투 당시 섬의 언덕 곳곳에 즐비해 있는 석회암으로 형성된 

수많은 동굴들은 일본군들의 미군에 대한 저항의 거점이자 무기 창고및 요새로 사용되었다.




동굴속에 숨어 있다가 미 해병대원들에게 발견되어 생존하게 된  사이판섬 일본인 남성 - 1944년 6월 






동굴속에 숨어 있다가 미 해병대원에게 발견되어 빠져 나오는 민간인들


 



사이판섬 해안 순찰시 동굴에 숨어 있던 일본 민간인 여성과 어린이들을 발견하고 안심시키는 미 해병대원 - 1944년 6월 





사이판섬 동굴속에 숨어 있던 일본 어린이를 구출하는 미 해병대원 - 1944년 6월 21일


이 해병대원은 동굴속에서 아이들의 어머니 일본인 여성 1명과 아들 어린이 4명과 개 한마리를 구출했다.




사이판섬에서 벌어진 전투의 지독한 폭격과 포화의 굉음에 놀란 사이판섬 민간인들과 미 해병대원 - 1944년 6월 






구출한 사이판섬 어린이를 씻겨주는 미 해병대원 - 1944년 





 사이판섬  동굴의 민간인 자살자들 속에서 구출한 어린이를 돌보고 있는 미 제 105 보병연대 A중대 대원들 - 1944년 





 절벽 아래 해안으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이판섬의 일본인들 - 1944년 



태평양 전쟁 당시 사이판 전투는 1944년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 사이판 섬에서 치열하게 벌인 전투로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특히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최초로 전원 옥쇄를 감행해 

사이판에 살던 일본 민간인들까지 모두 자살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사이판 섬은 북마리아나 제도의 섬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곳은 당시 일본 본토를 폭격하는데 가장 가까운 위치라서 미 해군이 

B-29 장거리 대형 폭격기를 발진시킬수 있는  비행장을 건설하기에 조건이 알맞았다.

 그러했던 관계로 사이판섬 전투에 미 태평양 함대에서는 

제5함대 사령관 레이먼드 A. 스프루언스 제독을 총사령관으로 삼고

 마셜 제독은 전투기 지원, 이외에 터너 조이 제독, 홀랜드 스미스 제독,

 랄프 스미스 제독 등이 사령관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병력을 편성해 상륙부대 6만 6779명 등이 참가했고 

그외의 병력까지 합치면 총병력이 7만 1000명에 달했다. 

이때 사이판 섬을 방어하려는 일본군 사령관에는 나구모 주이치와 사이토 요시쓰구 장군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사이판에는 일본군을 따라온 많은 일본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사이판섬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 민간인들의 수는 25000명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이판 전투시 섬의 남쪽 내륙지역에서 미군에 맞서 전투중 사망했거나 

동굴속에 숨어 있다가 사망을 했거나 절벽밑으로 투신하여 자살을 했거나 

여러가지 형태로 모두 22,000명이 사망했다고 전한다.

미국의 공식 수치에 의하면 1만명 정도의 민간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들은 미군이 사이판섬에 상륙하기전에 이미 일본군에게서

미군에 항복하면 지독한 고문과 강간을 당한 후 죽여버린다고 

세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1944년 7월 9일 오후 4시 15분 미 해군의 터너 조이 제독은 사이판 섬이 확보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군의 조직적 저항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후 남은 일본군의 잔당에 의해 많은 미군들이 죽었다. 

이 전투에서 미군과 일본군 모두 많은 피해를 냈고 특히 일본군은 대부분이 전멸했다. 

그리고 이 전투의 여파로 일본에서는 토조 히데키 수상이 사퇴하게 된다.  

한편 미군은 이 단 한 개의 섬을 점령하기 위해 13만 8391발의 포탄과

 5882개의 조명탄, 4대의 야포에서 29만 1405발의 포가 발사되었는데

 이 무게를 합치면 모두 8500톤이나 된다. 

719대의 상륙함 중 204대가 파괴당했고 새로운 전차가 처음 선보여 위력을 발휘했다.  

7월 7일 그 곳에서 미국인들은 도저히 그들이 저지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한 군사보고서에는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들 앞에 있는 아이들을 던지거나, 그들의 아이들을 껴안은 부모들은

 날카로운 바위가 있는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 

당시 마피주변을 지나던 미 해군 순찰함의 사령관은 수면에 떠 있던 수많은 일본인들의 

시신들 때문에 매우 천천히 지루하게 항해를 해야 했다. 

현재 사이판섬의 주민들에게 그 곳은 자살 절벽및 만세 절벽으로 불린다.







photo from : www.dailymail.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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