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미국에서 생산된 전쟁 무기와 유럽에서 노획한 독일 무기 전시회 1944[1944 Photos of the Weapons of War Exhibit of American & German Equipment]

슈트름게슈쯔 2015. 5. 6. 00:29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 워싱턴 D.C 에서 처음 열린 미국산 군장비및 생산무기와 

유럽에서 독일군으로 부터 노획한 무기를 비교 전시해 놓은  전쟁무기 전시회-1944년 5월 















포수석에 앉아 40mm 보포스 대공포를 조작해보는 미 공군 B17 폭격기 편대의 휴잇 T 월래스 대위 - 1944년 



태평양전쟁 초기 휴잇 T 월래스 대위는 미국 공군의 영웅적인 파일럿이었다.

휴잇 T 월래스 대위는 1941년 12월 14일 미 공군 B17 폭격기의 파일럿으로 

일본 해군 함대가 침략해 들어오던 필리핀 루손섬의 최남단 레가스피 해상 폭격에 참전했다.

당시 그의 B17 폭격기는 비행중 엔진에 이상이 발생하여 같이 폭격을 나섰던 다른 5대의 

B-17 폭격기들과 같이 보조를 맞추며 폭격 작전을 같이 수행하지는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문제가 발생했던 B17 폭격기가 엔진 이상의 문제를 해결한후 

그의 B17 폭격기는 이미 다른 폭격기들이 일본 해군 함대에 폭격을 가한 후였지만  

 다시 단독적으로 일본 해군 함대 대해에 폭격을 가하였다,

당시 그의 B17 폭격기는 일본 해군 전투기 12대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추락되지 않고 75마일의 거리를 더 비행하며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일본 해군 전투기의 기총소사를 받아  B17 폭격기의 무전수는 사망해버렸고 

엔지니어는 오른손에 총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기총수 한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다른 기총수 한명이 

2곳의 기총좌를 맡아서 번갈아가며 일본 해군의 전투기에 사격을 가하며 맞섰다.

월래스 대위의 B17 폭격기는  일본 해군 전투기들의 집중 사격을 받고 

항공기 동체가 마치 벌집처럼 무수한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카가얀에 불시착할때까지 정상적인 비행을 유지할수 있었다.

윌래스 대위의 그와 같은 국가를 위한 영웅적인 전투 비행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회담중에 언급한 바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휴잇 T 월래스 대위는 군대에 그대로 근속하다가 

1968년에 비로소 중장으로  퇴역하게 된다.


 

photo from: www.wehrmacht-award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