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考古學]

한국 인천 앞바다 선원 실종 미스터리 사건은 미국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과 닮은꼴

슈트름게슈쯔 2016. 1. 5. 18:07




선원 3명이 사라진뒤 빈 선박만 발견된 어선으로 이동하는 한국 해경 대원들  - 2016년 1월 4일



2016년 1월 대한민국 인천 앞바다에서 144년전인 1872년 미국의 

메리 셀레스트호 선원 실종 사건과 닮은꼴의 사라진 선원들과 

남은 빈 선박 미스터리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1월 4일 한국 인천 영종도 앞바다 한가운데 떠 있던 소형 어선에서 선원 3명이 

한꺼번에 감쪽같이 사라지고 빈 배만 남은 기이한 미스터리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어선에서 침수나 충돌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사고 원인을 추측할 만한 단서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인천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7.93t급 낭장망 어선 A호가 출항 후

 복귀하지 않았다는 신고가 해경에 접수된 시각은 4일 오후 5시 8분께였다. 

 "형이 배를 타고 조업을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며 A호 선장 B(63)씨의 동생이 신고했다. 

 해경은 앞서 4일 오후 5시 48분께 해당 해상에서 비어 있는 7.93t급 낭장망 어선 A호를 발견했다. 

선원 3명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출동한 해경은 40분 뒤인 오후 5시 48분께 인천시 중구 영종도 

왕산해수욕장 남서방 4㎞ 해상에서 어선을 찾았다.  

 당시 조타실에는 히터가, 선체 내외부에는 작업등이 켜져 있었고 

그물을 끌어올리는 양망 기계가 작동하는 등 발견 직전까지 조업을 하던 상태였다. 

그물의 절반가량은 배 옆구리에 걸쳐 있었다.   

그러나 선장 B씨와 B씨의 아들 등 선원 3명은 어선에 없었다.   

A호 역시 침수나 선박 충돌 흔적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또 선체 내에서 혈흔이나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선박 사고나 강력범죄로 인한 실종으로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바닷일을 한 어민들은 그물 작업을 하던 중 예기치 않은 사고가 나 

선원들이 바다에 빠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박태원(56) 연평면 어촌계장은 "어선 상태가 멀쩡하다면 

그물을 설치하거나 걷어 올리던 중 선원들이 바다에 빨려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 계장은 "보통 낭장망 그물 길이는 150m가량 되는데 

그물이 물살에 의해 빠른 속도로 바다에 내려가던 중

 선원 다리 등에 그물이 걸려 함께 빠지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김복남(57) 백령도 연지리 어촌계장은 "선원 한두 명이 그물에 의해 

바다에 빠지는 사고는 많이 봤지만 3명이 한꺼번에 실종된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의아해했다.  

 그는 "하지만 큰 배의 선장은 조타만 잡지만 선원 수가 적은 배는 

선장도 함께 작업을 한다"며 "작업 중 선장 포함 선원 3명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했거나 그물에 걸린 선원을 구조하다가 

선장이 함께 실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기 인천해경 경비구난과장은 5일 "조업 부주의로 한두 사람이 실종된 게 아니라 

3명이 조업 중 실종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실종된 선원들이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과 만나 사고를 당했거나 납북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난 영종도 앞바다는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비교적 먼 거리를 두고 있고 중국 어선이 불법 조업을 하는 곳도 아니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경은 그물 사고에 무게를 두고 실종자 수색과 함께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전날 사고 어선이 설치한 그물 12개를 해경이 바다에서 끌어올렸지만 실종자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해경은 실종자들이 조류에 떠내려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과장은 "선박이 발견될 당시 북서풍이 초속 4∼6m로 불며 

파도의 높이는 1m 정도여서 기상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며 

"3.5노트까지 조류가 빨리지는 해역이지만 정조 때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경은 이날 오전 A호에서 현장감식을 하던 중 B씨 부자의 휴대전화 2대와 

육지에 있는 숙소에서 D씨의 휴대전화도 찾아냈다.

 통화 내역 등을 확인해 정확한 실종 시점을 조사하고 있다.  

인천해경 관계자는 "사고 원인이나 실종과 관련한 단서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실종자 수색 작업에 집중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고 원인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1872년 미국 뉴욕에서 출항한 메리 셀레스트호는 

제노바로 공업용 알코올을 운반하기 위해 선장 1명과 그의 가족, 선원까지 

약 10명을 싣고 목적지 이탈리아로 향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전 메리 셀레스트호는 갑자기 무선이 끊켰고 

이후 10명 전원은 배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놀라운 것은 배 안의 분위기가 방금 전까지 사람들이 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는데 있었다.

 실내가 깔끔하게 정돈된 것은 물론, 심지어 음식까지 차려져 있어 

폭동이나 풍랑에 휩쓸렸을 가능성은 제로였다. 

또 배에는 6개월 치의 음식이 남겨져 있어 

이를 그대로 두고 도망이나 대피를 갔을리도 만무했다.   


1872년 12월 4일 혹은 12월 5일 영국 상선 디 그라티아 호가 

아조레스제도와 포르투갈 사이의 북대서양 해역을 항해하고 있었다. 

그 때 그들은 이상한 배를 발견하였다. 

이 배는 뱃머리의 삼각돛대와 앞 돛대의 스테이세일만을 펼친 상태로 떠다니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디 그라티아호에서는 이 배에 신호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이 배가 "메리 셀레스트"라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선장인 모어하우스는 그 배의 선장 벤자민 브리그스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이 일을 수상쩍게 생각했다. 

결국 선장인 모어하우스는 일등항해사 올리버 데보로 하여금 

몇몇 선원들을 이끌고 저 수상쩍은 배에 승선, 조사를 하라고 명령한다.   

올리버 데보와 그의 일행들은 이 배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몇 가지를 알아냈는데 그것이 정말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선장도, 선원들도 그리고 배에 같이 탑승한 선장의 아내와 2살난 딸도

 모조리 사라진채 빈 선박만 발견되었던 것이다.

 즉 이 배는 유령선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항해일지는 11월 25일까지만 기록되어있던 상태였다. 

즉 11월 26일에 무슨 사단이 났었고 그 이후 이 배는 9~10일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표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이 없던 건 아니기에 보통 생각할 수 있던 것은 

유혈사태나 항해 불능으로 배를 버렸을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도끼 자국과 더럽혀진 칼, 피자국이 약간 발견되었기에 

유혈사태 가능성이 있기는 했지만 핏자국은 정말 약간이라 

유혈사태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든 수준이었고

 배 상태가 깔끔한지라 그 이외의 다른 유혈사태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6개월치 식량과 물, 그리고 화물인 알코올은 1차 조사 기준으로 모두 멀쩡한 상태였다.   

배 안에 물이 가득차있었고 물펌프 3개가 모두 꺼내져있던데다가 

나침반 등의 주요 항해도구가 모두 고장나거나 사라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한 척 있어야 할 구명정도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항해불능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당시 메리 셀레스트호의 항해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던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항해도구 같은 건 유령선이 되버린 후에 고장났을수도 있었던 것이다.   

올리버 데보는 이 배를 지브롤터로 인도하여 해난구조료를 받자고 

모어하우스 선장에게 제안했고 모어하우스 선장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해난구조료를 받기 위해 동의. 두 배는 6일 후 지브롤터에 입항한다. 

그러나 해난구조료는 커녕 지브롤터의 영국 당국에 의해 

메리 셀레스트호는 억류되고 조사를 받게 된다.   

영국 당국은 보험사기를 강하게 의심했다.

 디 그라티아호의 모어하우스 선장과 메리 셀레스트호의 벤자민 브리그스 선장은 

서로 막역한 사이였고 출항 전날 뉴욕에서 같이 식사한 것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배의 문제로 받는 보험료가 배를 파는 돈보다 더 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험사기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애초에 너무 완벽하게 사람만 사라지는 것도 힘들엇고 결국 "원인불명"으로 판정이 난다.   

<그 이후>   선주 윈체스터는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을 겪은 후에 바로 배를 처분했다. 

리고 이 배는 여러 주인을 거치는데 자꾸 사고가 나서 팔리는 일을 반복했다. 

이 배는 13년간 17명의 선주들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고물이 되버리고 만다. 

결국 마지막 선장인 파커 선장은 이 배를 보험사기의 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긴다. 

이제는 이 배가 전혀 침몰하지 않는 거였다. 

아무리 암초에 몰아넣어도 배가 멀쩡한 거였다. 

 결국 이제는 불을 질러보기로 하는데 불 지르고 남은 잔해는

 여전히 꿋꿋이 바다에 떠있었다. 

결국 파커 선장은 침몰을 포기하고 있지도 않은 화물을 가지고 

보험금을 청구하지만 들통이 나고 재판받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재판 받기도 전에 파커 선장이 죽어버린다. 

그리고 이 배는 대양 한가운데에 버려지게 된다.   

한편 메리 셀레스트호가 실종되었을 당시 

영국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파리만 날리고 있던 의사가 있었다. 

오죽 손님이 없으면 이 의사는 세무사한테 

"난 손님이 없어서 수입이 없고 따라서 세금 낼 돈이 없다"고 하고

 세무사가 납득을 하는 지경이었다. 

이렇게 시간만 남아돌던 이 의사는 메리 셀레스트호 이야기를 접하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제이 하버쿡 젭슨의 증언"이란 추리 소설을 써 히트를 치게 된다. 

워낙 히트를 친 나머지 이 소설이 묘사한 광경이 실제 메리 셀레스트호 

수색 당시의 상황이라고 오해되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소설의 히트를 바탕으로 이제 그는 다른 추리소설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바로 셜록홈즈를 쓴 그 유명한 추리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이었다. 


    이 사건은 워낙 괴기하기에 그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위에서도 그 중 몇가지 설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설들도 소개해보겠다.  


 1. 외계인들의 납치 

 2. 돌고래 : 선장의 어린 딸이 돌고래 구경을 좋아해 

메리 셀레스트호에는 나무 베란다가 설치되어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면서 전원 수장됬다는 가설이다. 

  3. 일확천금 : 1916년 자메이카를 들렀던 어떤 선원의 주장이다. 

이 선원은 자메이카에서 메리 셀레스트호의 선원이었다는 노인을 만났다고 한다. 

그 노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우연히 표류하는 선박을 만났는데 

그 배에는 황금이 엄청 실려있었고 선원과 선장 모두 전염병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이들은 그 황금을 가지기로 하고 배를 옮겼고 그 과정에 배에 실려있던 

나무통을 뜯어 그 안의 알콜로 배를 소독한 후 그 배로 모두 옮겨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브롤터에서 원인불명 판정을 받고 제노바에서 화물을 하역할 때 

붉은 떡갈나무 통에 있던 알콜들이 모두 사라지고 흰 떡갈나무 통의 알콜들만 멀쩡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설대로라면 식량과 물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4. 해적 :  바르바리 해적들이 그들을 습격했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바르바리 해적 자체는 19세기 초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의 대대적인 공세와 

1830년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으로 거의 사라진 상태인데다가 

선박 상태가 상당히 깨끗한 편이라 거의 의미없는 가설이다.   

5. 폭발 : 붉은 떡갈나무로 만든 통은 하얀 떡갈나무로 만든 통보다 

액체를 쉽게 머금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붉은 떡갈나무 통은 알콜 원액을 머금었고 

그러다 통에 있던 철제 밴드끼리 서로 마찰하면서 열을 일으키고, 

애초에 폭발 온도가 엄청나게 낮은 에탄올이 그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폭발. 

배가 폭발하는 걸로 착각한 선장과 선원, 선장의 가족들이 모두 대피했는데 

배는 멀쩡한 상태로 유유히 떠나갔다는 이론이다. 

실제 2005년의 실험에서 나무통을 그슬리지 않고 에탄올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됬다고 한다.   

6. 유독가스 : 알콜을 머금은 통에서 유독가스가 발생하였고 안되겠다 싶은 선장과

 그 가족, 선원들은 잠시만 대피하기로 하고 구명정과 배를 밧줄로 묶고 

구명정으로 대피했는데 하필 로프가 끊어지거나(혹은 풀어지거나) 해서 

배는 유유히 떠나가고 구명정에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죽었다는 가설이다.    

7. 폭풍우 : 5,6번과 비슷한 가설로 폭풍우가 몰아치자 브리그스 선장은 

알콜의 폭발 가능성을 우려, 사람들을 구명정에 대피시켰는데 

배와 구명정 사이의 밧줄이 끊어지거나 혹은 밧줄로 잇는다는 것을 

잊어먹는 바람에 배 자체는 멀쩡했지만 구명정의 사람들은 비바람이 삼켜버렸다는 이론이다.  

 이 외에도 환각 등등 많은 설이 제기되고 있다. 1

953년 대서양의 어느 무인도에 표류됬다가 구조된 프랑스 선원들이 

자신이 표류한 무인도에서 브리그스란 이름이 쓰여진 이름표가 

꽂힌 옷을 입은 해골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일도 있었습니다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메리 셀레스트호는 

호사가들의 입을 아직도 오르내리고 있다.








photo from : news.joins.com

                                  www.smithsonianm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