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일본군이 피로회복제로 이용했던 마약 필로폰- Imperial Japanese Army used pick-me-up Philopon Methamphetamine

슈트름게슈쯔 2016. 5. 13. 13:14




2차 세계대전 당시 상업적으로 판매되었던 일본의 히로뽕(메스암페타민) 광고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마약의 1종인 필로폰은 일본 도쿄대학 의학부 교수 

나가이 나가요시 교수가 최초로 발견한 물질이었다.

필로폰은 화학물질에 의한 감기약을 개발하던 도중에 뜬금없이 만들어진 물질이었다. 

이 물질은 축농증,기침에 효과가 있었지만 임상실험을 하다보니 

 연구도중 강력한 각성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결국 일본의 제약회사 대일본제약에서 히로뽕(ヒロポン)이라는

 이름의 '피로회복제'로서 상품화되기에 이른다. 

물론 히로뽕은 진짜로 피로를 회복해주는 편리한 물건이 아니라 

그저 피로를 잊게 만드는 각성제에 지나지 않았다.

 히로뽕이라는 상품명은 그리스어로 '노동을 사랑한다.'라는 

의미의 필로포누스(Philoponus)에서 유래한 상품명이다.

 대일본스미토모제약사에선 흑역사로 완벽하게 터부화 되었다. 

 일본 내에서는 등록상표 364236-1이며, 1951년 제정된 각성제단속법에 의거, 

한정된 의료분야를 제외하고는 제조, 판매 및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 히로뽕 발매 당시에는 주사와 알약 두 형태가 있었으며,

 1949년 당시 주사형태는 10회분 81엔 50센이나 암시장 가격이 100엔 이상에 형성되었고

 알약은 20개입 21엔, 50개입 43엔의 정가에 팔리고 있었다. 

알약은 암시장에서는 취급하지 않았다.  

필로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 연합국 가리지 않고 무분별 사용되었으며

 전쟁을 죽입시다 전쟁은 나의 원수 진짜 전투 자극제로서 

일본에서는 "히로뽕", "뽕"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나치 독일의 경우 테믈러베르켄에서 페르비틴이라는 상품명으로 생산해

 병사들에게 공급하였으며, "탱크 초코렛(panzerschokolade)," "슈투카 알약(Stukatabletten)," 

"헤르만 괴링 알약(Hermann-Göring-Pillen)"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각성제로 널리 이용되었다. 

당시 필로폰에 대한 마약 성분이나 중독등에 대한 우려는 무지로 인하여 자연스레 무시당했다. 

순도가 매우 낮으니 위험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이었다.

도리어 병사들이 피로를 잊고 겁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사용이 권장되었다. 

해군 함정에서 야간 견시원들에게 지급하기도 했으며, 군대 밖 군수공장 야근때도 사용하였다.

 민간에서는 신문에 광고까지 해가며 각성제로 판매되었다.  

카미카제 공격을 할때 출발하는 일본군 조종사들에게 마지막 술이라고 따라주는

 정종에도 암페타민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당시 일제가 얼마나 막장인 집단이였는지 

강조를 할 때 써먹기도 하는데, 사실 이때뿐만 아니라 그냥 일상적으로 먹었다. 

숙련공들을 다 징집해서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보내고 

공장의 빈자리는 학생들로 채워 필로폰을 투약시켜 가며 야근시켜 전투기를 제작했다.

  전후 일본에서는 필로폰의 중독 피해가 심했으며, 당시의 사회상황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도 퍼져나가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이는 히로뽕이 1951년까지 사실상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피로회복제로서 판매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금지시킨 게 그나마 1951년의 일이었다.

 히로시마 원폭과 전후 일본을 다룬 맨발의 겐에 대략 그 상황이 묘사가 되어 있다. 

 현재 마약과 관련해서는 사용자든 판매자든 철저히 단속하고 관리하는 대한민국이지만, 

1970년대까지만해도 메스암페타민을 만들어서 수출했다. 

주된 수출대상은 중국과 일본으로 양국에서 마약에 대한 법률이 정비되자 

상대적으로 관리체제가 허술했던 한국에서 생산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 한국에서도 대대적인 마약사범의 체포에 나섰고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것보다 다시 수입하는 쪽의 비중이 더 많아졌다.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에게 일제강점기에 암페타민같은 

마약(일부 전기문에서는 아편으로 언급했다)류를 의약품으로 판매하면 

돈이 된다고 꼬드겼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유일한 박사는 국민들에게 해를 끼친다며 과감하게 거절했다. 

메스암페타민이나 아편같은 마약류들의 심각한 부작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유일한 박사는 그야말로 한국의 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