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맥아더와 맥아더역 배우들- Douglas MacArthur and MacArthur movies actor

슈트름게슈쯔 2016. 8. 23. 08:09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 1880~1964)



더글러스 맥아더는 1880년 아칸소주 리틀록의 병영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이민한 

이민자 출신 군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더글러스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 2세(Arthur MacArthur Jr.)(중장 예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유년기부터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 아서 2세는 미군 장교로 미국-스페인 전쟁과 미국-필리핀 전쟁에 참전하였고, 

1900년 미국이 필리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의 군정 총독으로 재직한 바가 있었다.

 한때 예편하고 돌아와서 법률 공부를 했다가 다시 군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버지 아서는 행군 때마다 자신도 사병들과 똑같이 걸음으로써,

 어린 맥아더에게 지휘관이 먼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군인 정신을 가진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웨스트포인트에 진학했다. 

그의 어머니 메리 하디 맥아더(Mary Pinkney Hardy MacArthur)는 

자신의 사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들의 교육에 매달렸다.

아들이 웨스트포인트에 진학했을 때에는 웨스트포인트 근처에 

방을 얻어 숙식하면서 아들을 뒷바라지하였다.  

맥아더는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웨스트포인트 재학 당시 

만연한 학교 내 폭력문제로 방황하기도 하였다.  

당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는 권투나 체벌을 빙자한 선배들의 가혹 행위 때문에

 일부 사관 후보생들이 자살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폭력이 심각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지시로 의회에서 청문회가 벌어졌는데, 

이는 청년 맥아더에게 심적인 방황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맥아더는 학교 폭력 피해자의 편에서 가해자들을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군인으로서 입을 무겁게 해야 할 것인가로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맥아더는 곧 양심에 따라 가해자들을 고발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한편 웨스트포인트에 재학 중일 때에도 그는 다소 동료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웨스트포인트 출신들의 결혼식은 대개 신랑과 교우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교 행사였다. 

그런데도 그의 첫 번째 결혼식은 친구와 동료 하객이 너무 적어서 주목을 끌 정도였다. 

한편 그는 가식적인 성격을 지독하게 혐오하여

,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이가 눈에 띄면 대놓고 지적하고 비꼬기도 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친구보다는 적을 상당히 많이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4년 동안 역대 최고 점수인 98점대의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맥아더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웨스트포인트 대선배였는데

 졸업 때 성적은 더글러스가 수석인 반면 아이젠하워는(Class 1915) 132등이었다. 

한편 그는 운동을 좋아하여 교내 야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맥아더 원수의 7가지 명언    


1. 기습이야말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긴요한 요소이다   


 2.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3. 나이가 60이다 70이다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늙었다 젊었다 할 수 없다.

 늙고 젊은 것은 그 사람의 신념이 늙었느냐 젊었느냐 하는데 있다.   


 4. 사람은 다만 나이를 먹는 다고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저버리기 때문에 늙는 것이다. 

사람은 햇수와 더불어 피부에 주름이 가겠지만 

세상일에 흥미를 잃지 않는다면 마음에 주름은 가지 않을 것이다.   


 5. 마지막까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용기다. 

그것은 도덕적인 용기, 확신을 갖는 용기, 꿰뚫어 보는 용기이다.

 세상은 항상 용기있는 사람을 모함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군중의 고함에 맞서는 양심의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역사만큼 오랜 싸움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용기는 역사를 이끌어간다.  


  6. 인천 상륙작전이 5,000 대 1의 도박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그런 모험에 익숙해 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며 적을 분쇄할 것이다.    


7. 맥아더 원수의 기도 


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 .  

약할때 자기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하소서.  

그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표는 높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그위에 유머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자기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데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아비인 저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하소서







Macarthur 1977
















 MacArthur -1977(국내 개봉명 : 전웅 맥아더)  맥아더역의 그레고리 펙(Gregory Peck) 






INCHON 1981








인천(INCHON)  1981- 맥아더역의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Emperor 2012 
















Emperor 2012 - 맥아더역의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




















인천상륙작전  2016 - 맥아더역의 리암 니슨(Liam Neeson)




인천 자유공원을 찾아 맥아더 동상에 헌화한 뒤 그 옆 현충탑에 새겨진

 전몰장병 상을 어루만지고 있는 리암 니슨 - 2016년 1월 16일 


그는 한국의 인천상륙작전 영화 제작진에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저버리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는

 맥아더의 이 명언 꼭 넣어달라고 하여 시나리오도 바꾸게 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제 무기를 앞세워 한반도 이남 38도 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기습 침략하여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동족을 대량 학살하며 국토를 피로 물들이고 불과 한달만에 

남한의 90% 전역이 북조선 김일성의 공산군대에 넘어가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해 적화되기 직전 

인천 상륙작전으로 남한을 구출하여 

기사회생시킨 맥아더 원수가 남긴말 



인천 상륙작전이 5,000 대 1의 도박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그런 모험에 익숙해 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며 적을 분쇄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사라진 노병을 2016년 [인천상륙작전]으로 

극장에서 나마 국민들에게 다시금 일깨웠다.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결코 맥아더를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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