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 병사의 전리품이었던 일본군의 해골 US Navy Soldiers war trophies Imperial Japanese Soldiers Skull during the Pacific War

슈트름게슈쯔 2017. 2. 19. 15:56



태평양전쟁 당시 과달카날 제도 솔로몬섬 전투에서 미군 해병대의 화염방사기 공격에 파괴된

 97식 치하 전차 앞에 걸린 화염에 그슬린 일본군의 사체 - 1942년



1943 년 2월 1일 미국 LIFE지는 과달카날 전선에서 종군 기자 랠프 모스가 찍은 사진을 발행하여

 미국 해병대가 일본군 97식 치하 경전차의 포탑 아래에 세워진 일본군 사체의 머리를 보여 주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일본군 적들이 미국 군인들에게 잔인한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불신감으로 뭇 사람들의 항의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LIFE지의 편집자들은 전쟁은 불쾌하고 잔인하며 비인간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잊어 버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팔라우섬에 미군이 설치해놓은 일본군 해골 경고 표지판 - 1944년 10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일본군 해골 전리품 채취 작업 




태평양전쟁 말기 뉴기니 미 해군 341호 어뢰정 선체에 마스코트로 장착한 일본군의 해골 전리품에 

담배 한개피를 물리는 오하이오주 컬럼버스 출신의 E.V 맥퍼슨 중위  - 1944년 4월 30일 




태평양전쟁 당시 타라와섬 야자수에 걸린 미군의 일본군 해골 전리품 - 1943년 12월




태평양전쟁 말기 보이프렌드 미 해군 장교로 부터 전리품이었던 

일본군 해골을 선물받은 미국 여성 나탈리 니커슨(Natalie Nickerson)

- 1944년 5월 22일 LIFE 잡지에 실린 사진 




제 2 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의 일부 미국 군인들은 

전장에서 사망한 일본 제국주의 군대 병사의 시체중 일부를

절단하여 전리품으로 본국에 가져 가기도 했다.  

일본인 역사 학자들은 그 현상을 미국 언론 매체에 숨어있는 인종 차별적인 일본인에 대한 비인간화 운동으로 돌렸다. 

그것은 전쟁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경험했던 전쟁 혐오및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잔혹성에 대한 복수적 욕망등

그러한 요인들을 통털어 소위 전리품으로 획득했다고 하는 심리가 그 저변에 껄려있었다.

 1942 년 9 월까지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적의 육체의 어떤 부분도 기념품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원칙을 위반하는 미국 군인은  "엄격한 징계 조치"에 직면하게 될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사체 전리품 채취는 태평양 지역 전전선에서 전쟁을 통해 계속되었다.

훗날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인들이 채취한 일본군 병사들에 대한 전리품 유골의 적절한 장례를 

요청했고 또한 다른 유골들에 대한 지속적인 발견과

발견된 일본인들의 유골들을 일본 본토로 송환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노력이 계속되었다.

1944년 미국의 시인 Winfield Townley Scott는 로드 아일랜드 지역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그의 신문사 사무실에는 일본군 해골 전리품이 놓여 있었다.

그는 미군 선원이 해골 전리품을 제작하는 한가지 방법을 설명했다.

우선 해골의 머리 껍질은 벗기고 선박의 뒤에 있는 그물로 그것을 께끗이 닦아 

청소를 하여 광택을 내고 마지막에는 양잿물로 문지른다.

 1927년에 미국 롱 아일랜드에서 프랑스 파리를 쉬지 않고 최초로 단독 횡단하는 데 성공했던 

미국의 비행기 조종사이자 탐험가였던 찰스 린드버그는 1932년 그의 만 2살난 아들인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가 유괴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찰스 린드버그 (Charles Lindbergh)는 그의 일기장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려 준다. 

1944년 8월 14일에 입국한 그는 해양 담당관과 대화를 하면서

그가 보았던 많은 일본군 병사들의 시체들중 귀나 코가 베어져 있는 사체들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개골의 경우  대부분은 갓 살인한 일본군 병사에게서 수집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은 이미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백골화가 진행된 일본군 사체 더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린드버그는 또한 일기에 뉴기니의 공군 기지에서의 경험을 언급했다. 

뉴기니에서는 군대에 잔존한 일본군 포로들을 일종의 취미로 죽였고 

흔히 조각품를 만들기 위해 다리 뼈를 사용했다고 했다.

미국 군인들이 취했던 전리품 사냥(trophy hunting)의 일반적인 형태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역사학자 존 W. 다워 (John W. Dower)는 귀는 가장 흔한 형태의 전리품이었으며 

두개골과 뼈는 덜 흔하게 수집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두개골은 인기있는 전리품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사체를 운반하기가 어렵고 인육을 제거하는 과정이 불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견해에 대하여 다른 역사학자인 사이먼 해리슨은 동의했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또 다른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기념품을 만들기 위해 

적의 두개골에서 인육울 끓여서 제거시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하며

전리품으로 흔히 적의 귀, 뼈 및 치아등도 수집되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일본군 신체 부위 수집 운동은 1942 년 9 월초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미국 정부에 일본군의 사체 일부를 전리품으로 삼는 

기념 촬영에 대한 징계 조치를 촉구했다.

역사학자 사이먼 해리슨은 그것은 범죄라고 결론내렸다.








photo from : WW2Wrec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