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Tank

일본군 89식 이고 전차를 노획한 네덜란드령 동인도 군대 Captured Japanese tank Type 89 I-go in the Dutch colonial troops Dutch East Indies

슈트름게슈쯔 2017. 9. 14. 20:01



2차 세계대전 당시 슈타이어-만리허 M1895 소총으로 무장한 

네덜란드령 동인도(1619부터 1949년까지 존재)군의 보병  - 1941년 12월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수마트라섬 팔렘방에서 항복한 네덜란드군 장교에게 

남부 권총을 들이대어 겨누고 있는 일본군 전차 지휘관 - 1942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 수마트라섬 팔렘방의 유전지대를 장악한 일본군- 1942년 


제 2차 세계대전 초기 1940년 9월 인도차이나 반도 

북부의 침략에 의한 미국의 석유 금수조치에 의해

 석유 수입이 차단 당했던 일본의 최대 목표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전이었다. 

1942년 초 일본군의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대한 침공은 신속하게 전개되었다. 

그들은 1941년 12월 15일 브루나이 침공을 시작으로 

뒤이어 영국령 사라와크(Sarawalk – 현재 킬리만탄 섬의 말레이시아 영토 부분)의

 유전지대를 노린 일본군이 상륙했고 24일에는 쿠칭(Kuching), 

1월 11일에는 북부 보르네오의 타라칸(Tarakan)까지 일본군이 접근했디.

 이후 1월 24일에는 발릭빠빤(Balikpapan)의 유전지대가,

 2월 10일에는 반자르마신(Banjarmasin)이 함락되면서 

자원의 보고 보르네오섬 전체가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하지만 일본군은 사용가능한 유전은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원유 확보는 남방작전을 수행하는 일본군의 최대 과제였다. 

일본군은 정유시설을 파괴하면 그 일대의 모든 유럽인들을 참수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그러한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로열더치쉘의 

민간 원유기술자들은 일본군이 점령하기 전 발릭빠빤의 유정들과 정유시설들을 모조리 파괴했다..

네덜란드  석유 기술자들은 철수하면서 유전시설의 약 88%를 파괴했던 것이다. 

일본은 이 유전지대의 극히 일부분 밖에는 복구를 시킬수가 없었다.

그것은 새로운 침략자에게 알맹이가 빠진 쭉정이격이었다. 

하지만 팔렘방 전투시 네덜란드령 동인도군대의 참패로 

쁠라쥬  인근의 로열더치쉘 석유회사 정유시설은

일본군에게 고스란히 넘어가 버리게 된다. 

일본군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최대의 유전지대인 수마트라섬 팔렘방에 

공수부대를 투입시켜 유전지대를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팔렘방 전투는 1942년 2월 13일에서 15일까지 팔렘방과 그 인근지역에서 벌어졌던 전투로 

일본군은 쁠라주(Pladjoe) 인근의 로열더치쉘 석유회사의 

정유시설 강탈을 주목표로 두고 있었다.

 일본군은 연합국에 의한 원유 수출금지령이 발동된 상태에서 

팔렘방 유전지대의 양질의 원유와 엄청난 매장량과 그에 딸린 정유시설, 

그리고 팔렌방 인근에 건설된 군용 비행장 등은 

일본군에게 너무나 매력적이고도 중요한 전략적 목표였던 것이다.

팔렘방과 팔깡란 벤뗑 비행장 사이에 투하된 일본 해군 세이찌 구메 대령의 

공수부대 정진부대원 180명은 보급품 지원에 차질이 생기고 

중간에 500명 병력규모의 연합군 장갑차 부대를 만나 비행장 점령에 난항을 겪었지만

 쁠라쥬 정유시설 서쪽에 안착한 90여명의 병력은 정유시설 전체를 

별다른 시설손상 없이 장악하는 전과를 올린다. 

네덜란드령 동인도군은 반격하여 이 시설을 일단 탈환했지만 

큰 인명손실을 입어 더 이상 일본군과 공성전을 치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네덜란드령 동인도군은 시설 파괴를 시도해 저유탱크 일부에 화재를 일으켰지만

 정유시설과 유정은 대부분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결국 고스란히 일본군 손에 넘어가 버리고 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일본군의 

89식 이고 전차를 노획한 식민지 주둔 네덜란드령 동인도군 - 194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