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 1935년 시인 파인 김동환이 나라 잃은 망국의 한 맺힌 설움을 표현한 시
송화강 벳노래로 잘 알려진 하얼빈의 송화강까지 진군한 소련군 - 1945년 8월
일본에 점령되었던 만주의 도시 하얼빈은 1945년 8월 20일 소련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
소련군은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약 70만 명의 병력을 투입시켜 만주를 점령했다.
송화강 뱃노래 - 김동환
새벽 하늘에 구름장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다 보면 고국이 천리런가.
에잇 에이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온 길이 천리나
길 길은 만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야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우더냐
장부도 따라 운다.
일본의 괴뢰 국가 만주국의 하얼빈역을 점령한 소련군 - 1945년 8월 16일
동청철도(東淸鐵道 : Chinese Eastern Railway)는 하얼빈을 중심으로 하여
만저우리 (만주리)와 쑤이펀허 (수분하), 그리고 다롄(대련)을 잇는 철도 노선이다.
1911년 중화민국이 성립한 뒤에는 중동 철도(中東鐵道)로 불렸다.
러시아 제국은 시베리아 남동부의 도시 치타를 출발해 만주 북부를 횡단하여
아이훈조약으로 1858년 청나라에게서 빼앗은
동방을 지배하라 라는 이름의 아무르 지역의 부동항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철도 노선을 계획하였다.
교활한 러시아는 청나라가 제 2차 아편 전쟁(1856년 - 1860년) 중인 것을
기회로 청나라의 전권대사 이산을 협박해서 아이훈 조약을 맺게 하였다.
아이훈 조약은 1689년의 네르친스크 조약을 뒤집은 것으로,
러시아 제국은 이 조약을 구실로 청나라로부터 스타노보이 산맥(외싱안링 산맥: 外興安嶺)과
아무르 강(헤이룽 강: 黑龍江) 사이의 넓은 지역을 빼앗음으로써
시베리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60만km2(한반도 면적의 약 3배)의
땅을 확보하고 태평양으로 향하는 부동항(블라디보스토크)을 확보할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요동 반도를 영유하는 것을
막은 대가로 청나라와 협상해 동청철도 부설권을 얻는다.
1898년 3월 러시아는 여순과 대련 일대를 조차 하고
하얼빈에서 대련에 이르는 남만주철도의 부설권도 얻었다.
하지만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지고, 그에 따라 맺어진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장춘 이남의 남만주철도는 일본의 소유가 되었다.
1918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자, 소비에트 연방 (소련)이 동청철도의 이권을 계승했다.
요즘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만주 하얼빈 사이에 비행기,
버스와 철도편이 모두 있을 정도로 교통이 편리하다.
그러나 1909년 당시만 해도 동청철도(東淸鐵道)의 개통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난 철도가 유일한 길이었다.
동청철도(東淸鐵道)를 이용하여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의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는
제 1대 조선통감이었던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와 회담을 하기 위해 하얼빈역에 내렸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자였던
조선의 항일 독립투사 안중근이 러시아의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가
보는 앞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시킨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거사 장소였던
만주 하얼빈역을 소련군은 그로부터 36년이 지난후 점령하게 된다.
일본에 점령당한 후 만주국이란 괴뢰국가로 세워졌던 만주를 해방시킨
또 다른 점령군이었던 소련군은 만주 점령 이후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여 수탈과 강탈및 민간인 살해,
부녀자 강간등 온갖 악랄한 만행을 저질렀다.
소련군이 하얼빈을 점령하기 십수년전이었던 1920년대 후반
만주 하얼빈에서는 최씨 성을 가진 동족 조선인 남성을 살해한
흉악한 연쇄 살인범이 한명 있었다.
그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소련으로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그 살인범은 14세때 부모를 따라 중국 만주로 이주하여 중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반 친구의 돈을 훔치고 친구를 살해한 뒤 도주한 김성주란 자였다.
동족 친구를 살해했던 김성주는 18세때 중국공산당의 초기 지도자인
리리싼을 만나 중국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리고 1931년 10월 리리싼은 김성주의 이름을 김일성이란 이름으로 바꿨다.
이후 김성주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백두산 일대에서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김성주의 빨치산 활동에 만족한 리리싼은 이후 김성주를 고위직으로
승진시켰고 그에 따른 관련된 소문은 소련 스탈린의 귀로 들어간다.
김일성은 인물이 영특하지는 않았으나 스탈린에게 높은 신임을 얻을수 있었다.
스탈린은 소련에서 김일성을 3년 동안 혹독하게 훈련시킨후
그들의 괴뢰국가인 북조선 인민공화국 수장으로 만들었다.
이후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남한을 적화통일 시키기 위한 전쟁을 허락하며
그에 대한 대량의 전쟁물자를 지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