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 병기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철수 1979 ~1989 Soviet invasion and withdrawal from Afghanistan 1979 ~1989

슈트름게슈쯔 2017. 12. 17. 02:27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 -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벌였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79년 12월부터 1989년 2월까지 9년 이상 지속된 전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히딘이라 불리는 반군세력은 

기독교 및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소련의 괴뢰정권인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과 소련군의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9년 이상 지속된 전쟁 동안 최소 85만 명에서

 최대 15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도망해 난민이 되었다.  

1978년 누르 모하마드 타라키가 쿠데타를 일으켜 

친소정권을 세우고 여러 급진적인 근대화 개혁을 시도했다.

이에 저항하는 전통 무슬림들의 반동을 정부는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소련이 침공하기 이전에 이미 정치범 수천 명이 체포되고 2만 7천여 명이 처형당했다. 

1979년 4월, 아프가니스탄 대부분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친소정권은 일부 도시지역을 제외한 모든 영토에 대한 통치력을 상실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요청을 받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치하의 소련 정부는

 처음에는 군사고문 정도만 파병하려 했으나, 

1979년 12월 24일 제40군을 배치하면서 전면 침공에 들어갔다.

그후 수도 카불에 도착한 소련군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하피줄라 아민을 죽이고(폭풍333호 작전) 

바브락 카르말을 후임 대통령으로 세웠다.

1980년 1월, 이슬람 협력 기구 가맹 34개국의 

외무부처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UN 총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104대 18의 표결로 통과시켰다.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은 인접한 파키스탄과 중공을 통해 

막대한 양의 물자와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했고,

미국과 페르시아 만의 아랍 군주국들이 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무자히딘들은 소규모 세포단위의 유격전을 펼쳤고, 

소련군은 도시지역과 주요 도로들만 장악했을 뿐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80%를 차지하는 향촌지역은 소련군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소련군은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고 반군들의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시골 마을들을 파괴시켰으며 

관개시설을 파괴하고 수백만 개의 지뢰를 매설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반군과 민간인을 막론하고 수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소련군은 108,800 명으로 늘어났으며 

영토 전역에서 싸움이 벌어졌으나 소련이 부담해야 할 군사적 외교적 비용은 너무나 컸다.

 1987년 소련의 새 서기장으로 집권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소련군은 1988년 5월 15일 철수를 시작하여 

1989년 2월 15일 전원이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빠져나갔다.  

이 전쟁은 대개 냉전의 일부분으로 취급되며, 장기간 지속된 비대칭 전쟁이었고 

침공한 강대국이 결국 패퇴했다는 점에서 서방세계에서는

 “소련판 베트남 전쟁”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소련군 - 1989년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1988년 5월 15일 시작되어 

1989년 2월 15일 완료되었다. 

철수 작전 책임 지휘자는 보리스 그로모프 상장이었다.  

1988년 4월 15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3개 조항에 걸친 상호 관계 원칙에 합의했다(제네바 합의). 

이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자발적 귀환을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그 정착에 상관하지 않을 것을 그 골자로 했으며, 그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외국 군대의 철수가 5월 15일 시작되었다. 

미국과 소련도 상호간에 어떠한 형태의 간섭과 방해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조인했다.  

이후 5월에서 7월까지 3개월에 걸쳐 병사 50,183명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갔고,

 이후 8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7개월에 걸쳐 병사 50,100명이 마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다.  

국경을 넘어가는 소련군을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이 공격하여, 

철수 과정에서 소련 병사 523명과 아프가니스탄 전사 1,200여명이 사망했다.

1989년 2월 15일, 10개월 전에 조인된 제네바 합의에 따라 

모든 소련군 병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갔다. 

상징적인 행동으로서 철수 책임 지휘자인 그로모프 상장이 아프가니스탄-우즈베키스탄

 다리를 마지막으로 건너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소련 영토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