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 병기

6일 전쟁 당시 사용된 106mm 무반동포 장착 윌리스 지프 - Six days War used US 106mm M 40 Recoilless rifle mounting M 38 Willys Jeep

슈트름게슈쯔 2018. 8. 22. 15:18




6일 전쟁 당시 동 예루살렘으로 진군하는 이스라엘군의 프랑스제 AMX-13 경전차의 

장포신 75mm 전차포를 장착했던 M 50 슈퍼 셔먼전차와 

미국제  106mm 무반동포 장착 포드 M151A1C Mutt 지프 - 1967년 





제 3차 중동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아랍 연합군의 소련제 전차 사냥에 

사용했던  미국제  106mm 무반동포 장착 M38A1 윌리스 지프 - 1967년 




제 3차 중동전 6일 전쟁 당시 가자 지구에 집결해 있는 이스라엘군의 

106mm M40A1 무반동포 장착 M38A1 윌리스 지프와 차체 앞에 붙여져 있는 

아랍연합군의 맹주였던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 사진- 1967년 6월 6일 



제 1,2차 중동전쟁으로 인해 국제정세나 여론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당시 세계의 눈치를 많이 보던 이스라엘의 상황에서 

전쟁 발발 시 UN의 개입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UN이 개입하고 중재하는 순간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전을 중단해야 했다. 

따라서 타국 영토를 전쟁을 벌여 빼앗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UN이 개입하기 전의 단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최대한 많은 영토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아랍연합국을 상대로 장기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1967년 제 3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자 이집트 언론에서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에 지고 있던 일본이 했던것처럼 이집트군은 가짜 승리를 계속 보도했다.

그러한 이집트의 거짓 방송은 도리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되게 된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승전보가 세계에 최대한 늦게 알려지는 것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지난 18년간 불리한 전세를 한 번에 역전시킬 선제타격론 교리가 연구되어 있었다.

 만약 개전 48시간 동안 상대의 공군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사막에서의 전쟁은 이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만약 이집트가 먼저 선제타격을 가해 이스라엘의 공군력에 큰 타격을 준다면 

좁은 영토와 부족한 인적자원을 가진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 될 처지였다.

 그러한 작전 계획을 세웠던 이스라엘은 아랍연합국의 

공군 비행장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하게 된다.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 공군은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한 레이더 기지의 교대시간을 노려 

아랍 연합군 중 최대 전력을 자랑하던 이집트 공군에 대한 기습 폭격을 감행했다. 

약 3시간에 걸친 폭격으로, 이집트 공군은 450여 대의 항공기 중 300여 대를 상실하고, 

공군기지와 레이더 기지 등을 모조리 잃는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단 3시간 만에 이집트 공군력의 80%를 격파한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이집트 영토를 오가며, 이집트군을 초토화시키며 돌아다니게 된다. 

그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최종적 전리품으로

 자국 영토의 3배에 달하는 영토를 점령하게 된다.

그러한 형태는 1939년 9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독일 공군을 주축으로 

독일 기갑부대와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형태로 

보름만에 폴란드의 항복을 받아내고 반대쪽 폴란드 동부에서 

동시 침공을 가했던 대단히 교활한 국가였던 소련과 더불어 폴란드 국토의 절반을 나누어 차지한 

이웃나라를 기습적인 공격울 가하여 영토를 획득하려고 한 행위와 닮아 있었다.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미국제 106mm 무반동포 지프로 대항하는 요르단군 - 1967년 


1967년 제 3차 중동전 6일 전쟁 발발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개전 뒤 1시간이 지난 후부터 요르단군과 이스라엘군의 교전이 벌어졌다. 

요르단군과 이스라엘군은 서로 예비군을 주축으로 하여 지루한 대치전 양상을 보이다가

6월 7일을 기점으로 이스라엘군이 전차를 동반한 부대가 강습하며 엄청난 혈전이 벌어졌다. 

요르단군은 후세인 국왕의 군대라는 그 명성답게 가장 정예화되고 

훈련도가 높은 군대여서 이스라엘군은 초반에 매우 고전했다.

그러나 요르단군은 장비가 이스라엘군에 비해 부실하고 

아랍 연합국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 공격에 의해 

 공군 전투기들을 모두 상실하고 제공권이 뺏긴 입장에 처해졌던 관계로 

결국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이스라엘군에게 점령당하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함락과 함께 서안에 남아 있던 요르단군은 

영토를 뺏기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항전을 했으나

결국 패주하여 요르단강 동쪽으로 후퇴하게 된다.



 

6일 전쟁 당시 요르단의 정부 청사가 보이는 예루살렘의 언덕배기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미국제 106mm 무반동포 장착 윌리스 지프의 요르단군 병사들 - 1967년


요르단군은 이스라엘군의 프랑스제 AMX-13 경전차의 75mm 장포신 전차포를 장착했던 

M 50 슈퍼 셔먼전차를 향해 무반동포를 발사하여  2대를 파괴시키고 6대에 피해를 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반격으로 요르단군은 106mm 무반동포 장착 윌리스 지프 3대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