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소련군의 스탈린그라드 양면 협공 반격후 조우 - Soviet Red Army encounter after a two way counterattack in the battle field Stalingrad

슈트름게슈쯔 2019. 1. 12. 11:37





소련군의 스탈린그라드 동서 양면 협공 반격후 조우 - 1943년 1월 



1942년 가을 스탈린그라드 방면의 전략적 작전 지도를 맡은 소련군의 바실레프스키와 주코프는 시내로 

병력을 차례 차례로 투입을 시키는 것으로는 독일군을 격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독일군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통해 전세를 뒤집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스탈린의 승인을 얻어 일방적 공세 작전을 입안했다. 

그가 생각한 작전 계획은 독일군을 시내에 붙잡아두고, 양 측면을 공격하여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을 완전히 포위망 속에 가두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스탈린그라드 시에는 겨우 소련군의 방어 거점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으;

 병력만을 지원했고, 시의 서북쪽과 서남쪽의 스텝 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소련군의 1차 스탈린그라드 반격 작전이었던 이 작전은 천왕성(우라노스) 작전으로 명명되었으며,

독일 중앙 집단군을 겨냥한 화성 작전과 함께 실시될 예정이었다. 

독일군은 특히 추축군으로 형성되어 있던 북쪽 좌익군이 허점이었다.

 이곳의 추축국 군대는 독일군에 비해서 잘 훈련되지 못하고 변변한 무기들과 장비가 부족했다.

그곳에는 사기가 떨어진 추축국 크로아티아군과 헝가리군, 루마니아군이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은 가능할 때마다 독일군 대신 주로 약한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돌파구를 뚫었다.

소련군도 그러한 점을 이용해서 독일 추축 동맹군을 공격 목표로 삼았다. 

이 공세의 준비 기간 동안 주코프는 개인적으로 한번 스탈린그라드 전선을 방문했다.

이 전투는 3년 전 주코프가 할힌골 전투(일본이 패배했던 관계로 축소시켜 지칭하는 기록 : 노몬한 사건)에 

구사했던 형태와 매우 유사했다. 

주코프는 할힌골에서 두 갈래로 적을 돌파, 포위하는 협공 전법을 이용해 일본군 제 23사단을 궤멸시켰다.

 그것은 독소전쟁 초기 독일군이소련군에게 자주 써먹었던 양 갈래 돌파 전법의

 양면 협공 전법과도 거의 비슷한 전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