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스탈린그라드에 갇힌 독일 제 6군에 대한 공중 보급 - Aerial Supplies to the 6th Army of German surrounded by Stalingrad

슈트름게슈쯔 2019. 1. 12. 11:44

 

 

 

소련군에 포위되어 스탈린그라드에 갇힌 독일 제 6군에 전달할 보급품을 실은 

독일 공군의 하잉켈 He-177 중형 폭격기 - 1942년 12월 28일 우크라이나 키에프 비행장 

 

 

 

 

 

 

소련군에 포위되어 스탈린그라드에 갇힌 독일 제 6군에 대한 독일 공군 융커스 Ju-52 수송기의 공중 보급-1943년 1월 

 

 

 

독소전쟁 중반기였던 1942년 말기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소련군의 포위로 독일군과 추축국 루마니아군과 

소수의 크로아티아 출신의 의용병 부대등의 병력을 모두 합한 25만명의 방대한 병력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동절기에 꼼짝할수 없이 파괴된 도시속에서 거대한 포위망에 갇혀 버렸다. 

그 포위망 속에는 1만 명에 달하는 소련 민간인과 전투 중에 독일군에게 붙잡힌 수천 명의 소련군 포로들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 제 6군 전체가 포위망에 갇힌 것은 아니고, 5만여 명은 포위망 밖에 있었다.

 포위망 구성을 마친 소련군은 사주 방위선을 구성하여 안쪽의 탈출 시도와 바깥쪽의 구원 시도를 모두 대비했다. 

 히틀러는 9월 30일 대중 연설에서 독일군이 절대로 스탈린그라드 시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소련군의 스탈린그라드 포위 직후 열린 회의에서 독일군 사령관들은 즉시 돈 강 서안의 전선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당시 공군의 총참모장인 한스 예숀네크와 함께 바바리아 지방의 오베르잘츠베르크 별장에 있었다. 

히틀러는 예숀네크에게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독일 제 6군에 공중 보급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예숀네크는 별생각 없이 공군은 공중 보급으로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공중 보급으로 구원군이 구성될 때까지 독일군은 죽음의도시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안에서 싸우게 될 터였다. 

 그러한 공중 보급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고, 규모는 작았지만 1년 전이었던 

 모스크바 공방전 직후 1942년 2월 데미얀스크 고립 지대에 갇힌 독일군에게 성공적으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데미안스크에서는 일개 군단이었지만, 스탈린그라드의 경우는 달랐다.

스탈린그라드는 25만명의 병력이 포위된 일개 독일 야전군 전체였다. 

그리고 독소전쟁 기간 동안 소련군의 지상 공격기와 전투기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개선되어 있었다. 

그러함에도 데미얀스크에서의 독일군에 대한 보급 작전의 성공은 히틀러에게 확신을 주었던 것이다.

멍청하기 이를데 없던 독일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도 며칠 후 스탈린그라드 공중 보급에 찬성했다.  

제 4항공 함대 (일명 루프트바페)(Luftflotte 4)의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은 이 계획의 번복을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독일 제 6군은 독일 공군 수송기들에 의해 공중 보급을 받게 되었다. 

당시 독일 제 6군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단위 부대였으며 거의 정규 독일 야전군의 두 배 규모였다. 

게다가 제 4기갑군의 한 개 군단도 함께 포위되어 있었다.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독일 제 6군의 고립 지대에 대한 공중 보급이 불가능함은 명백했다. 

하지만 독일 공군의 수송 능력은 크레타 전투 이후 증원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일 수송 가능량은 최대 300톤 정도였지만, 고립 지대 안의 일일 필요 보급량은 500톤이어서 

필요량에 훨씬 못 미쳤다. 

그러나 히틀러는 괴링의 계획을 지지했고, 포위망 안의 부대에  항복 절대 불가의 명령만을 반복했다.  

공중 보급 계획은 즉각 실패로 드러났다. 

소련군의 밀집된 대공포대의 대공 포화와 전투기들은 독일 공군의 수송기들에게 심각한 피해을 끼쳤다. 

또한 악천후도 독일군의 수송 효율을 저하시켰다. 

결국 후방의 독일군 보급부대는 평균적으로 일일 필요량의 10%만 보급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가끔씩 엉뚱한 수송 물자가 도착하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20톤의 보드카와 여름 군복을 가져왔는데 그것들은 고립된 상황에서 전혀 필요가 없었다.

안전하게 도착한 독ㅇㄹ 공군의 수송기는 돌아올 때 사령부에서 재능이 있다고 판단된 지휘관들이나 

기술적 전문가들 및 부상병을 날라 왔다. 

독일 제 6군은 기아에 시달리고 있었고 독일 공군 조종사들은 그들의 시야에 비친 

도착한 보급 물자를 나르는 독일군 병사들이 너무 지치고 굶주린 나머지 힘이 빠져 

탈진한 상태에 따라 보급품 음식을 나를 수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