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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도스섬 세인트 캐서린 게이트의 슈트름게슈쯔 3호 돌격포 - German Sturmgeschurtz 3 in the St Catherine's Gate Rhodes Town Greece

슈트름게슈쯔 2019. 3. 3. 13:02





1478년에 건축된 그리스 로도스섬 그랜드 마스터 궁전 세인트 캐서린 게이트 앞의

그리스 침공 독일군  슈트름게슈쯔 3호 돌격포와 전차병들 - 1944년 




그리스 로도스 섬의 위치 






















그리스 로도스섬의  그랜드 마스트 궁전(Palace of Grand Master)



로도스의 거상으로 유명한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로도스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성벽 요새도시를 자랑한다.

천혜의 자연과 기후, 고대 해상 무역의 요충지인 로도스 섬은 어떤 이유로 4km에 달하는 성벽을 갖추고 있다.

 로도스섬의 성벽은 성 요한 기사단(Knights of St. John)과 관련이 깊다.

성 요한 기사단(Knights of St. John)은 1309년부터 1523년까지 로도스를 지배하며

 실질적으로 성벽 요새를 만든 중세 기사단의 하나였다.   

인상적인 성벽과 그랜드 마스터 궁전(Palace of Grand Master)을 포함한 로도스의 중세 도시는 

거의 완벽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며 유네스코로부터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았다. 

중세 시가지에는 현재에도 주민들이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랜드 마스터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비밀 조직인 시온 수도회의 수장으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로도스 섬에서는 성 요한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의미한다. 

랜드 마스터 궁전은 기사단장의 공관이다.   

성 요한 기사단, 성벽 요새 실질적 건설  성 요한 기사단은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있던

 9세기 무렵, 이태리 아말피(Amalfy) 해안의 상인 마우로가 예루살렘을 찾는 

서유럽의 성전 순례자들을 위해 병원 겸 숙박시설을 지은 것에서 유래했다. 

다른 기사단과는 달리 병원 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에 성 요한 기사단은 병원 기사단으로 불렸다.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한 십자군전쟁으로 1099년 서유럽 기독교가 예루살렘을 이슬람으로부터 탈환한 뒤

 성 요한 기사단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병원과 숙박시설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당시 성 요한 기사단을 비롯한 중세 기사단은 수도승과 같은 엄격한 규율과 신앙생활을 바탕으로 

기독교 세력을 이슬람으로부터 수호하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막대한 기부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1291년 이슬람 세력이 다시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성 요한 기사단은 예전의 명성을 누릴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기독교 영토를 떠돌던 기사단은 키프로스 섬에서 난민생활을 시작한다. 

로도스 섬은 지리적으로 그리스 본토와 키프로스 섬 중간에 위치해 있다. 

 성 요한 기사단이 다시 옛 명성을 되찾을 발판을 마련한 계기는 

1306년 로도스를 습격하면서 부터 이다. 

키프로스 섬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던 기사단은 

당시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던 로도스를 침공했다.   

비잔틴 세력의 암묵적 동의 아래 기사단은 마침내 1309년부터 실질적으로 로도스의 주인으로 군림했다.

 성벽 요새는 로도스에 정착한 성 요한 기사단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요새 도시이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성벽으로 대변되는 중세의 성벽은 지표면에서 높이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즉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적을 공격하도록 만든 것이다. 

1513~21년까지 기사단장을 역임한 파브리지오 델 카레토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포의 위력에 주목했다.   

그는 대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 성벽을 일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태리 베네치아의 축성 기술자 바질리오 델라 스콜라는 

성을 쌓는다는 개념에서 탈피해 성을 판다는 생각으로 성벽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공격과 방어를 거의 같은 높이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 스콜라의 기본 아이디어였다. 

 아무리 포격을 받아도 끄떡없이 땅에 달라붙은 성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성벽을 위에서부터 깎아 내려 생긴 토사와 석재에 새로운 석재를 더해 성벽의 두께를 늘렸다. 

  성벽 위 통로의 너비는 10m에 달했으며 10m의 성벽 안쪽으로 이를 떠받치는 벽을 하나 더 만들었다.

 성벽 위에서 아래로 경사면을 그리며 내려가는 내벽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또한 성벽 바깥으로 호를 팠으며 호 속에 외벽에 해당하는 석벽을 하나 더 쌓았다.   

로도스 성벽의 가장 큰 특징은 성벽에서 크게 돌출해 나온 일명 ‘포탑 또는 성채’라고 불리는 구조물이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은 40m마다 높은 사각형 탑을 만들었는데 

로도스의 성벽은 프랑스군, 이태리군 등 국가별로 각 부대가 담당하는 구역별로 거대한 성채를 만들었다. 

각 부대가 담당하는 구역간 거리가 너무 길 경우에 대비해 100m 간격으로 소형 성채를 만들어 보충했다.  

내벽 안쪽의 중세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눴다. 

카스텔(Chastel)이라고 불리는 북쪽 지역은 기사단의 거주지역이다. 

기사단의 거리를 따라 교회, 성당, 주교의 집, 각 국가별 기사단 숙소 그리고 기사단의 병원이 형성됐다. 

도시(Ville)라고 불리는 남쪽 지역은 일반 거주민들의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시장, 유대교 회당, 유대인 광장, 카톨릭 성당, 공공 시설 등이 세워졌다.  

기사단의 거리를 따라 걷다보며 마치 기사단의 기사가 된 것처럼 

중세 도시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거리의 끝에는 기사단장의 공관인 그랜드 마스터 궁전이 위치했다. 

그랜드 마스터 궁전의 내부는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거대한 조각상이 먼저 눈에 띈다. 

조각상을 뒤로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로도스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