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독일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의 둥근 구형 레이더실 - German Kriegsmarine heavy cruiser,Prinz Eugen Round spherical radar Tower

슈트름게슈쯔 2019. 8. 15. 11:36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애드미럴 히퍼급 독일 해군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코닝 타워 하단부에 설치 되어 있던 

독특하게 생긴 형태의 둥근 구형 레이더실 타워 




킬 항에서 출항을 준비하는 독일 해군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 1941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미국의 제 2차 세계대전 대서양해전 전리품 나치 독일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1946년  1월 



1945년 5월 27일 나치 독일의 카알 되니츠가 연합군에 대한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한지 20일 후

 전쟁중 유일하게 살아 남은 독일 해군의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과 함체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남은 경순양함 뉘른베르크는 영국 순양함 디도와 데본셔의 호위 아래 

독일 니더작샌주의 항구 도시 빌헬름스하펜으로 호송되었다 .

1945년 12월 13일 독일 해군의 전함이었던 프린츠 오이겐은 미국에게 전리품으로 수여되어 베저강으로 보내졌다 . 

유럽 전쟁 종전후 특히 미국은 나치 독일 해군의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을 처음에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공산주의  소련이 나치 독일 해군의 중순양함에 눈독을 들이자 

미국은 소련측에게 독일 해군 프린츠 오이겐을 그들이  전리품으로 획득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미 해군은 독일 해군 지휘관 아서 H. 그라우바트를 독일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의

 마지막 사령관으로 발탁시켜 미국 호송의 임무를 맡기게 된다.

미 해군 지휘관이 된 아서 H. 그라우바트는 통제위원회의 미국 대표로 영국과 소련 대표들과 더불어 

 모두 나치 독일 해군의 중순양함 프린치 오이겐을 어떻게 처리 해야할지 서로의 방안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러한 연후  미영소 연합군 측은 결국 나치 독일의 여러 가지 큰 전리품들을 3파트로 분류 하였다.

, 독일 해군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은 그 대형 전리품중의 하나로 분류가 되었다. 

영국과 소련 대표들은 프린츠 오이겐과 다른 나치 독일의 함선들을 전리품으로 가져가기 위해 추첨을 하였다.

독일 해군 경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의 추첨을 남겨두고 추첨에 앞서 

 미 해군 지휘관 아서 H. 그라우바트는 모자 속에서 로또 스타일로 행운을 잡는 3개의 추첨표중 하나를  뽑았다 . 

그런 연후에 마침내 독일 해군의 프린치 오이겐 중순양함은 선체 번호가 있는 IX-300의 미분류 기타 선박으로 분류되어 

미 해군에 위탁되었다.

이후 미 해군 지휘관 아서 H. 그라우바트의 지휘하에 8 명의 미국 장교와 85명의 인원이 

감독한 574명의 독일 장교와 선원들로 구성된 복합적인 미국-독일 승무원들은 

1946년 1월 13일 출항하여 1 월 22일에 미국 보스턴에 도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