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당시 침략자 일본군 제 13사단에 점령된 중국 장인(江陰) 요새 - 1937년 12월 2일
중국 장인(江陰) 항은 양쯔강 하류 삼각주에 위치한 지역으로, 상하이에서 서북쪽으로 1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으로 중일전쟁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과는 200km 떨어져 있으며
양쯔강을 통해 난징과 상하이를 오갈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그 때문에 장인 항과 요새에는 다수의 고사포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장인 요새 주위로는
황산 포대(黄山炮台)와 동산 포대(東山炮台), 서산 포대(西山炮台), 어산 포대(鹅山炮台),
샤오산 포대(萧山炮台) 등 5개의 포대가 구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화민국 해군의 주요병력인 1함대와 2함대 중 1함대는 난징에, 2함대는 장인에 주둔하고 있었다.
중일전쟁 제 2차 상하이 사변중 중화민국군은 양쯔강을 통해 일본군 해군의 병력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막기위해
중화민국 해군 병력과 해군 함선이 양쯔강 하류의 '장인 요새'를 거점으로 방어 해전이었던
장인 전투(1937년 8월 16일 ~ 1937년 12월 2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이 해전으로 중화민국 해군 수상함대는 완전히 궤멸되어 버렸다.
이후 남은 중화민국 해군의 함선들도 대부분 자침하면서 중국 해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었다.
장인 전투는 함대에 의한 해전보다는 항공기 중심의 전투가 이루어졌고,
장인 요새에 대한 상륙전과 공방전 또한 벌어진 전투였다.
양쯔강을 방어하던 중화민국 해군이 궤멸된 상황에서도 장인 항과 장인 요새에 주둔한 중화민국군 병력은
일본군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항전했으나 상하이 전선이 붕괴되어 일본군의 육상병력이 가세해 들어오면서
적의 병력이 거세게 수도 난징을 향해 진격하자 결국 난징의 총사령부가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중화민국군의 병력들과 중산을 비롯한 움직일수 있는 함선들은 요새와 항구를 포기하고 난징으로 후퇴했다.
장인 요새가 함락되자 일본군 해군은 기뢰를 제거하고 육전대를 상륙시켜 장인 항을 점령한다.
장인 항을 점령한 일본 해군은 격침당한 중국 해군의 함선 닝하이, 핑하이, 이셴 등을 인양하여
일본으로 가져가 개조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명명하여 사용하였고,
일부 함선들은 왕징웨이 정권과 만주국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