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바치산 4

미 해병대의 이오지마 바위 동굴 일본군 포로들 생포 연막 작전 - Pacific War U.S. M.C used smoke-generating machine to pull out the Japanese POWs hiding in the rock cave of Iwo Jima

태평양전쟁 말기 미 해군 전함과 미 해병 곡사포대의 집중 포격울 피해 이오지마 수리바치산 바위 동굴에 은신해 있다가 연막 발생기를 이용한 미 해병대의 연막 작전에 의해 밖으로 나와 항복하는 일본군 포로들 - 1945년 3월

미 해군 함대의 이오지마 일본군 해안 벙커 물량 포격 - Pacific War US Navy Battle ships bombardment to the Japanese coastal bunker Iwo Jima

태평양전쟁 말기 미 해군 함대의 이오지마 일본군 해안 벙커 물량 포격 - 1945년 2월 16일 태평양 전쟁 말기 미 해병 상륙부대 사령관 해리 슈미트 소령은 1945년 2월 중순에 앞서 10일간 이오지마 섬에 대한 집중 포격을 요청했다. 하지만, 리어 어드민. 수륙양용지원군(태스크포스 52)의 윌리엄 H. P. 블랜디 사령관은 이런 폭격으로 상륙 전에 함정의 탄약을 보충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슈미트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 후 슈미트는 9일간의 포격을 요청했고 블랜디는 다시 거절했고 3일간의 폭격에 동의했다. 이 결정은 미 해병대에 많은 감정을 남겼다. 전쟁이 끝난 후 리외트. 홀랜드 M. "하울린 매드" 스미스 사령관(슈미트의 제 5수륙양용군단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56)은 연합군의 이..

일본군의 이오지마 해안포 콘크리트 벙커 - Japanese Coastal Artillery in the concrete Bunker Iwo Jima / Flags of our fathers (2006)

태평양 전쟁 말기 미 해병대의 이오지마 상륙 이후 마치 지옥같았던 혈투를 치른 뒤 파괴된 수리바치산 고지대의 일본군 120mm 해안포 콘크리트 벙커앞에서 노획한 일장기를 펼쳐든 미 해병대원들 - 1945년 2월 24일 Flags of our fathers (2006) 속 일본군의 이오지마 해안포 콘크리트 벙커

씨네마 극장 2018.12.29

태평양전쟁 당시 이오지마의 수리바치산[Pacific War during Iwo Jima Mount Suribachi]

이오지마 상륙전 함선에서 쌍안경으로 해안을 살펴보는 미 해병대 장교 -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병대와 일본군 사이에 격렬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이오지마의 수리바치산 - 1945년 2월 이오지마는 일본 도쿄 남쪽의 1,080킬로미터에, 괌 북쪽 1,130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이오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