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창동 어디메와 포키스 1 [Porkys1]

슈트름게슈쯔 2009. 9. 3. 16:12

 

 

포키스의 포스터

 

 

 

 

 

 

       

 

 

 

 

 

                                                                 1982년 창동 어디메에서 사용했던 보스(Bose) 901 스피커

 

 

민주주의 체제가 어느 정도 공고히 다져진 지금과는 달리 1980년대 초반 전두환 독재정권의 철권 통치시절

대한민국 서울의 대학가는 연일 민주화를 부르짖는 시위가 발생했었다.

그에 따라 군경을 동원한 정권 사수 차원의 폭압적인 시위 진압과

민주인사와 시위 가담자들의 체포와 구금,고문등의  반인권적인 형태의 국민에 대한 탄압은

 1986년 노태우 정부가 6.29선언을 발표하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표출될수 있었던 대한민국의 문화적 풍속도는 

거의 자유로운 형태의 문화를 구사하지 못했고 독재정권의 방송 장악과 

혹독한 문화 매체에 대한 검열로 정권 찬양및 정부 시책에 준하는

고만 고만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 힘들었다.

또한 조금이라도 정부정책과 정권유지 차원에 반하는 내용의 제목이나 가사가 깃든 노래는 가차없이 금지곡이 되었다.

TV뉴스의 첫 마디는 늘 전두환 대통령으로 시작되는 땡전 뉴스였다.

지금처럼 GNP수치가  1만 5천달러가 넘는 마이카 시대가 되기전 GNP 수치가 5000달러 수준이었던 

 그때는 젊은이들은 여름에 텐트를 메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산과 바다로  캠핑을 가기도 했다.

그당시 대학교의 교정에서는 대학생 몇몇이 모이면 항상 짭새라고 이름 붙여진 사복형사로

 보이는 자들이 따라붙어 젊은이들이 도심지에서는 거의 다방이나 극장,당구장,학사주점및

 음악실과 같은 공간외에 이렇다 하게 드나들만한 문화적인 차원의 갈증을 해소할 장소가 없었다.

그러한 때 마산에서는 1982년 태극당 제과 지하에 어디메란 음악 감상실겸 카페가 문을 열었다.

이 카페 주인은 근래 마산 중성동의 레몬 노래방에서 보았는데 이제는 그곳에 노래방을 경영하고 있었다.

과거 김영삼,김대중씨를 정치 9단 이라고 지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지역에서 30여년의 세월동안 유흥업소를 경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업종이든지 한곳에서 흑자 경영를 구사하여 영업 형태를 오래 지속시킨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지난 세월동안 굴지의 대기업도 줄줄이 부도가 난 상황을 보면 잘 알수있다.

멜론 노래방 주인 그는 가히 마산의 장사 9단 이라 볼수 있었다. 

그는 당시에 마산에서는 혁신적인 업소의 형태로 지하에 음악감상실과 레이져디스크와

비디오를 통해 영화를 보여주는 공간을 마련했다.

내부 홀의 전면에 뮤직박스를 만들고 중간의 극장식 좌석에는 음악과 영화를 보고

들을수 있는 헤드폰을 비치 했으며 홀의 뒷면에는 간단한 경양식과 주류와 차를 파는 카페를

인테리어 하여 음악감상실과 카페의 복합적인 형태로 수입의 극대화를 꾀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9년 삼성전자에서 첫 국산 VHS형 비디오가 제작되어 시판되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지금은 거의 사양 사업이 되어버린 것이 비디오 대여점이다.

한때 문화사업의 한 분야를 차지했던 음반사업과 비디오 매체및 서적업은 컴퓨터를 통한

온라인 사업 형태에 밀려나버린 시대적 격세지감을 보여준다.

그때는 서울및 전국 중소도시의 시내 한가운데 비디오 대여점이 성업했는데

비디오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헐리우드에서 흥행하던 외화는 몇년후에나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되곤 했다.

따라서 그때 미국 현지에서 출시된 신작 외화 비디오들은 거의 100%가 여행객이나

미군 PX를 통해 흘러나와 종로 청계천 등지에서 복사되어 전국으로 암암리에 배포되는 불법 비디오였다.

그는 그러했던 최신작 비디오들중 아놀드슈왈츠 제네거의 데뷔작 코난과 비스마스타등을

방영해주면서 마산,창원,진해지역의 젊은층 고객들을 확보했다

따라서 그곳은 늘 창동 시내로 나온 남녀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곳에서 본 영화중 한글 자막이 나오지 않던 재미있던 영화가 한편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 10대들의 자유분방한 섹스 코미디영화 포키스였다.

이 포키스는 당시 개봉관에서 영화로는 상영되지 않았지만 몇년후 비디오로 출시된바 있었는데

이 영화속 주인공이었던 피위는 이제 50이 넘은 중년이 된 나이에

근래 미국 TV 과학 수사 드라마에서 범죄 심리학 박사역으로 볼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