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초지일관

슈트름게슈쯔 2010. 11. 21. 15:44




3학년 어느 교실에는 초지일관이라는 글씨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본 어느 학생은 좆이학관 이라고 그랬고 또 다른 학생은 좆이한관 이라고 그랬다.

미래의 꿈에 다가서려는 입장의 공부도 공부지만

 3년의 공부와 밤10시~11시 까지의 자율 학습은 

공부를 해볼려는 놈이나 농땡이나 거의 노이로제적 강박 관념을 심기에 족했다.

그리고 한창 때의 남성호르몬이 생성될 시기에 어쩔수 없이 운동으로 승화시킬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때에 창원고 김귀룡은 정유성,이상한등은

 몇몇의 성지여고 여학생들과 무슨일을 벌였는지는 모르지만

 혼숙을 했다는 뉴스가 창원고 선생들의 귀로 흘러 들어갔다.

이 소식에 결국 학교는 발칵 뒤집어져 선생들은 그 사실이 

신문에 날까 두려워 쉬쉬하는 가운데 김귀룡을 퇴학조치 시키고 말았다.

당시 신설 학교의 이미지가 먹칠된것을 두려워하던 가운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럴수도 있는 일인데 하는 입장이지만 

그때는 어쩔수없이 김귀룡이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던 것이다.

일류대학 많이보내기의 다수를 위한다는 자율학습 정책은 

성적 일변도의 미래를 꿈꾸지 않는 학생들에겐 견디기 참혹한 시간이었다.

결국 학교도 돈대로 가는 것임을 깨닫는것은 시간문제였다.

교내 탁구장이나 강당,도서관,위생적 구내매장이 구비되었었더라면

 학생들의 상황은 보다 나아지고 더욱 좋은 면학 부위기가 생성되었을 것이다.

가까운 경남여상과 창원고생의 만남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고

 오랜시간이 흐른뒤 창원고는 이전이 되었다.

초지일관이 되려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부모의 환경 제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