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사라져버린 마산의 이젠벡 맥주

슈트름게슈쯔 2011. 9. 10. 18:16

 

조선맥주(크라운) 영등포 공장

 

 

 

 

동양맥주(OB)

 

조선맥주(주)와 동양맥주(주) 양사의 전신은 1933년 일본의 대일본맥주와 기린맥주가

우리나라에 설립한 조선맥주와 昭和기린맥주이다.

전쟁중이던 52년 5월 두 맥주회사는 각각 공개입찰로 양사의 관리인이었던

 閔德基씨와 朴斗秉씨에게 불하되었다.

경쟁과 협력이라는 ‘숙명적인 관계’의 출발이었다.

 50년대는 맥주판매망이었던 대리점 확보경쟁으로 일관하였다.

치열한 광고·판촉전이 병행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경쟁에서 무리한 투자로 자금이 묶인 조선맥주는 60년 한일은행 관리업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맥주가 전후 66.5%로 최고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상의 우세를 잃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60년대 중반에 이르자 은행관리업체인 조선맥주의 시장점유율이 30%대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때 광복 직후부터 부산에서 대선발효라는 소주회사를 경영해오던 현재의 박회장이 조선맥주를 인수했다

그는 자금난을 겪으면서도 60년대말까지 시장점유율을 40%로 끌어올렸다.

 양사가 지배하던 맥주시장을 70년대에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73년 6월 섬유업체인 삼기물산(주)이 서독 이젠벡사와 합작해서 한독맥주(주)를 세워

75년부터 국내 시판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70년대 중반 이젠벡 맥주의 신문 광고

 

고가정책을 쓴 이젠벡맥주는 시판 이후 3개월간 맥주시장의 거의 15%를 잠식했고,

품귀현상까지 일어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이에 양사는 공판체제를 최대한 활용하여 판매경로를 방어하는 전략을 구사하였고,

 이젠벡맥주가 화학주라는 소문까지 나돌아 한독맥주는 1년반만에 도산하여 조선맥주에 팔리게 된다.

‘공동의 적’을 물리치는데 성공한 동양맥주와 조선맥주는 시장을 각각 58대 42 수준으로

사이좋게 분할할 채 70년대말의 호황을 구가했다.

 

  개발연대 붐을 타고 급성장한 한국의 대표적 주류회사로 ‘진로소주’와 ‘동양맥주’가 있다.
또한 금복주나 하이트,크라운,에이스 외에도

 최근에는 산사춘, 백세주, 복분자등 많은 인기주들이 탄생했지만

 아직도 두꺼비나 OB의 브랜드 파워는 대단하다.

 한참 무섭게 커나가던 OB가 한때 강한 제동이 걸린 것은

1973년 마산의 삼기물산이 서독 이젠벡사와 합작으로 한독맥주를 설립,

 기술제휴로 ‘이젠벡맥주’를 생산하면서 OB, 크라운과 함께 3파전을 이루었을 때였다.

 선진국형과 신세대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철옹성 같던 OB시장을 파고든 이젠벡의 슬로건은

“이제부턴 이젠벡입니다”라는 카리스마 풍기는 한마디였다.

  참신한 브랜드에 야심찬 영업활동과 다각적 홍보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진

이젠벡앞에 백전노장 OB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OB홍보팀엔 초비상이 걸렸고 몇일 밤낮을 고민 끝에 만들어 낸 말이

저 유명한 “친구는 역시 옛 친구, 맥주는 역시 OB”라는 기발한 케치프레이즈였다.

나중 하이트맥주에 인수되어 ‘이젠벡’이라는 이름은 못다핀 꽃한송이로 사라져 갔지만

당시로서 “친구는 역시---”라는 한마디는 움츠러들었던 OB군단을 일거에 회생시켜 놓았고

 이젠벡은 그 친구라는 말 한마디에 KO패를 당하고 만 셈이었다.

  한국 사람은 친구 때문에 살고 친구 때문에 망하기도 한다.

부부끼리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게 현실이고,

이렇게 ‘정과 의리’로 맺어진 찐한 친구관계는 교복세대와 군대생활과 조직화된 직장이 만들어낸

특이한 민족성중의 일부분일 수도 있겠는데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인의 특징이자 때로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한국 사람은 세명 이상이 만나면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에서 제외되면 불안해 하고 서둘러 다른 모임을 찾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3대 동문회라는 고대동문회, OO향우회, 해병전우회를 비롯해서

사회에도  모임이 많다. xx학교동문회, gg골프회, oo낚시회,

볼링회, 바둑회, 심지어 주막동기회, 모텔동기회등까지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그러한 수많은 모임들이 어우러진 사회가 정과 의리로 뭉친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라고 말하기는 솔직히 힘들다.  

몇백명도 안되는 모임의 사람들 중에도 서로를

아전인수격으로 적과 동지로 나눈 경우도 많고,

친구들조차 자주 만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지나온 역사처럼 다시 만나 새로운 역사가 쌓이면서

 3~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모임때 마다 이리 저리 얽히면서

서로의 직업과 생활및 성격과 습성들을 웬만큼 거의 알게 되었다.

따라서 언제까지나 2분법적으로 같은반과 다른반 또는

적과 동지로 나누는 구분은 피곤하기 짝이 없다.

초창기부터 거쳐간 모임때 마다 아주 작은 상대적 무시와 불쾌한 농담,가벼운 욕설및 무례등으로

상처준 이와  상처 받은이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 자신의 과실을 까마득히 잊은채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여 가슴속 한켠의 적개부 명단에 기록해 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는 서서히 하나씩 지워 나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고 승리하는 길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