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 1992년]

슈트름게슈쯔 2011. 2. 5. 12:51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 진 헥크먼, 모건 프리먼, 리챠드 헤리스, 클린트 이스트우드제작 : 1992년/미국

 

 

 

 

 

 

 

1880년 미국 와이오밍주의 빅 위스키. 윌리엄 머니는 은퇴한 무법자다.

열차와 은행을 털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치우던 잔혹한 살인자로 악명을 떨치던 그가 술을 끊고 총을 버린지 어언 11년.

이제 그는 캔자스의 촌구석에서 자식들과 함께 돼지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머니는 아내가 죽고 돼지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자 곧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카우보이 두 명이 창녀에게 칼을 휘둘러 얼굴에 상처를 내는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부패한 보안관 리틀 빌 대거트는 말 몇필을 받고 둘을 풀어준다.

이에 분노한 창녀들은 두 악당에게 1천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고 돈을 노린 젊은 스코필드가 머니를 찾아온다.

머니는 스코필드와 함께 떠나기로 하고, 옛 동료인 흑인 총잡이 네드 로건을 데리고 간다.

머니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살아가던 네드 로건은 머니의 부탁을 받고 그를 따른다.

말썽을 막으려는 리틀 빌 대거트는 현상금을 노리고 온 총잡이들을 구타한 다음 쫓아내는데,

머니 일행은 빌의 손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현상금 걸린 카우보이들을 처치한다

과거 악명을 떨쳤던 무법자 총잡이가 은퇴한 이후 세상에 순응하며 조용히 살지만

악덕 보안관과 피할 수 없는 대결에서 결국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내용의 인상적인 서부극이다.

기존 서부극과는 달리 아주 사실적인 영상과 철학적인 단상들을 담아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다.

서부극 스토리의 확대라는 측면과 함께 19세기의 서부 모습을 사실적이고 냉정하게 스크린에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위해 배경이 되는 마을 역시 직접 세트로 건설했으며 현직 카우보이를 엑스트라로 고용했다고 한다.

 

 

 

아카데미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 감독, 남우조연(진 핵크만), 편집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스트우드는 배우 출신으로 5번째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의 영광을 안았다.

또한 이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서부극(Western movie)으로는 3번째 영화가 되었다.

 

 

 

 

 

 

 

1992년에 '용서받지 못한 자'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영화가 왜 각광을 받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서부영화의 기본적 플롯조차 지키지 않은 허술함과 생소함,
영웅은 고사하고 잘 봐줘야 노쇠한 총잡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정쩡한 주인공,
자막이 오를 때 까지도 과연 진짜 엔딩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어설픈 마무리…

나는 이 영화가 도대체 어떻게 아카데미상을 여러 개나 받을 수 있었고,
이 영화에 대해 왜 그렇게 미국인들이 환호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간씩 서부영화에 대한 나름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는 이 영화가
이 때까지의 어떤 서부영화 장르 혹은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매우 독특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고전 서부극과 마카로니 웨스턴을 통칭하여
‘서부극’이라고 불리우는 장르 전체에 대한 자기 반성과 진실된 비판을 담고 있는,
정말 리얼리티 넘치는, 새롭고도 결정적인 서부영화인 것이다.

기존 서부 영화와의 의도적인 괴리, 비 타협은 이 영화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영화 자체의 특징점을 고찰하는 겸 해서 몇 가지만 나열해 보자.

- 정의로운 영웅, 혹은 무법자에 가까운 전형적인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고
실재로 현존했을 것 같은 입체적인 주인공이 그려진다.

(주인공 ‘윌리엄 머니’는 한 때 악명을 널리 서부에 떨치던 무법자였다.
그는 술에 취한 채 어린이와 부녀자들, 심지어 동물들까지 다 죽이는 ‘대학살’을 저지른 바 있는 잔인무도한 폭도였다.
그러다가 착한 아내를 만나 개과천선하고 시골에서 돼지를 치고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내가 죽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현상금을 받기 위해 마지막 한 번만 더 총을 잡는다…뭐 이런 식이다.)

- 돼지를 몰다가 거름더미에 쳐 박히고, 말에도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깡통 하나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쩔쩔매고, 비를 맞아 덜덜 떠는 초라한 주인공...
이런 주인공이 한 번이라도 서부극에서 묘사된 적이 있었던가?

- 전설적인 정의의 총잡이들이 실은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는 비겁한 무법자에 불과했다는 솔직한 고발까지 나온다.
잉글리쉬 밥으로 대표되는 이름 높은 영웅의 실제 몰골을 보라.

- 현상금이 걸린 무법자 카우보이를 결국 쏘아 맞추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세 명의 주인공들은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총을 쏘지 않을 테니 물을 갖다주라는 머니…
총을 맞은 악당에 대한 이런 모습이 묘사된 서부영화는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조연으로 출연한 스코필드 키드(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영화 <무법자 조시 웨일즈>에도 나온 바 있는 배우다..)는
허풍쟁이이고 게다가 반 쯤 눈먼 소경이다.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보지 못하고 뻥만 치는 키드에게 "대충 아무데나 쏴!” 라고 지시하는 윌리엄 머니…

사실 이런 게 실제 총격전이 아니었을까.
대충 쏘는 거..그리고 대충 겁 먹고 도망치는 거...

- “빨리 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침착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라고 하는 머니의 말…
이 대사 한마디로 이전의 서부극은 모두 허풍이 되고 만다.

- 특히 마지막 대결 장면은 압권.
술에 취한 채 사롱에 들어가 여러 명과 대결하는 머니…

핵크만을 노린 샷건은 불발이 되고, 몸을 숙이며 되는 대로 쏘아대는 총격전의 긴장감은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실감 넘치는 액션 씬으로 되살아난다.

멋지고 폼 나는 영웅의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실제 총격전 현장에 들어가 있는 듯한 전율이 느껴진다.

- “총 싸움에서는 무엇보다 운이 중요해. 나는 늘 운이 좋았어..”
총격전 후 떨리는 손으로 술병을 찾아 마시는 머니..
이 말이 이렇게 공감이 될 수가 있을까..

이것은 이제껏 영화 속에서 클린트가 쏘아 자빠뜨린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예우일지도 모른다..^^

- 잔인한 보안관 진 핵크먼의 똘마니들 중 외팔이가
"팔도 하나인 주제에 왜 총을 세 자루나 가지고 다니냐"는 누군가의 말에,
레밍턴 리볼버에 총알을 장전하며 대답하길 “총알이 없어 죽긴 싫거든..”이라고 한다.

잉글리쉬 밥은 SAA 외에 .38 구경 소형 권총을 늘 지니고 다닌다.

..이처럼 세밀하지만 솔직한 맛이 느껴지는 묘사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 등장하는 총기류는 의도적으로 전통적인 서부영화 총기류를 벗어나려 애쓴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 핸드건은 마지막 결투 장면의 S&W Mk. 3 'Schofield'(스코필드 키드에게 빼앗아 씀)와 중간 중간 레밍턴이 등장하고,
무엇보다 영화 첫 장면에 머니가 연습하던 총(포스터에도 나와 있음)은 이제껏 한 번도 서부극에 나온 적 없는,
하지만 실제 서부에선 사용된 'STARR' 퍼커션 리볼버(9연발)이다.

이제껏 서부극에서 그 흔하게 보이던 SAA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 라이플도 구식인 Spenser 라이플을 비롯, 2연발 횡대 샷건이 주력으로 등장한다.

특히 스펜서 라이플은 개머리판 속의 로더를 뽑아내고 탄알을 장전하는 모습이나 레버 액션 후 코킹, 발사 씬 등
매니아라면 감동의 도가니가 될 장면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 머니가 쏟아지는 비를 뚫고 마을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인데,
다시금 잔혹하게 변한 윌리엄 머니의 울부짖음이, 이젠 늙어버린 현실과 오버랩 되어 묘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