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씨받이 [1986]

슈트름게슈쯔 2011. 2. 18. 14:20

 

 

 

조선시대 대가집 종손 신상규(이구순 분)와 그의 부인 윤씨(방희 분) 사이에 손이 없자

상규의 어머니와 숙부 신치호(윤양하 분)가 숙의 끝에 씨받이 여인을 들일 것을 결정,

씨받이 여인이었던 필녀(김형자 분)의 딸 옥녀(강수연 분)를 간택하여 집안으로 들인다.

 합방날, 옥녀를 대면한 상규는 옥녀의 빼어난 용모에 사로잡혀 옥녀를 총애하게 되자 부인 윤씨는 옥녀를 투기하게 된다.

드디어 옥녀에 태기가 있자 온 집안은 옥녀를 떠받들게 되며 옥녀도 잠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상규를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필녀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옥녀를 타이르나 옥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옥녀가 아들을 낳자 그 아이는 곧장 윤씨의 품에 안기며 신씨 종가는 경사를 맞는다.

옥녀는 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그밤으로 떠날 것을 종용받자 자신의 한 많은 생을 죽음으로써 패륜에 항거한다.

 

 

 


 

 

 

 

 

[씨받이] 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강수연이 하마터면
영원히 빛을 내지 못할 뻔했던 배역 선정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기획되기는 85년 겨울이었다.
씨받이의 타이틀롤을 정하는게 영화 제작의 급선무로 더올랐다.
시나리오 작업이 늦어져 다음 해 봄에야 각본이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강수연 대신 조용원이 크게 물망에 올랐다.
하명중 감독의 [땡볕]으로 열연을 보여
대종상 신인상과 아세아 태평양 영화제 특별여우상을 받아
단연 [씨받이]의 히로인으로 클로즈업된 것이었다.

당시 강수연은 82년 [깨소금과 옥떨매]를 끝으로
소녀 역을 청산하고
85년 김수형 감독의 [W의 비극]으로 성인역의 배우로 변신했다.
[고래사냥2]로 겨우 연기자로 입문한 그녀가
여러모로 조용원을 따라갈수 없었다.

 

 

조용원

 


그러나 제작진 일각에서 조용원은 한복 스타일이
얼굴과 맞지않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다보니 또래 배우들을 찾다가 떠오른 배우가 바로 강수연이었다.
강수연을 만나본 임권택 감독은 그녀의 강렬한 눈빛에서 가능성을 느껴 바로 OK사인을 내렸다.
워낙 연출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임감독인지라
일단 강수연의 이미지만 믿고
연기는 차후 찰영과정에서 조율하기로 하고 강수연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강수연은 찰영 첫날 송아지를 몰고오는 장면에서 부터 임감독의 눈을 놀라게하는 열연을 보여

장차 이 영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베이스를 쌓았다.)

강수연과 조용원은 같은 1966년생으로 모두 서울 출신이다.
강수연은 아역으로 일찍이 연기 세계를 익혔고,
조용원은 81년 미스 롯데로 선발되어 탤런트가 되었다.
영화로 보아서는 강수연이 그야말로 대선배였다.
76년 [핏줄]로 데뷔하여 77년 마산 진동면의 실화를 다룬 영화[엄마없는 하늘아래]등

아역에 5편을 출연하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어릴 때 리틀미스 코리아로도 뽑혔고
수많은 드라마에서 연기를 했던 경력이 있었던 것이다.

찰영 첫날 대구 근교의 산골에서 강수연이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찍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강수연은 임감독의 레디고우가 떨어지자마자
완숙한 연기로 임감독과 제작진을 놀라게 하였다.
캐스팅 과정의 어려움을 일순간에 만회하는 동시에
일사천리로 찰영을 하게되는 바탕이 되고도 남았다.
강수연의 빈틈없는 연기에 반해버린 임권택 감독은 보쌈마을로 내려가
그녀의 신들린듯한 연기를 화면에 그대로 각인시키는
연출의 저력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씨받이 영화 촬영중의 웃기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강수연의 속옷에 있었다.

영화속 배경으로 볼때 조선시대 여인들의 속옷은 고쟁이 였는데

임권택 감독은 촬영시 재래식 속옷을 챙기지 못한 강수연을 보고

수연아 속옷이 쌍방울표 팬티가 뭐냐고 했다 한다.  

그러나 클라이막스가 되는 해산장면이 문제로 떠올랐다.
아역부터 근 15년의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강수연이었지만 당시는 방년 21세의 약관.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경험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녀는 임감독이 남자라 동료 여자 연기자들에게 해산 장면의 지식을 묻는 것으로
연기 플랜을 세웠으나 완벽주위자 임감독이 그냥 넘길 리가 없었다.
임감독은 아내 채령의 출산때 찍은 비디오를
강수연에게 주어서 여러번 보게 하였다.

드디어 해산 장면의 찰영이 시작되고
강수연은 보고 들은 각종 지식에 상상력과 기를 총동원해
세계가 감동할 멋진 연기를 해내었다.
그녀가 거의 실제처럼 열연하는 동안
그녀의 비명소리만 메아리칠 뿐 스태프들 조차 숨소리를 죽였다.

그러나 이런 강수연의 토속적인 연기로 전력투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씨받이] 는 86년 대종상에서 홀대를 받았고,
극장 개봉에서도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87년 베니스 영화제의 여우 주연상의 쾌거와 함께
[씨받이] 는 강수연 신화를 탄생시켰으며,
극장에서 재개봉하여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강수연은 그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아제아제바라아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3회 연속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명실공히 우리 나라 여배우를 대표하는 거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