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와 음식문화

천안 명물 호도과자의 원조인 학화 호두과자

슈트름게슈쯔 2012. 2. 3. 14:12

 

 

호두를 잘 깨뜨리면 이런 하트 무늬가 생긴다.

 


 

<소나기> 속 소년의 호두

 

 

"왜 그런지 난 이사 가는 게 싫어졌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 눈에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그렇건만, 소년은 지금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이 날 밤, 소년은 몰래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밭으로 갔다.

낮에 봐 두었던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봐 두었던 가지를 향해 작대기를 내리쳤다.

호두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별나게 크게 들렸다.

가슴이 선뜩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굵은 호두야 많이 떨어져라,

많이 떨어져라,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마구 작대기를 내리 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 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디뎠다.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불룩한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호두송이를 맨손으로 깠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근동에서 제일 가는 이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를

어서 소녀에게 맛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 황순원의 소나기 중 



 

며칠동안 앓았다는 소녀와 소년의 만남...

아침에 땄다는 대추 한줌을 주며 며칠후 제사만 지내고

이사갈 거라는 소녀에게 줄, 근동에서 알 굵기로 소문이 난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가 내게는 더욱 인상깊게 남아 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가

소년의 애틋한 첫사랑과 함께 더욱 또렷히 남아 있었다.


 

 

 

* 한국에 호두나무가 처음 들어온 것은?

 

* 처음 심어진 곳은?

 

 

 

한국 호두나무 첫 시배지인 천안 광덕사와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인 광덕사 호두나무

 

한국 호두나무 첫 시배지는 천안 광덕사로 알려져 있다.

광덕사에는 호두 나무전래비도 있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도 있다.

이 나무의 국가지정 문화재정식 명칭은

'천안광덕사호두나무', 천연기념물 제89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원산지를 중국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실크로드를 통해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에서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더 적합해 보인다.

20미터까지 자라며 4~5월에 꽃이 핀다.

꽃이 지고 여름에 푸른 열매를 달고

가을까지 탁구공만한 푸른 열매를 키워 나가다가

 영근 열매는 껍질을 스스로 벗는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도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 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처음 심은 곳)라 부르고 있다. -문화재청 설명 중에서

한국에 호두나무가 들어온 것은 700여년전,

하지만 첫 시배지로 알려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진

천안 광덕사의 호두나무의 수령은 400년 정도로 추정한다.

문화재청의 설명처럼 처음 심은 것인지,

중간에 심은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심어졌을 가능성도 많다.

유청신 선생이 광덕사에 호두나무를 심음으로써

광덕사는 이후 호두나무를 통해 재정적인 문제를 안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대까지 한국 대부분의 호두는 광덕사 소유의 땅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광덕사는 주변인들에게 소작을 주었다.

때문에 광덕사 주변은 국내 최대 호두 특산지가 될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호두나무때문에 먹고 살수 있었다.

그러니 이 일대 사람들에게, 광덕사의 호두나무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첫 호두나무가 죽었다면,

시배지 광덕사의 호두나무를 기리고자 마을에서 가장 튼실한 어린 호두나무를 골라

 

400년전 사람들이 식재하지 않았을까?

예전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천안광덕사호두나무의 높이는 18.2m, 지상 60㎝의 높이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가슴높이의 둘레가 각각 2.62m, 2.50m.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비석이 나무 3미터 앞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선생의 후손과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현재 광덕면 일대에는

약 25만 8천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식재되어 있다고 한다.

 광덕사가 있는 광덕면 일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호두나무가 심어진 광덕면 일대

대부분의 산이 광덕사 소유였다고 한다.

광덕사를 중심으로 호두나무는 자랐고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까지 탄생시킨 것이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의 원조는?

 


 

오디오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윤광준의 생활명품이란 책에서

 

'호두과자 원조 추정'을 만날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윤광준은 학화 할머니의 호두과자를 생활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베르샤체, 구찌, 샤넬...이렇듯 폼나고 우아하고 럭셔리한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화 할머니의 호두과자를

 

명품 반열에 올려놓은 저자의 마음씀 또한 깊어 보인다.


 

"천안이 고향인 후배에게 원조 호두과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중략)

 

호두과자를 좋아하는 난 원초적 의문으로 학화할머니 호두과자를 찾아냈다.

 

지금은 번화가가 된 천안시국도변에 제법 큰 규모의 생산시설과 매장을 갖추고 있다.

 

일제시대 천안역 부근에서 제빵 기술자였던 남편과 함께

 

구워팔던 빵이 호두과자의 출발이다.

 

원조에 대한 공인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난 그 진위를 판정할 만한 위치가 아니다.

 

출발 당시부터 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 아흔 넘은 심복순 할머니의 존재가

 

원조에 대한 심증을 굳히게 한다.

 

호두과자 하나로 7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텼고

 

변함없는 맛으로 천안 호드과자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윤광준의 생활명품>중에서


 

호두과자 참 흔하다. 이젠 천안의 명물만도 아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자동 기계들이 착착! 순식간에 몇봉지 숱하게 만들어 낸다.

 

도심의 거리를 걷다가 흔히 볼 수 있는 호두과자 이기도 하다.

 

이젠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라는 걸 자처하는 호두과자들마저도

 

광덕산의 호두는 내몰라라 싼 중국산을 쓴다고 한다.

 

벌써 오래전부터 분분하게 들리는 소문이다.


어린시절 홍익회 호두과자라는 걸 경부선 통일호 기차안에서

 

처음 알게 된지도 하매 20여년이나 흘렀다.

 

명품은 출발할때의 원칙과 기준을 변함없이 지킬때 가능하다.

 

 

호두과자를 징그럽도록 좋아하여 전국의 수많은 호두과자를 찾아 헤맨

 

저자는 학화 할머니의 호두과자 앞에 그만 주저앉고 만다.

 

반해버리고 만것이다.

 

 

 

이런 저자가 이 호두과자를 명품 반열에 올려놓는 이유는.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써서 정성껏 구워냈기 때문이다.

출발 당시의 원칙과 기준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몇푼의 마진을 위해 날림으로 만드는 휴게소의 그것과 다름이다.

무늬만 호두인 짝퉁의 얄팍함이 없다.

 

도톰하게 씹히는 호두의 맛이 먼저 느껴지는  풍성함과 부드러운 식감은

명가의 존재를 저절로 수긍하게 한다.

 

학화할머니의 호두과자엔 호두가 듬뿍 들어있다.

이름과 내용이 일치하는 먹거리인 것이다...

 

명품을 만드는 명인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처음 먹은 그 마음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2008년 5월 코엑스 도서축제 저자와의 만남 중에서 윤광준.

 

 

7080세대들은 어린 시절 기찻간에서   

천안 명물 [호두과자 있어요]라고 외치며

호두과자를 찾는 손님을 찾으러 수레를 끌고 다니던

 홍익회 판매원 아저씨의 귀에 익은 소리를 생각해 낼수 있다.   

 

 

 

 

 

[전국 휴게소에 90% 납품을 차지하는 대신제과의 호두과자]

 

 

 

 

대신제과의 민경묵 대표

 

 

 

 

 

 

한국철도공사 매점 코레일 유통에서 판매하는 대신제과의 호두과자

 

 

 

 

 

철도청 다니던 선친 1972년 창업, 홍익회와 거래 어려워 한때 위기

직접 트럭 몰며 고속도로로 개척…2代 민경묵 대표 취임후 매출 5배↑ 
 

 

기차 안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즐겨 사먹는 호두과자하면 떠오르는 곳이 천안이다.

1934년 천안에 거주했던 한 주부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호두과자는

70년이 넘도록 맛과 모양을 원형 그대로 간직한 국내 최장수식품으로 꼽힌다.

어느덧 천안의 명물이 됐다.

3일 안팎의 짧은 유통기한 탓에 천안을 중심으로 역세권에서만 취급하던 호두과자를

'전국구 식품'으로 만든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산업화와 함께 거미줄처럼 깔리기 시작한 고속도로망이었다.

여기에 1972년 창업 후 38년 세월 동안 호두과자란 한우물을 파면서

전국 유통의 물꼬를 튼 대신제과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대신제과는 현재 고속도로와 철도매점 등 전국 휴게소 판매물량의 90% 이상을 납품하고 있다.

1994년 작고한 민항기 회장은 직장생활만으로

네 명의 자녀를 키우기 힘들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철도청 공무원이었던 고 민 회장은 직장생활 인맥만 활용하면

쉽게 판로를 뚫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보유 부동산을 담보로

당시 돈 3억원을 차입해 호두공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호두과자만 만들면 거저 팔것이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대신제과가 기존 납품업체를 제치고 홍익회와 거래를 트기까지는 3년여 시간이 걸렸다.

시작하자마자 시련의 시간을 보낸 것.이에 따라

민 회장과 부인 정수복 여사는 철도역을 제외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그때 떠올린 게 고속도로 휴게소.갓 구워낸 호두과자를 트럭에 싣고,

당시 3개뿐이던 옥산 망향 천안 등 고속도로 휴게소를 돌았다.

트럭에 가득 실은 호두과자를 팔고나면 손에 쥔 돈은 10여만원."먹어보고 사시라"는 게

마케팅의 전부였지만 맛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천안 광덕산에서 나는 호두와 팥 등 재료를 매입하고,직원들 월급 주고나면 항상 자금사정은 빠듯했다.

1975년 홍익회 납품을 시작으로 회사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고속도로가 뻥뻥 뚫리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등 납품처가 늘어 회사매출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대신제과는 현재 철도역뿐만 아니라 150여개 고속도로 휴게소에

호두과자나 팥앙금,반죽 등 반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여행 · 레저산업의 부흥과 함께 천안 호두과자가 알려지면서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했지만

외환위기등을 거치면서 상당수 영세업체들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민경묵 대표(45)는 "호두과자 한 품목에 집중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에다

최고급 재료만을 엄선해 사용한 게 회사 성장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생산량만으로 턱없이 부족해 한 달 평균 7~8t의 호두는 미국에서,

팥은 중국 등에서 수입하지만 최고급만을 엄선해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두과자 제조 등에 대한 노하우를 묻는 거듭된 질문에

민 대표는 "오로지 38년 동안 호두과자만 만들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간단한 말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며

 "호두와 팥앙금은 거의 똑 같은 비율을 유지하는게

대신제과만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라고 귀띔했다.

민 대표는 1994년 9월 부친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경영일선에 참여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후 박사과정을 밟던

민 대표는 마케팅 총괄 상무로 3년간 어머니를 보좌하다가 1996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경영학 박사인 민 대표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회사 생산시설을 현대화시키는 등

회사 체질과 조직을 차근차근 바꿔나갔다.

천안에 있는 660㎡(약 200평) 규모의 공장을 4950㎡로 증축한 게 대표적이다.

도로망 확충과 여행레저문화 확산으로 호두과자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판단은 주효했다.

난립하던 영세업체들이 도산하면서 시장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민 대표 취임 당시 30억원 수준이던 회사매출은 지난해 149억여원으로 늘었고,

매년 10% 이상씩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데다 판매처를 넓힌다는 차원에서 직영점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현재 대신제과는 고속도로휴게소 10곳과 철도역사 10곳에 직영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의 니즈가 바뀌고 있는 것을 간파하고 다양한 퓨전 호두과자를 개발한 것도

젊은 CEO(최고경영자)의 작품이다.

 2004년 금산휴게소에 그 지역 특산물인 인삼을 갈아 반죽한 '인삼 호두과자'를 출시했는데,

일반 호두과자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매월 1억원어치 이상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소비자 반응에 고무된 민 대표는 제주지역에 '한라봉 호두과자'를 출시하는 등

 지역특산품과 호두과자를 결합한 '퓨전 호두과자'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 경영학에 정통한 민 대표이지만 호두제조기법을 포함해

몇 가지 '가업전통'은 오히려 소중하게 보존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창업 이후 지켜온 '무정년 제도'.현재 100여명의 직원 중

최고령자는 74세이고,30년 이상 장기근속자만 15명에 달한다.

정년 없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하는 이 같은 가족주의 경영은 수많은 위기상황을 뚫고,

오늘날 대신제과가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는 게 민 대표의 생각이다.

 

 

 

 

 

[천안 명물 호두과자의 원조인 학화 호도과자]

 

 

기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1934년 제과 기술자인 조귀금 할아버지에 의해 처음 만들어지게 됐다.

할아버지는 호두과자 만드는 기술을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아들에게, 그 아들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기술을 잘 배웠고,

 

지금 우리는 78년 전통의 호두과자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됐다.

3대째 대를 이어오고 있는 천안학화호두과자.

학화호두과자는 별도의 기구를 이용해 호두를 손질하고

 

순수 팥만을 선별, 3대를 이어온 비법 밀가루 반죽,

호두 조각을 넣고 기름칠하는 공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두과자에 큰 호두조각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원조 학화호두과자가 아니다`라고 한다.

 

 

 

 

 

 

 

 

천안 종합 터미널 근처의 학화 호두과자 - 2011년 7월

 

 

 

과자봉지엔 호도과자라고 적혀 있다.

 

표준말은 호두과자가 맞다.

 

원래 호도인데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호두가 표준어가 되었다.

 

 

 

24개짜리 호두과자 박스

 

 

 

 

 

학화 호두과자 서울 홍제점

 

 

 

서울 홍제점에서 갓 구워 포장된 천안 학화 호두과자

 

 

 

천안역 앞의 학화 호두과자 본점 - 2011년 9월

 

 

 

 

 

천안역 앞 학화 호두과자 본점 - 2011년 7월

 

 

 

77년 전통의 천안 학화 호두과자 전국 가맹점 모집중

  

 

 

 

 

77년간 호두과자의 원조 자리를 지켜온 천안의 명물

 

‘학화호두과자’(대표 조인호, www.hodo1934.com)가 가맹점 사업을 시작했다.

 

천안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학화호두과자는

 

1934년부터 지금까지 직접 만든 앙금을 사용해

 

그 맛이 다른 호두과자와의 비교를 불허하며 재료 역시

 

최상의 것을 아낌 없이 사용한 영양 만점, 웰빙 간식이다.

 

이처럼 천안의 대표 먹거리 학화호두과자가

 

지난 8월 26일 서울 ‘홍제점’을 시작으로

 

지역특산물에서 전국민의 먹거리로 화려한 도약을 시작했다.

첫 가맹점인 홍제점의 가맹점주인 류덕민(43)씨는 호

 

두과자가 천안에만 있는 것보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면

 

분명 큰 호응이 있을 것이라 예상해 호두과자의 창업을 고민했던 것.

 

때문에 류씨는 학화호두과자가 전국 가맹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창업을 결심했다.


창업자를 위한 본사 지원도 체계적이었다.

 

류씨는 천안 본점에서 2주 이상 교육받으며 고유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본사 담당직원들 역시 수시로 매장을 방문해 인테리어부터,

 

초도 물량까지 세세한 도움을 주었다.


류덕민씨는 “학화호두과자의 명성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나처럼 전국 가맹점 모집을 기다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피자 치킨 등 이미 호황을 누렸던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보다 돌잔치, 생일 선물 등

 

수요가 많은 신설 창업 아이템인 호두과자를 선택했다”고

 

호두과자 창업을 결심한 이유를 말했다.

 

이어 “창업을 제 2의 도전이라 생각하고

 

과감히 시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다른 예비창업점주들에게 조언했다.

학화호두과자는 서울 홍제점 외에도 2

 

011년 10월 초 중순에 수원 권선점과 수원 군산점을 잇달아 오픈 하면서

 

향후 전국적으로 가맹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또 신문, 인터넷, 잡지, 지하철광고 등 매체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지원하며 가맹점이 증가할 경우

 

더욱 대대적인 마케팅 및 홍보활동을 통해

 

가맹점의 매출활성화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photo from :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