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 병기

별명이 암캐였던 소련군의 자주포 SU-76 [WW2 Soviet Army SU-76 Self Propelled Gun,s Nickname is Bitch]

슈트름게슈쯔 2012. 3. 23. 13:06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SU-76 자주포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진격해 들어오는 소련군의 자주포 SU 76 - 1945년

 

 

 

독일 묄하우젠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SU-76 자주포와 소련군 - 1945년

 

 

 

SU- 76 자주포에 76.2mm 포탄을 장전시키는 소련군 전차병

 

 

 

독일 베를린 교외로 진격해 들어온 소련군의 SU-76 자주포 - 1945년 4월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입성한 소련군의  SU-76 자주포 - 1945년

 

 

 

베를린 시내의 독일군 거점 건물에 SU-76 자주포의 76.2mm 포로 포격을 가하는 소련군 - 1945년 4월

 

 

SU-76 자주포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과 그 이후 한국전에 까지 사용된 소련군의 자주포였다.

SU-76 자주포는 소련군 T-70 전차의 차체를 베이스로 제작되었다.

특기할만한 부분은 SU-76 자주포가 소련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많은 생산 댓수로 생산했었던 T-34 전차 다음으로

두번째로 많이 생산된 장갑 차량이었다.

 

 

 

SU-76 자주포의 차체로 활용되었던 소련군의 T-70 전차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산되었던 소련군 자주포 이름의 주된 특징은

주로 주포 구경의 규격으로 지칭한 형태를 보여준다.

SU-76 자주포는 소련군의 대표적인 야전포인 76.2mm 포를 채택하였다.

그래서 SU-76으로 명명되어 졌다.

SU-76자주포는 1942년부터 1945년 까지 도합 1만4000대의 엄청난 수효로 생산되었다.

특히 이 자주포는 그 사용법이 단순했다.

그래서 그러한점이 소련군 전차 승무원들에게 용이하게 작용하여 

이 차량에 대한 신뢰성이 높았고 인기가 있었다.

또한 독특하게도 SU-76 자주포의 별명은 러시아어로 Suka(암캐)또는

'Suchka' (little bitch) or 'Golozhopiy 였다.

영어로 직역하자면 화냥기가 있는 암캐인 Bitch가 된다.

이제껏 발달 되어온 전차의 개발 역사에서 볼수 있듯이 

각국의 전차 개발사는 상대국의 신형 전차를 모방하여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온 형태를 보여준다.  

소련군 SU-76 자주포의 디자인 또한 독일 포르셰사에 어필되어

페르디난트 자주포 설계에 영향을 주게 된다. 

 

소련군의 SU-76자주포는 한국 전쟁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SU-76자주포는 1948년 소련군이 북한에서 철수하면서 30대를 양도하고

이후 북한군은 1945년 4월에 소련으로부터 60대를 도입하는등 6.25사변 직전까지

176대를 보유하게 된다.

 

 

남한으로 침략해 내려온 북한군의 SU-76자주포는 6.25 사변 당시 대부분 유엔군과 국군의 공격에

파괴되고 일부가 노획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 미군 함정에 전차대 해군 함정의 교전을 벌여

미군에게 타격을 가했던 한국전의 역사에 기록이 되어있기도 하다.

 

 SU-76 자주포는 한미 해병의 서울탈환작전 때에도 최후까지 서울시에 남아서

저항을 했었던 북한군의 기갑차량이었다.

 육상전에서 별로 성과가 없었던 북한군의 소련제 SU-76 자주포는

미 해군의 6.25전쟁 전사에서 미군에게 공격을 가하여

피해를 끼쳤던 사례로 기록이 되어 있다.

SU-76 자주포가 공격을 가하여 대파시킨 목표물은 미 해군의 함정이었다.

 북한은 남침을 급히 서두르느라 미군의 개입을 염두에 둔 입장에 따라 여러가지 준비를 제대로 못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해안의 방어 포진지들이었다.

북한은 개전 초 몇 달은 해안선 앞 1-2km 내에 유유히 떠다니는 UN군 함정들을 구경만 했었는데,

해안포대를 준비하여 인천상륙작전에서 미 해군 함정에게 발포를 가하게 되었다.

동해안에서는 해안 포대 준비가 늦어져 1950년 12월 23일에 SU-76 자주포의 첫 발포가 있었다.

 그 포화의 피해를 받은 함정은 미해군의 구축함 Charley.S.Sperry[DD-697]함이었다.

 

성진 부근에서 미군 구축함에 세발을 명중 시켰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함정의 피해도 경미하여

일본 사세보에서 수리하여 동해안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이 구축함은 북한군과 중국 공산군이 꾸준히 그 세력을 늘려온

해안 포대의 화력에 당한 81척의 미 함정중 최초의 함정이었다.

 1951년 소해 구축함 톰슨[DMS-38]은 한반도 북쪽 성진항에서 해안 목표에

40밀리 보포스 기관포 사격을 위해 접근했다가 은신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4대의 SU-76 자주포가 포격을 가하여 13발이나 명중탄을 맞았다.

톰슨은 화력을 총동원하여 응전하면서 외해로 대피했지만 3명의 전사자와 4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육군의 기갑차량과 해군의 전투 함정이 맞붙는 육,해의 대결은 매우 드물다.

그러한 예를 들어 보자면 2차 세계대전 당시 1943년 8월 

이탈리아 메시나 항구에서 독일군 헤르만 괴링의 강하 기갑사단 타이거-1 전차와

연합군의 전함이 전차대 전함으로써 서로 포격전을 주고 받은적이 있었다.

 

한국의 6.25전쟁 중에는 원산항에서 미 구축함에게 중공군의 T-34 전차가 도전하였다가

5인치 함포의 세례를 받고 도주 한 일이 있었지만,

그 뒤 미군의 월남전에서는 이런 기갑 차량과 함정의 전투는 없었다.

 

 

성진에서의 북한군 SU-76 자주포의 포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서 독일 본토 전선으로 물밀듯이 쇄도하여 

치열했던 베를린 전투에서 SU-76자주포를 볼수 있었던 이후 

지구촌의 다른 전장이었던 한반도에서 미군을 상대로 벌여던

육,해 교전의 진귀한 전사의 형태를 기록했다.

 

미 해군의 측면에서 보자면 해군 함정 레이더에서 미처 북한의 해안에 매복한 자주포를

제대로 탐지하지 못하고 소련제 76.2mm포 포화에 일격을 당했던 뼈저린 형태의 

교훈을 얻었던 사례였다고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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