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부산 중앙동의 40계단과 경상도 아가씨

슈트름게슈쯔 2012. 5. 30. 10:32

 

 

부산역의  대화재가 발생하기전의 중앙동 40계단

 

부산은 1950년대뿐만 아니라 60년대와 70년대까지 크고 작은 화재가 유난히 많았던 도시다.

화재의 원인은 수도 피난민의 판잣집이 대개 원인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은 바다의 거센 해풍에 불길을 잡을 수 없는 큰 화재로 번져갔다.

중앙정부가 환도한 22일 만에 일어난 부산역 대화재. 근처 동리는 거의 초토가 되었다.

이는 전쟁의 간접적인 화마였다.

수도가 환도한 후 피난민이 두고 떠난 판잣집의 화마를 다시 건설하는 힘든 업을 떠맡은 부산,

그 화마로 인해 피해를 유난히 많이 본 곳은 부산시 중구 중앙동 40계단 주위 일대이다

 

 

부산역 대화재 후의 중앙동 40계단 - 1953년

 

 

그림은 아는 만큼 본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은 몰라도 사진은 다 알려준다.

사진의 기록은 이런 의미에서 그림보다 위대하다고 할까.

40계단에서 부산역 방향으로 약 150미터쯤 되는 곳과 그 곁에 야트막한 언덕 같은 산이 두 곳 있었는데,

이를 쌍산이라 불렀다.

쌍산 주변 아래 해안엔 논치어장이라는 정치망(定置網, 자리그물) 어장이 있었다.

 40계단의 윗길은 지금의 초량방면으로 통하는 산길로 영선 고개라 불렀다.

1876년 강제 개항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을사보호 조약 이후 대륙침략을 꿈꾸며

부산항을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부산항 확장 공사를 실시하고,

1902년 부산북빈매축공사를 시행한 현장으로 1905년 당시 40계단은, 부산 북항 일대로 해안이었다. 

 

 

 

 

부산역 앞 - 2012년 5월 29일

 

 

어떤 아픔도 세월을 이길 장사가 없고, 세월을 약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세월은 바위하나를 모래로 만들만큼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가 있은 이후, 3년 뒤인 1956년에 다시 국제시장 화재로 인해 집을 불태운 이재민들이

40계단 주변에 몰려들어 집단 판자촌을 형성했다고 한다.

부산역전 대화재로 잿더미가 된 집이, 3천여채나 되었으며,

29명의 사상자에 6천 세대의 이재민을 만들었고,

이듬해는 새벽 용두산에 자리 잡은 피난민촌에 불이 나서 무려 1100세대 가까운 이재민을 내었다고 한다.

 이 때 불타서 민둥산이 된 용두산은 뒤에 용두산 공원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한다.

수도 환도 이후, 전쟁의 잔해 같은 판짓집의 연이은 화재로 인해 부산 시민들은

전쟁보다 더 가난과 허기에 시달려야 했다.

어디 6.25 전쟁의 상흔이 없는 곳이 이 땅에 어디 있을까 마는,

부산만큼 안으로 시퍼렇게 전쟁의 아픈 멍이 든 도시는 없는 것이다. 


 

 

 

부산 중앙동


 

중앙동은 부산 행정의 중심지였고, 부산 상권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제 중앙동은 부산시청이 연제구로 옮겨가면서 지리적 중앙역할을 유지하면서 부산을 지키고 있다.

지리적으로 한가운데이면서 상업도시 부산의 변두리로 변해가는 중앙동,

그래도 '바람이 불면 중앙동으로 가고 싶다'는 노래를 부르는 노시인들이 많고,

 예술인들의 사랑방 같은 옛날식 주점과 옛날식 다방이 아직도

적산가옥의 낡은 건물 안에 서울 인사동과 같은 중심문화를 지키고 있다.

'세월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다'는 <사기>에 나오는 말처럼

세월은 중앙동의 번영과 중심 문화를 다 잃게 만들었다.

서울의 명동을 연상케 하던 남포동 황금어장의 상권들도

지난날의 화려한 번영을 추억하는 쓸쓸한 불빛만 지키고 있다.

많은 것이 변화하고 바뀌지만 아직도 산동네 판자촌의 형태는 남아 있고,

그 산동네로 올라가는 돌계단들은 여전히 아랫동네로 내려오는 길을 잇고 있다.

이 아득히 높은 산동네의 계단에는 웃지 못할 오래된 일화가 있다.

전후 부산에 놀러온 외국인 여행객은 판잣집의 높은 층층대 불빛에 깜짝 놀라서,

 이렇게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감탄했지만,

다음날 아침에 부산역 앞 어느 여관의 창을 열어보고,

산동네 고지대의 밀집된 판자촌에 다시 경악했다고 한다. 

 


 

 

 

 

부산 초량 외국인 거리 입구

 

 

 

 

 

 

 

40계단 엎 골목의 흑표범

 

 

 

40계단 옆골목 입구 음식점의 에어컨  송풍기 위에 도둑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위의 처마 모서리 부분은 도둑고양이의 은신처이자 보금자리에 암컷과 새끼들이 같이 보였다.

제비도 아니고 도둑고양이들이 그런곳에 은신처를 마련해 놓고 있는데 대하여

주인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데 대하여 그 업소 주인의 너그러움을 느낄수가 있었다.

 

 

 

음식점 주인은 업소 입구의 측면 벽의 뚫린 공간에 도둑고양이 부부가

새끼들 낳아 가족을 이루고사는데  대하여 이를 허락한 모양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인 수컷 검은 고양이

 

 

 

 

 

 

부산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거리는 어디일까?

바다가 보이는 자갈치 시장일까, 아니면 영화의 거리 남포동일까,

탁 트인 수평선이 보이는 해운대 해수욕장일까.

사실 부산은 어느 곳을 찾아도 바다가 가까이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그러나 가장 부산 사람들의 인정과 부산의 삶이 묻어나는 거리는 중앙동의 뒷골목 거리가 아닐까. 

그 옛날의 집과 건물들은 상전벽해처럼 변했지만, 

6. 25 전쟁 당시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사십계단 문화관과 오래된 적산가옥과 낡은 건물들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옛골목길이 드물게 남아 있다.  

아주 옛날은 사십계단이 있는 계단 밑까지,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였다고 한다.

피난민들은 '경상도 아가씨'의 노래비의 가사처럼 이곳에 앉아 실향의 그리움을 달래었다고 한다.

 

 

 

 

 

 

 

 

 

 

 

 

 

 

 

 

 

 

 

 

 

 

 

 

 

 

 

 

 

 

 

 

 

 

 

 

 

40계단 윗동네

 

 

 

 

 

 

 

 

 

 

더운날 친구들과 같이 저녁때에 맥주 한잔 하기에 운치 있는 장소인 중앙동 40계단 앞의 편의점 파라솔 방갈로.

 

 

 

 

 

자~아  40계단 동네와 검은 고영이  빠이 빠이 ~~ 다음에 또 봅시다.

 

 

 

 

40계단을 떠나 지하도를 올라 자갈치 입구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둑어둑 해진 저녁때 ....

 

 

 

중딩인지 고딩인지

 

서로 서로 만나는 장면은 그 옛날과 같네 ~~

 

 

 

 

 

 

 

부산 중구 광복동의 밤 풍경

 

 

 

연인들의 썬글라스 고르기

 

 

 

 

 

부산 중구 신창동의 밤 풍경- 2012년 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