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 병기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도쿄 미쓰비시 전차 공장[WW2 Japan Tokyo Mitsubishi Tank Factory]

슈트름게슈쯔 2012. 7. 7. 16:53

 

 

일본 97식(Type-97) 치하(Chi Ha:Shinhoto)신호토 전차 생산 공장

 

97식 치하 신호토 전차의 제작은 미쓰비시(Mitsubishi)와 히타치 (Hitachi),사가미(Sagami),

니혼(Nihon),세이코소(Seikosho)등의 기업에 제작 명령이 떨어졌다.

이 전차의 주포는 47mm와 57mm 두가지 형태가 있었다.

57mm 주포를 장착시킨 전차에는 HE탄 80발과 AP탄 40발을 적재할수 있었고

7.7mm 공랭식 기관총의 실탄 2575발을 적재할수 있었다.

47mm 주포를 장착시킨 전차에는 114발의 포탄과

7.7mm 기관총의 적재량은 똑같은 2575발을 적재할수 있었다.

 

 

 

97식 치하 전차의 개량형 카이(改 Kai)

 

주포 교체로 포탑을 재 설계했지만, 장갑 두께는 늘지 않았고 다른 큰 개량 부위도 없다

97식 개량형은 길어진 포탑으로 쉽게 식별되는데, 약간 우측으로 치우쳤다.

거의 둥근 꼴이던 원조 포탑은 직각의 튀어나온 꼴로 바뀌고 길이는 늘어나고 높이는 낮아졌다.

포탑은 76 인치 길이에 56 인치 너비 이다.

원조 차량에 있던 포탑 위에 둘러 쳤던 손잡이 고리는 폐지했다.

 

97식 전차의 개량형은 1937년 첫 생산된 15톤 전차를 개량했다.

일본에서 중형 전차라 하지만,미군의 경전차 M5A1과 거의 같은 무게이다.

원조 97식이나 개량형이나 차체는 같으며, 둘다 V-12 기통, 오버헤드 밸브식 공랭 디젤 엔진을 쓴다.

주된 개량 점은 포탑을 고쳐 고속 47밀리포를 탑재한 것이다.

원조 97식은 저속 57밀리포로 대전차전투에 맞지 않았다.

 

 

 

일본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제작되는 95식 하고(Ha Go) 전차

 

 

공장에서 제작된 95식(Type-95) 전차 하고(Ha Go)

 

 

 

 

95식 하고 전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대표적인 소형 경전차였다.

이 전차는 37mm 소구경 주포를 장비하였고 최고 시속은 도로에서 45km를

낼수 있었으며 무게는 7.4톤에 불과했다.

하지만 95식 하고전차는 일본이 1936년부터 1943년까지 제작한 기갑병기중

그 생산댓수가 2300대로 가장 많이 생산한 경전차 였다. 

95식 하고 전차는 중일전쟁중 일본군이 중국군과 벌였던 시노 전투에 사용했으며

소련군과 벌였던 할힌골 전투에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태평양 전선 전역에서 사용한 전차이지만

결코 미군의 소형 경전차였던 M3 스튜어트 전차나

그 보다 규모가 큰 다른 전차와 대등한 전차전을 펼칠수 있도록

제작된 전차가 될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기갑전력이 거의 전무하거나 미약했던 영국군을 상대로한 동남아 국가 침략때와 

중국 침략시 중국군을 상대로 효력을 발휘했을뿐 미군을 상대로 전투시에는

미군전차의 손쉬운 타겟에 불과했었다.

태평양 전쟁말기에 일본군은 이 95식 하고 전차를

열대지방의 식물을 뜯어다 차체에 덮어 위장하여

그들의 진지 입구에 방어용 포대로 활용할수박에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97식 치하(Chi Ha) 전차 생산 공장의 모습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생산했었던 97식 치하 전차는

무게가 15.8톤에 전면 장갑의 두께가 33mm 였던 일본군의 대표적인 경전차였다. 

 

  태평양 전쟁 당시 치하 전차는 일본제국군에 의해서 각 전선에서 널리 사용 되었던 전차였다.

하지만 이 전차는 태평양 전선에서의 미군이 주력으로 이용했던

37mm포를 장착했던 소형 경전차였던  M-3 스튜어트 경전차 조차

상대로 전투를 펼치기도 힘들었다.

 

그러했던 이유는 기갑차량을 상대로 벌이전 전차전에서는

주포의 구경이 비교적 작더라도 우수한 성능을 가진 철갑탄을 기본적으로 사용해야

중장거리 사격에서 좋은 효과를 발휘할수 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야금학의 수준은 형편없었다.

금속중에서 강도가 가장 높고 마멸성이 가장 적은 단단한 금속은

중석이라고도 불리는 텅스텐이다.

일본은 이 텅스텐을 탄두로 사용하는 철갑탄 제조 기술이 형편 없었다.

미군 전차를 노려 포탄을 제대로 발사한 후에  

그 탄두 자체가 미군 전차의 장갑을 결코 관통시킬수 없었고 

 미군 전차의 외부 장갑에 부딛쳐 그대로 부서져버렸다.

즉 철갑탄 이래도 그것은 유탄포의 수준이었던것이다. 

그래서 경전차라고 할지라도 측면이나 틈새를 노릴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미군의 M3 스튜어트 경전차를 상대로 실험을 해본 결과

500m에서 주포를 발사해도 전차 외부에 칠해진 페인트만 벗겨졌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했던 대전차 능력이 없는 57mm 포와

일본군 전차의 최대 약점인 빈약한 장갑에 있었다.

 치하전차는 장갑판 제작시 철판을 접합하기 위해

전차 외부에 못자국이 보이는듯이 점점이 튀어나온

리벳을 박는 리벳 접합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시대에 뒤떨어졌던 이 리벳 접합식 장갑판은 포탄에 피격되면

리벳 조각들이 전차 안으로 날아들어 승무원들을 살상시켰다

그리고 주포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서는 정차시킨 후 엔진을 정지 시켜야만 했다.

시동을 켜져 있는 상태에서는 전차의 진동 때문에 정확한 포격이 불가했었다. 
기동성은 느려서 전차의 기본적 성능을 가늠하는 기본조건인 톤당 마력을

살펴보면 출력비(마력/톤) 11hp/ton으로 15톤정도의 가벼운 

전차의 최고속도는 고작 시속 38km/h 였다.

그에 비하여 미군의 경전차 M3 스튜어트 전차는

최고시속이 도로에서 시속 58km의 속력이었고

 야지에서는 시속 30km의 속력을 발휘했다.

 

97식 치하 전차는 이미 구식이 된 89식 이고(또는 치로라 불림)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치하 전차의 전차포는 여전히 대전차 전투능력이 없는 57mm 단포신 유탄포였으나

장갑을 33mm로 늘리고 엔진은 미쓰비시 97식

170 마력 엔진을 장착하여 기동력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후 빠르게 개량되던

독일,소련,미국,영국의 전차에 비해 개선이 느리게 진행되어

1942년에야 47mm형 대전차포를 탑재한 카이(Kai : 개 改 )형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중일전쟁 이후로 97식 치하 전차는 일본군의 주력 중(中)전차로 사용되었다.

태평양 전쟁 발발 후 개량형인 카이(Kai : 개 改)는 미군의 스튜어트 경전차를  상대할 수 있었으나

M3 리 전차와 M4 셔먼 전차등의 연합군 중전차와는

전연 상대가 되지 못했으며 이후

1식 중전차 치헤와 3식 중전차 치누의 개발과 생산이 시작되면서

1943년 이후로 생산이 중단되었다.

 

 

 

미쓰비시 전차 공장에서 생산된 일본 육군 제 4사단의 Type-3 치누(Chi Nu) 전차(주포 75mm) 생산댓수 : 166대

 

 

주포 구경이 75mm에 전면 장갑이 50mm에 중량이 18.2 톤이었던

3식 중전차 치누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제작되었던 일본군의 중전차였다.

 

 

일본군은 비교적 신형이었던 97식 전차 카이(Kai : 개 改 )와

1식 중전차 치헤의 47mm 전차포로도

전선에서 연합군 중전차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러한 관계로 당시 개발 중이었던 4식 중전차 치토와 1식 중전차 간의 갭을 메꿀 필요가 있었다.

일본은 또다른 신형 전차를 개발할 수는 없었으므로 1식 중전차의 차체에

90식 야포를 개량한 3식 75mm 전차포를 탑재하고 3식 중전차로 제식화하였다.

이 포는 미군 M3 리 전차와 M4 셔먼 전차에 탑재된 M3 전차포와

구경은 같았으나 일본군 75mm 포의 성능은 떨어졌다.

전차포와 새 포탑을 제외하면 1식 중전차 차체를 그대로 채용하였기 때문에

아직 연합군 전차에 비해 장갑이 현저히 얇은 편이었나,

양산된 일본군 전차 중에서는 성능이 가장 우수했다.

 

미군의 일본 상륙시 본토 결전을 대비해 혼슈섬과 규슈섬에  배치되었던

전차 부대중 최소 6개 연대가 3식 중전차로 무장하였으나,

연합군의 상륙 이전에 종전이 되었기 때문에 실전에 투입된 적은 없다.

 

 

 

 

 

 

 

photo from : Axics History Fo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