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괴인열전

김도원 화백의 그림들

슈트름게슈쯔 2012. 9. 12. 11:42

 

 

 

2007년 3월 8일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교수인  이남호교수는 조선일보에

삽화를 그리는 김도원 화백에 대하여 재미있는 호평을 하였다.

 

“우리 집에서는 오래 전부터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순전히 김도원의 삽화 때문이다.”

 

그는 월간 ‘현대문학’ 3월호에 산문 ‘내가 ‘조선일보’를 보는 이유’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지면에 삽화를 그리는 김도원 화백의 매력을 풀이했다.
‘김도원의 삽화는 개성이 강하면서도 남(신문 기사)을 위해서 존재하고,

 순전히 남을 위하면서도 자기가 없어지지 않는다.’

‘유머가 있고, 천진난만하고, 단순하다.

그리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편하다.’…

이남호 교수는 “김도원 삽화는 아이들 그림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

특히 얼굴이 몸에 비해 비사실적으로 큰 점이 아이들과 그림과 비슷하다”며

“김도원의 삽화에는 언제나 사람이 중심인데,

세 사람 이상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교수는 김도원 삽화를 미국 만화 ‘피너츠’의 주인공 찰리 브라운과 비교,

‘큰 얼굴, 정감 어린 표정, 단순한 선, 고급한 유머와 지적 품위’를 공통점으로 꼽았다.

“기이하고 불안정한 미학들이 범람하는 우리 시대에

김도원 삽화의 미학은 더욱 소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 이 교수는

 “나는 내일 아침도 신문을 펼치고 ‘do’라는

사인이 들어 있는 조그만 그림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사상 첫 '기사삽화' 그린 김도원 화백

 

2004년 9월 22일 조선일보에 등재되었던 기사

 

 

오른쪽 아래 그림, 낯이 익으시지요. ‘do’ 사인 많이 보셨죠?

네, 그렇습니다. 간결한 선과 독특한 필치로 조선일보의 지면을

35년째 장식 중인 김도원(金道源)화백의 그림입니다.

올해 칠순의 김 화백은 한국 언론 최초로 ‘기사삽화’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기사삽화는 시사만평도, 연재만화도, 소설삽화도 아닌 그야말로

추상적인 기사 내용을 압축해 시각으로 전달하는 ‘그림기사’죠.

1970년대 김 화백이 조선일보 지면에서 이를 처음 선보였을 때,

타사 화가들이 “당신 때문에 우리가 죽을 지경이니 그리지 말라”고 협박해 도망다니기까지 했다나요.

지금은 모든 신문이 기사삽화를 쓰고 있지만, ‘원조(元祖)’ 김 화백의 지명도는 압도적입니다.

신문 잘 안 읽는 고등학생들도 그의 그림을 인기 1위로 꼽을 정도죠.


 

 

 

김도원 화백은 1935년생으로,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지금의 디자인대학)를 중퇴하고,

 69년 조선일보에 ‘도안사(圖案士)’로 입사했습니다.

 간단한 로고컷이나 지도 정도를 그리던 역할을 넘어

독보적인 입지를 굳혀 편집국 국장대우까지 승진했죠.

 

 

 

지난 94년 정년을 맞았으나 그 뒤로도 계약직으로 10년 넘게 일했고,

 올 9월 계약이 끝난 후에도 프리랜서로 조선일보에만 그림을 그려주기로 했답니다.

정치·사회·경제·문화기사는 물론, 수많은 팬을 확보한 연재물 ‘리빙포인트’ ‘생활한자’,

각종 대외홍보물에서도 어김없이 빛나는 김 화백의 그림은 35년째 조선일보의 얼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루 10여컷의 삽화를 쏟아내지만 김 화백의 그림은 어느 하나 진부한 것이 없습니다.

항상 젊고 기발하고 고급스럽지요.

칠순인 그의 취미가 ‘한밤중에 컴퓨터 액션게임 하기, 최신 DVD영화 보기, 외국 추리소설 읽기’라면

그 이유가 짐작되지 않습니까.

 

밤새워 아이디어를 충전해온 김도원 화백의

 

 

고소한 찰떡 같은 그림, 아침마다 계속 만나보세요.

 

 

 

이에 대한 어느 네티즌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이것이 '고소한 찰떡깥은 그림'입니까? - 조선일보의 '삽화본색'

 

 

조선일보하면 떠오르는 그림체가 있다.

바로 김도원 작가가 그리는 삽화인데,  

조선일보의 각 기사부터 리빙 포인트까지 전반에 걸쳐 이 그림이 나온다.

 어렵지 않으면서 마치 아이가 그린 듯 단순한 그림체는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그림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삽화는 역시 '조선일보'의 삽화 다웠다.

 

 

2007년 9월. 소아기호증에 관한 기사에 쓴 삽화  (출처 : 뉴스보이)


 

어떻게 호주 원주민 사회의 아동들이 소아기호증 환자들의

 

성폭력엔 노출되어있다는 기사에서 이런 원색적이고 저급스러운 삽화가 나올 수 있을까?

 

마이클럽의 여성 네티즌을 주축으로 인터넷 상에서

 

'아동 성폭력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묘사하느냐'며 조선일보에 삽화를 삭제하라고 항의를 했으나,

 

담당자는 삽화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는지 그림을 반으로 줄였다.

 

 

 

결국 네티즌들의 지탄을 받고 나서야 이 삽화는 삭제되었다.

 

 

 

 

그러나, 김도원 화백의 성적 만족이 이런 그림을 그리는 데서 오는 지는 모르겠지만

 

유사한 삽화가 또 나왔다.

 

 

 

 

며칠 전 자신이 태백산에서 입신수도한 도사라며

 주부들에게 기 치료를 명목으로 강간을 일삼은 땡중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또 다시 이런 삽화를 올렸다.

  이번에는 옷이 입혀진 상태였지만,

 소아기호증 삽화 사건과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는 '저급 삽화'의 결정판이었다.

김도원 화백의 저급한 삽화는 계속된다.

올해 초, 김도운 연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자신이 이번에 받은 연말정산 환급액의 10%를

은평천사원에 기부한 일화를 소개하며 연말정산환급액 10% 나눔 캠페인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조선일보에 보냈다.

그러나 이런 훈훈한 미담은 조선일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조선일보가 올린 삽화는 아래와 같았다.

 

 

 

 

 

기부 문화 선도에 오히려 앞장서야 할 언론사가 마치 기부받는 사람들을

 

길거리 동냥 거지로 여기는 것인가?

 하다못해 중앙일보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자'며 '위 스타트 운동'을 집중적으로 다뤘는데,

조선일보가 생각하는 기부 문화는 겨우 이런 것인가?

 

 

 

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하얀 사람의 신체를 먹으면

 부자가 된다는 미신 탓에 탄자니아에서 백색증 환자 17명이 희생당했다는

 소식을 전한 기사에서는 아래와 같이 잔혹한 삽화를 싣었다.

 비록 좋지못한 미신으로 탄자니아에서 이런 끔찍한 살인이 횡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이런 삽화를 굳이 싣을 필요성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끝으로 조선일보의 무개념 삽화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올해 3월 21일자 기사로 호스트바에 갔던 20대 여성이 호스트가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성적으로 모욕했다며 술김에 호스트를 때려 호스트의 수술한 코를 망가뜨리는

일이 일어났다는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또 이런 삽화를 싣었다.

 

 

 

이번에는 조선일보에서 올라올 때부터 모자이크 처리가 됐지만, 역시 가관이다.

한 네티즌은 이런 조선일보의 삽화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후대에 인간의 몰지각함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좋은 사료가 될 것 같다'며

 

조선일보의 '개념'없는 삽화를 조롱했다.

 

개인적으로 100년 뒤 국어사전에서 '좆선스럽다'는 '

 

90여 년 전 조선일보의 몰지각하고 개념없는 기사와 행동을 빗댄

 

비속어'로 실리기를 바래본다.

물론, 그림을 그린 것은 어디까지나 김도원 작가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월간문학에 '김도원 화백의 삽화를 보려고

 

조선일보를 본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으며 2004년 8월에 김도원 작가가

 

조선일보를 퇴사할 때에는 '김 작가의 그림이 계속 될 것'이라며 이런 기사를 썼다.

 

하루 10여컷의 삽화를 쏟아내지만 김 화백의 그림은 어느 하나 진부한 것이 없습니다.

항상 젊고 기발하고 고급스럽지요.
칠순인 그의 취미가 ‘한밤중에 컴퓨터 액션게임 하기,

최신 DVD영화 보기, 외국 추리소설 읽기’라면 그 이유가 짐작되지 않습니까.
밤새워 아이디어를 충전해온 김도원 화백

고소한 찰떡 같은 그림, 아침마다 계속 만나보세요.


 

조선일보는 30년 넘게 그림을 그려온 김도원 작가를 이처럼 대단히 우대하고 있고,

 

항상 '젊고 기발하고 고급스러운' 저급 삽화를 취사 선택하는 것은

 

조선일보 편집 당국이기 때문에 이런 '저급 삽화'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네티즌들의 항의에 그림 사이즈를 줄이는 것으로 대처하는 자세는 가히 조선일보다운 행보다.

조선일보의 논조가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지만,

 

하다못해 이런 평범한 사건 기사들에 삽입된 삽화마저 기사를 보기 싫게 만든다면

 

조선일보는 언론으로 부를 수 있을까? 알다가도 참 모를 일이다.

 

 

 

 

 

 

[김도원 화백에 대한 후배 만화가 윤서인씨의 또 다른 평가]

 

 

 

 

 

2012년 6월 12일

 

 

야후 포털 사이트의 조이 라이드(Joy Ride) 만화로 잘 알려진

윤서인씨는 조선일보의 '김도원' 화백처럼,

최소한의 선으로 최대한의 깊이를 담아내는 만평을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림으로 촌철살인 기사를 쓰시는 분은 아마도 그 분이 유일할 겁니다.

 만일 그 분을 제외하고 또 한명의 '화백'이 필요하다면 제가 되고 싶어요.

 경향신문의 '장도리'를 그리는 박순찬 화백도 정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좌, 우를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보고 그린다는 것에 진정한 가치를 느끼고 있습니다."

 

 

 

 

 

 

 

 

from : opennews.tistory.com/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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