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마르세유 유태인들의 강제 이송 [WW2 Marseille Gare dArenc Deportation of Jews ]

슈트름게슈쯔 2012. 10. 10. 16:11

 

 

 

 

 

마르세유 유태인 거주지를 폭파시키기 위해 폭약을 장치하는 독일군 - 1943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는 유태인들 - 1943년 1월

 

 

마르세유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럽의 항구 도시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나라에서 가장 프랑스적이지 않은 도시이기도 했다.

기원전 600년 그리스 인에 의해 처음 세워진 이 항구는 프랑스 영토가 된 이후에도 모든 지중해인들의 거처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이탈리아 인들이 대거 들어와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동유럽인들이 밀려들어왔다.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지 개척과 독립의 과정을 통해 알제리인과

베르베르인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나 현재 인구의 1/3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적군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땅을 적시도록...' 용맹하다 못해 잔혹한 가사로 가득한 프랑스 국가는

이 나라의 정체성이 혁명에 잇닿아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 노래의 제목이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인데, 1792년 혁명 당시 의용군으로

파리에 들어온 마르세유 사람들이 너무나 우렁차게 이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세유 인들의 반골 기질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둘러싼 세력 다툼을 위해 마르세유 항을 무참히 파괴했다.

도시는 1942년 11월부터 1944년 8월 사이에 독일에 점령되었는데,

구 항구의 북쪽인 파니에(Panier) 지역은 가난한 어부나 항구 노동자들의 거주지이자

레지스탕스, 공산주의자, 유대인들의 게토와 같은 곳이었다.

나치는 1943년 2월 단 하루만의 여유를 주고 2만 명의 거주민들에게 소개 명령을 한 뒤,

이 지역을 다이너마이트로 처참하게 파괴했다,

1940년 나치 독일은 프랑스 침공후 유태인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독일의 게쉬타포는 유태인들이 밀집해 있는 남프랑스의 마르세유에

비시정권 프랑스군과 독일군을 동원하여 유태인들은 색출하여 강제수용소로 호송시킨다.

나치 독일과 휴전 협정을 맺은 괴뢰정권이었던 페탱원수의 비시 정권(Regime de Vichy)은

프랑스에 소재한 유태인들 또한 그들의 국민들이었지만 나치 정권의 인종 정책에

대하여 자국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을 색출하여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나치의 군대를

결코 제지시킬수는 없었고 이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줄수 없었다.

비시정권은 자국의 군대까지 나치 독일군에 동원 협조하어 자국민 유태인들을 강제로 색출했던 것이다. 

결국 독일군과 휴전 협정을 맺은 비시 정권의 프랑스는 자국민 유태인들을 독일에 넘겼던것이다.

나치의 유태인 색출의 주목적은 유태인들의 재산 몰수와 재물 약탈및

전쟁 물자 생산에 동원시킬 무임금 노동 인력의 강제 송출에 있었던 것이었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