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한국전쟁 당시 육군 포병대의 57mm M1 대전차포[Korean Army Artillery 57mm M1 Anti Tank Gun during the Korean War ]

슈트름게슈쯔 2013. 4. 4. 18:12

 

 

한국전 6.25 동란 당시 U.N군으로 부터 57mm M1 대전차포를 지원 받은 한국 육군 포병대

 

 

 

한국전 6.25 동란 당시 M1 57mm 대전차포 이동 시키기- 1950년 8월




한국전쟁 6.25 당시 57mm 포병대원들 




한국전 6.25 동란 당시 한국군은 미국으로부터 북한군의 전차에 

대항하기 위한 병기로 57mm M1 대전차포를 100여문 정도 지원받았다.

대한민국 육군에게 있어서 대전차 병기가 전무했던 당시 

침략자 북한군의 소련제 T-34/85 전차를 격파시키기 위해서는 

철갑탄을 장비한 대전차포나 성형작약탄을 장착한 

독일군의 대전차 로켓 병기였던 판저 슈렉이나  판저 파우스트 같은 무기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국군에게는 그러한 무기가 없었다.

미국에서 지원받은 한줌의 57mm 대전차포 100문 정도 뿐이었다.

그런데 미군의 M1 57mm 대전차포에 딸린 포탄은 철갑탄이 없는 HE탄 뿐이었다.

한국군의 공식 전사에 따른 백선엽 장군의 회고에 의하면 미군에게 지원받은 M1 57mm 대전차포에

철갑탄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북한군 T-34/85 전차 사격에 대해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운반용 차량들은 부패 관료들이 죄다 자기 짐을 나르는 데에 이용해 버려

 애초에 운용 자체도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한다.

사실상 북한군의 소련제 T-34/85전차에 미국제 57mm M1 대전차포의 

HE탄을 날리는것은 거의 자살공격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미국제 57mm M1 대전차포의 HE탄으로는 

북한군의 소련제 T-34/85전차의 전면 장갑및 측면 장갑을 관통시킬수가 없었던 것이다.

57mm M1 대전차포의 HE탄 발사후 북한군의 소련제 T-34/85전차를 

격파시키는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포탄 발사시 내뿜은 화약연기로 인해 

한국군의 대전차 포대 위치가 바로 노출이 되어버려 

북한군 T-34/85전차 85mm 전차포의 사격을 피할수 없게 된다.

한국군은  57mm 대전차포의 HE탄으로 북한군의 

소련제T-34/85 전차에 사격을 가해도 적 전차대의 진격을 저지 시킬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국군 대전차 포병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응전 사격을 가하며 의외로 적 전차의 무한궤도를 파괴시키거나 

관측창을 파괴 시키는 등으로 북한군에게 피해를 주는 성과를 올리게 된

   그러나 야전부대의 57mm 대전차포대는 크나큰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러자 국군 포병대는 재빨리 미군으로부터   

당시 최신형이었던 M20 3.5인치 바주카포를 인수하여 일선부대에 보급하기 시작한다.

M20 3.5인치 바주카포를 지원받은 국군은 북한군의 소련제 T-34/85 전차

 가까이 목숨을 걸고 접근하여 90mm 로켓 포탄을 발사시켜 적 전차를 격파시킬수 있게 된다.

그러한 목숨을 건 적 전차 격파 성과로 인해 국군 포병대는 금방 전과를 올리기 시작한다

이후 낙동강 전투와 인천 상륙작전을 거치면서 90mm 대전차포를 장비한 

미군 M26 퍼싱전차의 화력 지원에 힘입어 대부분의 북한 공산군 전차가 전멸해 버려  

57mm 대전차포도 점차 전장에서 사라지고 

미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M2 105mm 곡사포등 

신형 화포가 속속들이 한국군에 지원되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57mm 구경의 영국군 대전차포는 일반적으로 6파운드 포라 불렀다.

영국군의 40mm 2파운드포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전차와 무장 전투 차량에 장착되어 이용되었다,

그러나 1942년 4월경 북아프리카 전선에 57mm 구경의 6파운드포가 투입되자

구경이 작은 40mm 구경의 2파운드포는 신속하게 대체되게 된다.

사실상 영국군의 57mm 대전차포는 독일군의 대표적이자 가장 우수한 대전차포였던

75mm 대전차포와 88mm 대전차포에 비하면 그다지 구경이 큰 대전차포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국군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57mm 대전차포로 인하여 독일군 전차및 기갑차량들에 대한

대전차포로 활용하던 25파운드포를 영국군의 지원용 포병대 역할로 되돌릴수 있었다. 

영국군 6파운드포는 2차 세계대전중 미 육군의 제식무기로도 채택되었는데

그것은  M1 57mm포였다.

M1 57mm 대전차포는 1942년부터 1945년 까지 도합 15637대가 생산되었다.

생산된 M1 대전차포의 3분의1은 영국에 전달되었다.

영국 포병 연대에서 57mm포는 1943년 부터 17파운드포 포병대와 같이 합류했지만

독일군의 강력한 중전차 타이거-1 전차를 격파시키기에는 6파운드포의 화력이 너무나 약하여

영국 보병부대에는 구경이 큰 76.2mm(3인치)의 17파운드포로 대체되게 된다.

57mm 구경 6파운드포의 무게는 2천5백20 파운드인 1,140kg이며

유효사거리는 1510m 였으며 최대 사정거리는 4600m 였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