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태평양 전선의 미 해군 2인 존 F 케네디 & 폴 뉴먼 [World War II in the Pacific U.S Navy Two soldiers John F Kennedy & Paul Newman ]

슈트름게슈쯔 2013. 9. 5. 21:34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PT 어뢰정 함장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1943년 8월 2일 훗날의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 해군중위가 이끌던

 PT-109함이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태평양에서 좌초했다.
운동 중 부상으로 척추가 좋지 않았던 케네디는 명망가이던 집안의 배경을 

이용하여 군에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하면서 해군 정보국에 보직된다.

하지만 데스크워크보다는 야전에서 뛰기를 원했던 그는 1942년 병과 보수교육을 받은 후 어뢰정 훈련을 받았으며,

중위로 진급함과 동시에 어뢰정장으로 보직되어 파나마에 배치됐다.

1943년 초부터 연합군은 과달카날 지역에서 일본군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주로 이 어뢰정(PT 보트)은 야간에 작전을 실시하며 일본군에게 기습을 가하는 역할을 했고,

특히 뉴 조지아 지역에 주둔 중인 일본군에 대한 보급선을 방해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1943년 8월 1일, 일본군의 폭격기가 PT 기지를 맹폭하여

PT-117과 PT-164함을 격침시켰고, 다수의 PT함들이 반파당했다.

하지만 이날 일본군이 퍼거슨 항로에서 부겐빌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해군은 케네디의 PT-109와 14척의 어뢰정을 급파했고,

PT 어뢰정들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후 다시 귀환길에 올랐다.

귀환길에 올라있던 케네디는 탐지당하는 것을 피하고자 새벽 2시쯤 보트를 정지했으나,

근방에 일본 연합함대 소속의 구축함인 아마기리함이 라바울에 900명의

 병력수송을 마친 후 일본으로 귀환하기 위해 고속으로 항해 중이다가 케네디의 어뢰정과 마주치게 되었다.

여기서 약간 증언이 엇갈리는데, 첫번째 설은 아마기리함이 PT를 발견하고 일부러 충돌을 하고 지나갔다는 설과

 두번째 설은 충돌하고 지나갈 때까지 아마기리 측은 몰랐다는 설이 존재한다.

어쨌든 두 함이 충돌한 후 케네디의 PT 보트는 완전히 두동강이 나 가라앉기 시작했으며,

아마기리 함장이던 하나미 코헤이 중령이나 소함대장이던

야마시로 카스모리 대령 모두 PT함이 폭발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당시 PT-169함이 근방에 있었으나 아마기리에 반격을 시도하다 실패했으며,

이들은 PT-109 생존자를 수색하지 않고 귀항해버렸다.

케네디는 반파된 함에서 선원들을 인솔, 일단 주변이 다 일본군 점령지인 것을 고려하여

무인도인 플럼푸딩섬에 상륙했다.

이들은 통나무에 몸을 싣고 수영을 하여 식량과 도움을 찾아 섬들 사이를 이동했으며,

 결국 올라스나 섬에 도착하여 코코넛을 발견하여 식량을 확보했다.

다행히도 8월 2일 PT 보트의 폭발은 호주해군에 의해 포착됐으며,

일본군이 PT-109를 격파했다는 소식을 감청한 후 생존자 구조를 위해 인원을 파견,

 폴리네시아 전통 카누를 타고 섬들을 수색했다.

케네디 역시 섬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소식을 전달, 일부 구조대원이 일본군에게 체포당해

 사망하기도 했으나 간신히 연결이 되면서 6일만에 구조되었다.

케네디는 이 사건으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해군/해병대 훈장(Navy and Marine Corps Medal)을 수상했다.

하지만 사실 이 사건엔 다른 해석도 있다.

"히로시마"를 쓴 소설가인 존 허시(John Hersey)는 당시 케네디 중위와 부하들이

전선에서 경계도 없이 잠을 자다가 아마기리와 충돌했다고 밝히며 폭로기사를 쓰겠다고 했으나,

케네디의 아버지가 손을 써 기사를 막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국민적인 영웅으로 만드는 글을 썼다는 것이다.

사건 경위야 어쨌든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일본군 속을 헤집으며 생환에 성공했으며,

이 경험을 밑거름 삼아 정계에 진출, 최연소 선출 대통령(최연소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즈벨트)에까지 오르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수병 폴 뉴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폴뮤먼은 미국 해군에 자원 입대를 하였다.

 그는 해군에서 3급 무선통신 기사였고 해군 함선의 포탑 기총수였다.

당시 17세의 폴 뉴먼은 해군 전투기의 파일럿이 되려고  했지만

색맹으로 인하여 오키나와 기지에서 어뢰 대대에서 근무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중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는

PT 어뢰정장이었다.

그리고 미국 헐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되는 폴 뉴먼 또한

어뢰 대대에서 전투를 임한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폴 뉴먼 부부와 존 F 케네디 2세 - 1996년  

 

 

 

 

 

 

 

photo from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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