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독일 난민 수용소의 어린이들[WW2 German Displaced Persons Camp Childrens]

슈트름게슈쯔 2013. 9. 7. 18:03

 

 

아기에게 수프를 먹이는 난민 수용소의 여성 - 1945년

 

누가 그랬던가 ?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은 가뭄으로 인해 거북 등처럼 갈라진 논에

비로소 물이 흘러 들어가는 모습과

굶주리며 배고파하는 사람들의 입속으로 밥이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난민 수용소에서 사발 커피와 당밀빵(molasses bread)을 먹는 러시아 어린이 - 1945년 4월

 

2차 세계대전 말기 진한 휴머니즘을 느낄수 있는 이 사진은 미국 Life 잡지의 종군기자겸 사진작가  

윌리엄 반디버트(William Vandivert)가 찍은 사진이다.

 

 

 

 

1945년 연합군이 나치스의 집단 수용소에  들이 닥쳤을때 그들은 인간으로써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아비규환의 현장을 목격했다.

나치 독일이 자행한 대량 학살의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해골 그리고 불에 타죽은 사람들의 재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또한 군인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수천 명의 생존자들(유태인과 비 유태인)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해방 후 많은수의 유태인 생존자들은 계속해서 잔존하는 반 유태주의(유태인 혐오 현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꺼려하였다.

귀환한 일부 생존자들은 삶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나타냈다.

이민의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수만 명의 집 없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다른 유럽 지역으로 가기 위하여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수백 개의 난민 센터와 난민 수용소(Displaced persons camps, DP)에 수용되었다.

다양한 유태인 단체들이 이러한 유태인 난민 수용소를 지원하였다.

또한 난민들은 스스로 단체를 조직하였다.

1944년 말, 유태인 여단(The Jewish Brigade Group, 영국군의 팔레스타인 계 유태인 군사 여단)이 결성되었다.

중부 유럽으로 추방된 전 빨치산 전사들과 함께 유태인 여단은

유태인 난민을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대이동(Exodus)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47년 영국은 4500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태우고 팔레스타인으로 향하고 있던

선박 엑소더스 1947(Exodus 1947)을 독일로 강제 송환했다.

대부분의 경우, 영국은 팔레스타인 이민이 거부된 유태인 난민을

지중해에 위치한 키프러스 섬의 포로 수용소에 억류하였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유태인 수용소 생존자와 난민들은

 새로운 독립국으로 봇물 넘치듯 흘러 들어갔다.

유럽에 남아 있던 다른 유태인 난민들은 수용소 생존자 또는 난민의 자격으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서부 유럽, 멕시코, 남미 그리고 남아프리카로 이주하여 갔다.

 

 

 

 

photo from : William Vandiv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