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한국 서울 원구단 황궁우[Korea Seoul Hwanggungu Pavilion at Wongudan]

슈트름게슈쯔 2013. 10. 19. 10:41

 

 

한국전쟁 직후 서울 거리의 시민들 - 도로 뒷편으로 원구단과 조선호텔 건물이 보인다.

 

 

 

한국에 거주했던 미국인 Bill Smothers 씨가 1958년 겨울에

 

조선호텔에서 찍은 서울 원구단 황궁우의 모습

 

 

 

1899년 축조한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 모습 - 1959년 4월 8일

 

그 옆으로 조선 호텔의 모습이 보인다

 

 

 

서울 을지로 입구 왼쪽의 반도 호텔과 오른쪽 조선호텔의 가운데로 보이는  원구단 - 1959년 4월 8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거리 정화 캠페인 시민헌장대회 - 1962년 4월 28일

 

왼쪽 건물이 반도호텔 가운데가 원구단 오른쪽이 대려도 건물이다.

 

 

 

1960년대 초반기 겨울로 추정되는 원구단의 사진

 

원구단 뒤로 반도 호텔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이 보인다. 

 

 

 

서울 소공동에 고충으로 건설된 프레지던트 호텔 옆에서 헐리고 있는 반도호텔 - 1975년 2월 19일

 

 

 

 

 

 

 

2013년 서울 소공동의 원구단 황궁우

 

 

 

 

서울 소공동에 자리하고 있는 원구단은 고려 때까지는 국왕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제단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서 성리학적 질서가 자리를 잡으면서

원구단은 스스로 황제가 아닌 제후국으로 자처하는 가운데서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 임금이 대한제국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황제라 칭하면서 다시 생겨났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 임금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원구단에서 하늘에 알리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이 원구단은 3개의 단으로 이루어졌으며, 맨윗단은 원뿔 모양의 덮개로 덮여 있었다.

 겉으로만 내세운 칭제건원이었지만, 천제단인 원구단은 황제의 격에 맞춰 상당히 위엄있게 지었던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남별궁이라는 건물이 있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대외자주성 특히 중국에 대한 자주성을 표방하는 칭제건원을 알리는 원구단이

임진왜란 뒤 중국사신을 접대하는 곳에 자리잡았음은 당연하기도 하였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자주성을 상징하는 원구단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온전할 수가 없었다.

일제는 1913년 원구단을 헐어내고 당시로서는 매우 호화스러운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다.

이 호텔은 뒤에 반도호텔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는 전국 각 지역과 연결되는 철도 정거장이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원구단을 헐고 온갖 사람들이 객고를 풀고 가는 호텔을 지었다.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완전히 몰락시키고 나아가서 욕까지 보이는 효과까지 얻어냈던 것이다.

반도호텔은 해방 뒤 미군정의 관리 아래 들어갔다가,

1968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 지금의 웨스턴 조선호텔 건물이 들어섰다.

 

 

 

 

 

photo from : Bill Sm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