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강제수용소행 화물 열차에 태워 지는 폴란드 게토의 유태인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강제수용소행 화물 열차에 갇혀 밖을 내다 보는 유태인들
강제수용소행 화물열차가 세워진 역에서 찍힌 이 유태인들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홀로코스트 사진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의 하나이다.
독일의 인종 말살 정책에 따라 유태인들은 격리구역인 게토에서
독일군들에 의해 강제로 화물열차에 태워져 며칠 동안 짐승처럼 갇혀 강제수용소로 향하게 된다.
물론 화물열차 내부에는 화장실이나 마실물도 비치되어 있지 않다.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동안 유태인들은 가두어진 상태의
화물 열차 내부에서 잠자리와 대소변 처리를 모두 그 속에서 해결 해야 되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유태인 학살과 관련된 어떤 홀로코스트 영화가 생각 날수 있다,
영화속의 장면 중 열차 내부에 갇힌 유태인 한명이 열차가 잠시 선
어떤 역에서 물을 얻어 마시기 위하여 화물 열차의 철조망이 쳐진 차창문 밖으로
독일군 병사에게 화물열차의 철조망 창 옆에서 그 곳을 보란듯 미친듯이
한손으로 금목걸이 조각을 연신 흔들어대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것은 며칠동안 물 한모금 못마셨으니
금붙이를 줄테니 제발 물을 좀 달라는 삶에 대한 절규의 몸짓이었다.
독일 포트 브렌동크 강제 수용소에 소재한 유태인 수송 화물 열차
독일 노이엔가멜링 강제 수용소에 소재한 유태인 수송 화물 열차
1933년 1월 30일 제 3 제국의 수상으로 정권을 잡은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에 국고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알아본 결과 완전히 텅 빈 상태임을 파악한다.
그리고 독일 은행들에 쌓여 있는 얼마되지 않는 대부분의 자산은 유태인들이 거의 쥐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후 히틀러는 경제적으로 독일인을 먹여 살리고 정치적으로는
독일인 대중에 대한 인기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하여
게르만족에 대한 순수 아리안인 혈통주의라는 인종적 선동정책과
그에 대한 반대적인 대상으로 유태인들을 지목하여 그들에 대한 인종 말살 정책을 추구한다.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항상 독일 자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 특별한 희생양을 찾고있었는데
그 첫번째 대상은 바로 독일 경제룰 쥐고 있던 유태인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히틀러의 첫번째 정책 목표 또한 유태인 말살 정책과
독일 내부에 있는 모든 유태인들의 재산 강탈을 우선적 목표로 삼는다.
히틀러는 유태인들에게 몰수한 재산들을 우선적으로
제3 제국의 주요 시설 건설에 투입하고 군국주의를 강화시키는 무기 생산에 투입시킨다.
그리고 재산을 몰수시킨 유태인들은 독일과 주변의 각 강제수용소로 격리시켜 수용한다.
노동력를 착취하기 어려운 병약자와 노인및 어린이들은 우선적인 학살 대상이 되었고
이후 나머지 살아남은 유태인들 또한 차례 차례로 희생 당되게 된다.
그로써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태인 말살 만행에 희생되어 숨진 유태인들의 인구 수는
한국의 부산광역시 인구 350만명과 대구광역시 인구 250만명을 합친 인구수인 무려 600만명이었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