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범죄

일본군의 거점에 미 해군의 폭격을 가이드한 일본군 장교 미노루 와다[Pacific War US Navy Bomber guided Japanese Army officer Minoru Wada]

슈트름게슈쯔 2013. 12. 16. 15:26

 

 

2차 세계대전 말기 포로가 되어  일본군 부대에 대한 정보를 미군에게 제공하는 일본군 정보장교 미노루 와다 중위 - 1945년 8월

 

 

태평양전쟁 말기 미 해군은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정글에 은신한

일본군 100사단의 거점 공격시 타격을 바로 가할수 있는 

그들의 유리턱과 같은 취약점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 부대가 숨어 있던 지역은 밀생한 정글속이라 그러한 거점을 알아낸다는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 마침 일본군 포로였던 미노루 와다 중위가 나타났다.

분명히 미국에게 있어서 일본군 포로였던 미노루 와다 중위는 A급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용 가치가 높은 비중이 큰  인물이었다.

미 해군 정보 장교이자 대학교수였던  윌리엄 플린은 이를 두고 미노루 와다는 천국의 선물이었다고 말했고  

이어 그는 일본 100사단의 명민하고도 이상적이었던 정보 장교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이 전쟁을 일찍 종결시켜 주었고

일본인들의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다.

 

 

 

 

 

 

 

 

팔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 지역 키바웨-타로모의 산속에 숨어 있는

 

일본 하라다 장군 100사단의 거점에 대한  폭격 지점을 미군 장교들에게 

 

가이드하는 일본군 포로 미노루 와다 중위- 1945년 8월

 

 

 

 

 

미 해군 폭격기 편대의 민다나오섬 일본군 100사단의 거점 폭격이 진행되는 동안

 

미노루 와다  그는 B-24 폭격기에서 대량으로 투하 되는다발 폭탄과 정굴을 불지르는

 

네이팜탄및 F4U 코르세어 전폭기의 로켓탄 공격과 기총 소사를 지켜보았다.

 

 

 

미 해군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에서 일본군의 거점에 투하시키는 폭탄을 바라보는 미노루 와다 중위 - 1945년 8월

 

 미 해군 폭격기 편대의 대량 폭격에도 폭격이 미치지 못하는 민다나오섬의

 

 깊은 정글속에서 살아 남아 숨어 있었던 일본군의 숫자는  22,000명이었다.

 

그들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정부의 공식 항복 선언이 있은 후 모두 미군에게 항복했다.

 

 

 

미 공군 B-24 폭격기 편대의 폭격이 끝난후 생각에 잠겨있는 일본군 포로 미노루 와다 중위 -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에는 묘하게도 미노루라는 이름과 성을 가진 2명의 장교가 있었다.

그중 한명은 태평양 전쟁시 진주만 공격과 인도양 공격및

미드웨이 해전에 에서 항공참모로서 활약했던 겐다 미노루이다.

겐다 미노루는 미드웨이 해전 후 항공 모함 즈이가쿠의 비행장으로 단기 근무 후

일본 대본영 군령부 제1과에 배속되어 제1 항공함대(기지항공대)의 편성과

카미카제 특공대라는 해군항공작전의 입안도 제출하였다.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겐다 미노루는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걸릴수 있는 애국자라고 할수있다.

하지만 겐다 미노루는 당시 미국인들과 아시아인들및

세계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일본 전쟁세력의 첨병적 역할에 일조한 자이자 전쟁 범죄자였다.

그러나 그는 종전후 1954년 일본 방위청에 들어가 항공막료간부장비부장과

 초대 항공총사령관및  제3 항공막료장에 취임한다.

그리고 1962년 자민당에 입당하여 선거 출마로 참의원 5위로 당선되었다

 

그러했던 일본의 전쟁 범죄자였던 겐다 미노루외에 또 다른 일본군 미노루가 한명 더 있었다.

그는 일본 해군의 정보 장교 였던 미노루 와다 중위였다.

미노루 와다중위는  태평양 전쟁 말기 미 해군의 포로가 되어

필리핀 민다나오섬 일본군 100사단 폭격시 일본 거점 폭격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던 자였다.

그는 당시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미노루 와다는 매국노같은 자로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필리핀 민다나오섬 정굴속에서 항복을 하지 않고 버티며 미 해군에 대항하던

일본군 100사단 병사들의 미군에 대한 자살 공격인 옥쇄 돌격을 일찍 종결시킨 자였다.

결과적으로 미노루 와다는  태평양 전쟁에 있어  일본의 집요했던

자살 공격을 빨리 종결시키는데 일조한 대단히 현명했던 일본인 이었다.

일본인들은 그러했던 미노루 와다의  평화적 성향을 기려야 한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는 20세기에 인류에게 참혹한 범죄를 자행한 일본 전쟁 범죄자들의 이름들을 새긴

위패들을 무슨 요리의 가짓수가 대단히 많은 식당의 차림표 처럼 벽에

걸어놓은 야스쿠니 신사의 목찰들을 모조리 거두어 불쏘시개로 활용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전쟁을 일찍 종결시키는데 일조했었던 미노루 와다 같은 의로운 자의

위패를 걸어 놓고 아시아 인류에게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과거를 매일 매일 반성하며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아시아 인류를 위해 매일 매일 참회의 제를 올려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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