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독일 헤르만 괴링 강하 기갑사단 판터 전차의 독특한 위장 채색[German Fallschirm-Panzer-Division Hermann Göring Panther Tank Comouflage Color]

슈트름게슈쯔 2014. 4. 10. 14:22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헤르만 괴링 강하 기갑사단의 D형 판터 전차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실레지아 지역으로 이동하는 헤르만 괴링 강하 기갑사단의 G형 판터 전차- 1944년




독일 MAN-MNH 사에서 제작된 헤르만 괴링 강하 기갑사단 G형 판터 전차의 독특한 위장 채색 무늬




 2차 세계대전 당시 역사상 전무후무한 형태로 전차로써 무장한 공군 부대가 있었으니

그것은 이름하여 나치 독일의 멍청했던 공군 원수 헤르만 괴링이 만든 강하 기갑사단이었다.

헤르만 괴링의 강하 기갑사단은 자기 자신의 공명심과 경쟁심의 산물이었다. 

그것은 원래 강하 기갑사단 부대는 공수부대였고 처음부터 독일군의 공수부대는 

타국의 공수부대가 육군 소속인 것과는 달리 공군 소속이었다.

 이것 역시 나치 독일의 기괴한 인물이었던 헤르만 괴링의 전공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외적으로는 작전상 독일 항공부대와의 원활한 연계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독일 군부에서 괴링의 그러한 아집에 의한 독선을 믿을만한 자는 없었다. 

2치 세계 대전 초기 전격전에 의해 독일 육군의 눈부신 공적에 괴링은 군침을 흘리며 

자기 나름대로 육상전투에서도  활약을 할수있는 공수부대를 더 키워서 

자기자신의 휘하에도 기갑사단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일어난 것이었다.

 독소전쟁 당시 그렇지 않아도 독일 육군은 주로 도보에 의해 전선에 투입이 되고 있었고

그와 같이 가뜩이나 여러 가지 장비들이 모자라는 판에 

강하 기갑사단을 창설하려는 헤르만 괴링의 팔슈름 야거 공수부대에 빼앗겨 버렸다.

그리고 강하 기갑사단은 창설만도 모자라서 지속적인 지원을 펼친 결과 

창설 당시부터 독일 사단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데다가 

전쟁 말기에 가면 2개 사단을 거느린 기갑군단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로써 육상으로 투입되는게 공중에서 투입되는 일 보다 많아진 독일 공군은 

중전차와 기갑장비로 중무장한 기갑사단을 거느리게 되었다. 

현대에도 공군에서 장갑차와 중화기로 무장한 부대를 운용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괴링의 강하 기갑사단과 같이 그렇게 큰 규모로 운영하지 않는데다가 

거의 대부분 기지 방어 임무를 맡는 형태라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도가 지나친 것이었다. 

괴링의 강하 기갑사단은 그나마 모체인 공수부대가 원체 정예인데다가 훈련과 장비도 충실하여

그러했었던 희안한 군편제적인 상황하에서도 

헤르만 괴링의 강하전차 사단은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전선등의 

여러 전투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독일군 단위 부대중 헤르만 괴링의 강하기갑사단이 

연합군에게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힌 부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괴링 강하 기갑사단의 존재는 독일 육군과 공군의 반목을 심화시키는 원인만 되었다.  

하지만 괴링의 강하기갑사단은 전공을 잘 세우는 정예병력이라서 독일 육군은 참아넘겼다.

 하지만 독일 육군과 다른 부처에서는 괴링의 가와기갑사단이 공군 자체의 인가 병력보다 

더 많은 잉여 병력이 놀고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에 따라 헤르만 괴링은 자기 휘하 병력의  인원을 포기하기가 싫어서

 무늬만 지상사단인 다수의 공군 야전사단을 창설하였다.

즉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및 공수부대 팔슈름야거및 강하기갑사단인 팔슈름 팬저및

공군 야전사단들은  헤르만 괴링의 지배욕에 의한 사병이었던 셈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의 야심과 욕심에 의한 권력욕및 지배욕의 산물이자

제 3제국 독일의 제 2인자로써 최고권력자였던 아돌프 히틀러의 사병이었던 

군집단 SS 친위대에 대한 야심만만했던 헤르만 괴링의 반대급부에 의해 

만들어진 사병적 군집단 구축의 한 형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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