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괴인열전

아름다운 영국 스피트파이어 전투기 여성 파일럿 모린 던롭[WW2 British Beautiful Spitfire Fighter Female ATA Pilot Maureen Dunlop]

슈트름게슈쯔 2014. 4. 29. 19:41












2차 세계대전 당시 24세의 영국 여성 전투기 파일럿이었던 모린 던롭 - 1944년 




던롭이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세계에서 타이어 회사로 유명한 던롭사를 떠올릴수 있다.

던롭타이어는 1888년 공기를 넣은 타이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영국의 존 던롭에 의해 만들어진 회사였다. 

던롭 타이어 바퀴 자국이 나오는 유명한 소설도 있는데 

그것은 1904년 출판된 영국의 의사겸 추리 작가였던 아더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씨리즈의 프라이어리 스쿨(The Priory School)에서도 등장한다.

소설속에서는 실종된 소년을 찾는 황무지에 어지럽게 나 있는 자전거의 바퀴 자국으로

던롭 타이어와 파머 타이어의 바퀴 자국이이 뒤섞여 등장한다. 

그런데 타이어 바퀴로 유명한 던롭도 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로서 유명했던 던롭도 있었다.

그녀는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ATA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였던 모린 던롭이었다. 

모린 던롭은 1920년 10월 26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처의  킬 메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호주인으로 제 1차 세계 대전중 영국 왕립 야전 포병에 자원 참전을 했던 에릭 체이스 던롭 이었다.

에릭 체이스 던롭은 제 1차 세계대전 후에 영국 회사가 운영하는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농장에 고용되어

 250,000헥타 (62만에이커)에 달하는 면적의 광활한 농장에서

그의 영국인 아내 제시민 메리  윌리엄스와 같이 그곳에서 양떼를 돌보는 농장 관리인의 일을 했다.

이 부부에게는 모린외에 그 바로 밑의 동생인 딸 조안과 작은 아들 에릭이 있었다.

모린 던롭은 주로 가정교사에 의해 교육울 받았다.

이후 그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힐다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주로 많은 동물들을 농장에서 접할수 있었던 그녀는 

승마를 하면서 나중에  기수가 되기도 한다. 

에릭 체이스 던롭의 세자녀는 정기적으로 영국을 방문했는데

1936년의 휴가 때에는 모린 던롭이 영국에서 비행 교육을 받게 된다.

이후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을때 던롭에게는 아르헨티나의 비행 클럽에서

지속적으로 비행 훈련을 할수 있도록 출생증명서가 소급 발부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자 모린 던롭은 적극적인 참여로 군대 지원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ATA 에 가입 하려면 여성 조종사로서 남자 조종사의 2배에 달하는 

최소한  500시간 정도의 비행 경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후 비행 경력을 착실히 쌓은후 1942년초에 모린과 조안 자매는 

아르헨티나의 선박에 승선하여 대서양을 가로 질러 영국 본토로 향했다.

그리고 영국 항공대에 합류하여 1942년 4월 까지 스피트파이어전투기와 타이푼 전폭기와 머스탱전투기및 

웰링턴 타입의 폭격기등 모두 38종의 항공기로 800시간의 비행훈련을 마치고 

결국 3년만에 164명의  여성 조종사 중 한명으로 ATA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녀가 조종간을 잡았던 영국공군의 항공기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기종은 

나중에 하빌랜드 모스키토 전투기라고 말한다. 

그녀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것은 1944년 POST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된 사진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모린 던롭이 영국 페어리 바라쿠다 뇌격기의 비행을 마친후 조종석에서 

땅으로 내려와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미소짓은 사진인데

POST 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하는 모란 던롭의 매력적인 사진으로 인해 

전쟁으로 인해 두려움에 떠는 여성도 있지만  전쟁에 참여하여 

화려한 활약을 펼칠수 있는 여성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보여주었다.

처음에 그녀는 펠리풀 함빌의 여성 조종사들과 같이 영국 사우샘프턴 공장에서 독점적으로 

생산되는 수퍼마린즈 스피트파이어 전투기를 조종하여 중부 레스터의 인근 

영국 항공대 레드클리프 기지로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녀는 가끔 불시착을 하기도 했는데 어느날 스피트파이어 전투기가 

이륙후 조종석의 캐노피 덮개가 날어갔을때 비상 착륙을 한적이 있었고

또 다른 경우는 페어차일드 아르고스 정찰기를 비행했을때인데 

항공기의 엔진 이상으로 활주로에 불시착을 했을 때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모린 던롭은 그녀의 고향 아르헨티나로 돌아 가기 전에  

루턴의 영국항공대(RAF)에서 비행 강사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상업용 항공기의 조종사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의 인스트럭터로 일하게 된다. 

그녀 업무의 일환이었던 상업용 항공기 조종사 교육 조교의 역할은 

아르헨티나 공군에서도 의무적인 역할로서 수행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는 나중에 1969년까지 에어 택시 회사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비행을 적극적으로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1955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영국 대사관 청사에서 

루마니아 외교관 세르반 빅터 팝핀과 만난뒤 비행사직을 은퇴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모린 던롭 부부는 밀라 라쿠엔 스터드의 스터드 농장에서 살면서 

슬하에 아들 한명과 딸 두명을 두었다. 

그로부터 18후인 1973년에 가족들은 순수 혈통의 아랍 말 번식을 위해 영국 동부의 노퍽으로 이주한다. 

2003년 모린 던롭은 Guild of Air Pilots and Air Navigators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이 상을 수상한 영예스러운 세명의 여성 ATA 조종사 중의 한명이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2000년에 사망했으며 모린 던롭은  2012 년 5 월에 

노퍽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92세의 일기로 작고하였다.





photo from : Pintere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