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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WASP 여성 파일럿 수지 베인[WW2 US Air Force WASP Female Pilot Susie Bain]

슈트름게슈쯔 2014. 5. 7. 17:26



 2009년 7월 1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WASP 생존 대원들에게 미 의회의 금메달을 수여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WASP 여성 비행사들- Frances Green, Margaret Kirchner, Ann Waldner et Blanche Osborn



미국의 WASP(Women Airforce Service Pilots는 미 공군의 여성 비행사들로 구성된 부대로

 소련의 유명한 밤의 마녀 비행대와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여성들도 비행사로 활약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WASP는 Women’s Flying Training Detachment (WFTD)와 Women's Auxiliary Ferrying Squadron (WAFS)을 

통합한 부대로 민간인 중에서 여성 항공기 조종사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아예 전선으로 투입ㅈ되었던것은 아니었지만 후방의 공장에서 갓 조립된 항공기를 수송선에 선적시키기 위하여

 화물 선적 장소까지 비행하는 일이 꽤 많이 있었으며 

그 분야에 여성 조종사들을 투입해서 남자 조종사들을 바로 전장에 투입시킬 수 있게 하는것이 이 부대의 설립 목적이었다. 

WFTD와 WAFS는 1943년 중반에 통합되어 군사적인 성격의 WASP로 조직되게 된다. 




재클린 재키 코크란(jacqueline jackie cochran)




낸시 하니스 러브(Nancy harkness love)



 1941년 여름쯤에, 유명한 여성비행기 조종사 재클린 "재키" 코크란과

 테스트 파일럿 낸시 하니스 러브 라는 두 여성이 별개로 여성 조종사들이 

미육군 항공대에서 비 전투 임무분야에 종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을 했다. 

기본적인 청원의 동기는 여성 조종사들을 육군 항공대의 비전투 임무에 투입하면 

그 만큼의 남자 조종사들을 전선으로 보낼 수 있는데다가 비행기를 조종할 줄 아는 여성 조종사들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여자들도 비행기를 공장에서 출발시켜 군기지까지 

옮기는 정도의 비전투 임무는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했다.  

그런데, 당시 육군 항공대의 수장으로 보수적인 성격이었던 

헨리 H "햅" 아놀드 장군은 이 제안들을 전부 거절했다.

 ("아가씨는 남자가 털양말을 뜨게질 하거나 여자가 트럭운전수를 하는 걸 본적이 있나?"라고 대답했다.)

 아놀드 장군은 러브의 1940년 제안을 거절했고 코크랜이 여장부로 

소문난 엘레노어 루즈벨트(FDR 부인)를 통해서 로비를 거쳐서 1941년 제안한 것도 여전히 거절했다. 

 1차 세계대전에 그랬듯이 전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어찌되었건 

미국은 아직 전쟁의 중심에 있던 것은 아니었던 거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듯 하지 않자 

코크랜은 영국에 건너갔고 Air Transport Auxiliary(ATA)에 자원했다. 

여기에 자원했던 사람들 중에 미국인 여성들은 최초로 군사비행 임무를 수행했던 

미국인 여성으로 개중에는 스피트파이어, 타이푼,허드슨, 미첼, 블레님, 옥스포드 같은

 일선용 무기들을 비전투 임무에서 사용한 적도 있었으며 

이곳에서 근무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계속 ATAT에 있었고 3명이 돌아와서 미국의 WASP에 참여했다.

진주만에서 기습공격을 받고 급속도로 군대를 확장하기 시작한 미군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역시 훈련된 인력으로 시골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을 총쥐어주고 군인으로 만드는 거야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갑자기 비행기를 주고 날라고 할 수는 없었다. 육군항공대의 수송단(Army Air Force Air Transport Command = ATC)의

 윌리엄 H 터너 사령관이 당시 ATC에서 민간지원 나가고 있던 러브 양한테 감명을 받았던지 

아놀드 장군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여성 비행사들로 수송 집단을 운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리하여 "러브"를 지휘관으로 하는 WAFS가 1942년 9월에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  

한편, 1942년 여름에 인력부족을 절감하게 된 미육군 항공대는 코크랜의 여성 시민 자원조종사를 되새기고, 

그에 관해서 확인하던 중에 윌리엄 H 터너 장군이 이미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터너는 이미 수십명의 여자들을 비행기를 공장에서 비행장까지 옮기는 데 활용하고 있었고,

 전쟁 전에 "말썽장이" 코크랜을 영국으로 보내버렸던 헨리 아놀드 장군도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느낀 모양인지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이리하여 미국 최초의 여군 비행대가 코크랜과 러브의 두 선구자에 의하여 개별적으로 설립되었다. 

 WFTD는 지금의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Municipal 비행장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고 

WAFS는 델라웨어의 뉴카슬 육군비행장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으며 

1943년 8월에 두 부대가 WASP로 통합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 WASP 여성 비행사 수지 베인 - 1943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옛날 사진이 담긴 앨범을 펼쳐보는 수지 베인 - 2010년





어느덧 흰머리 소녀가 되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복을 입은 자기 사진을 들고 있는 87세의 수지 베인 -2010년 







photo from : wodumedia.com

                                        jeanmichelrihet.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