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괴인열전

독일 팔슈름야거 대원이었던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 복서 막스 슈멜링 [German Fallschirmjäger World heavyweight boxing champion Max Schmeling]

슈트름게슈쯔 2014. 4. 26. 12:29



막스 슈멜링[Max Schmeling : 1905 ~2005]







조 루이스와 막스 슈멜링의 제 1차전 시합전 계체량 측정 장면 - 1936년 






막스 슈멜링에게 패한 미국의 조 루이스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두고 벌인 조 루이스와의 경기에서 12라운드에 KO승을 거둔 막스 슈멜링 - 1936년 







막스 슈멜링에게  1라운드 TKO승을 거둔 미국의 조 루이스 - 1938년











막스 슈멜링과 그의 아내 애니 온드라 - 1934년 









아돌프 히틀러와 막스 슈멜링 




링위에서 시합전 나치식 경례를 붙이는 막스 슈멜링 - 1934년 독일 함부르크 











독일 공수부대 팔슈름야거 대원 막스 슈멜링 - 1941년 




막스 슈멜링과 그의 숙적이었던 조 루이스 





독일에서 코카콜라 음료를 홍보하는 막스 슈멜링 




막스 슈멜링과 조 루이스 





2005년 독일에서 발행된 막스 슈멜링 우표




말년의 막스 슈멜링 




막스 슈멜링의 일대기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 - 2010년








막스 슈멜링은  1930년대 세계 프로권투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세기의 선수였다. 

라디오가 대중에게 막 보급되던 시절인 1924년 프로권투 선수생활을 시작한  

막스 슈멜링은 유럽 권투계를 평정하면서 일약 독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4년후 1928년 권투의 본 고장인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30년 공석 중이던 세계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놓고

 잭 샤키와 겨루어 그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특히 1936년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4만 2천여 관중이 보는 가운데 

미국의 조 루이스와 치른 논타이틀 경기에서 루이스를 4라운드에 한 차례 다운시키고

 12라운드에 KO승을 거두며 불멸의 명성을 남겼다.   

세계권투사의 최대 영웅중의 한명이었던 별명이 [Brown Momber : 갈색 폭격기]였던  

조 루이스와 2년 뒤 치른 재대결에서 1회 KO패 당하기는 했으나 슈멜링의 명성은 바래지 않았다.

1948년 43세의 나이로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70전 56승 4무 10패의 프로 전적을 기록한 

슈멜링은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최초의 유럽 출신이자 지금까지 유일무이한 독일 출신이다. 

그러나 독일의 영웅이었던 그는 나치의 선전수단으로 이용을 당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베를린 올림픽 당시 히틀러는 나치 때문에 참가를 주저하던 미국 등 

각국의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대표단으로 슈멜링을 동원했다. 

슈멜링은 후일 이에 대해 자신이 너무 순진했었다며

 유감을 표시했으나 아무도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슈멜링의 진가는 선수로서보다 인간미에서 더욱 빛났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정권하에서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선전수단으로 이용당했으나

 끝까지 나치입당을 거부하고 유태인인 자신의 매니저를 해임하고 

체코인 아내와 이혼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등 나치에 대해 저항을 계속했다. 

그는 1938년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시작되자 2명의 유태인소년을 자기 집에 숨겼다가

 미국으로 탈출시키는 가 하면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 유태인 집단수용소에서

 유태인 친구들을 구해내고 이후에도 독일 내 유태인들 및 나치 저항자들의 은신과 탈출을 도왔다.

그에 분노한 히틀러에 의해 공수특전단에 강제로 입대된뒤 1941년 전쟁중 위험지역었던

지중해 크레타섬 공수작전에 투입되어 부상을 입었다

또한  그는 1987년 독일 스포츠 담당 기자 등의 투표에 의해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독일의 운동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슈멜링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복싱으로 번 돈으로 코카콜라 프랜차이즈 라이선스를 사들인 뒤

 큰 부를 축적한 뒤 막스 슈멜링 재단을 설립, 노약자들과 빈민들의 구제에 온 힘을 쏟았고 

특히 자신과 두 차례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조 루이스가 경제적으로 극히 곤핍한 지경에 처하자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으며 루이스가 1981년 사망하자 장례식을 치러주기도 했다

그는  95세의 나이에 까지 독일 코카콜라의 명예회장으로 활동을 했으며 

2005년 99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photo from : www.sfgate.com

                          www.ww2incol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