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세계

아랄해를 파괴시킨 소련 공산당[Soviet communist party destroyed Aral Sea]

슈트름게슈쯔 2014. 5. 12. 20:47



말라버린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 




말라버린 사막이 되어버린 아랄해를 지나는 사막의 배로 불리는 낙타 




카자흐스탄 Dzhambul 아랄해의 낙타 - 2007년 6월 17일 








중앙아시아의 아랄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건 1960년대부터였다. 

그것은 당시 공산주의 제국 소련이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한 목적에서 아랄헤로 흐르는 두 물줄기인 

아무 다리야(Amu Darya) 강과 시르 다리야(Syr Darya) 강에 댐을 쌓으면서 부터였다. 

아랄해는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에 위치했으며 주변이 사막이라 아무 다리야 강과 

시르 다리야 강에서 유입되는 물로만 호수가 유지되었지만

 소련은 목화농사용 관개용수를 확보한다고 댐을 지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 다리야 강과 시르 다리야 강에서의 물 유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아랄해의 면적은 점점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아랄해는 호수의 깊이가 카스피해처럼 깊지 않아서 물의 수위가 줄어들면 면적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당장 면적만 봐도 1998년에는 28.687km², 2004년에는 17.160km², 2008년에는 6.800km²로 줄어버렸다.

 약 50년만에 면적이 1/10로 줄어버린 것.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줄어드는 게 

위성사진으로도 명백히 보이니 2012년에는 6.800km²보다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호수가 그냥 감소하는 정도여도 문제가 있지만 이로 인해 기후 자체가 변하게 되었다는 점은 치명적이었다

마른 호수 바닥은 낮에는 끓어오르듯 뜨거워지고 밤에는 얼어붙듯 차가웠다.

 이로 인해 여름이 줄어들고 더 뜨거워졌으며 강우량이 줄어들고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의 수가 줄어들어 목화 재배에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아무 다리야 강 유역의 숲들은 황폐화되었으며 그곳에 살고 있던 각종 동물들 역시 사라졌다.

  또 다른 문제는 아랄해가 염호였다는 점이었다.

 물이 없어 점점 말라가면서 아랄해의 염도는 개발 이전보다 3배 가깝게 올라가버렸으며 

본래 호수였던 곳이 마른 곳은 소금 사막이 되어버렸다. 

소금기 섞인 모랫바람 때문에 호흡기 질환이 만연했고 

이 바람은 500km 이상 날아가 주변국 농토까지 위협했다. 

토양에 날아와 묻은 소금들을 제거하기 위해 더 많은 물을 소비했으며 

이러한 소금물들은 토양에 침투하거나 다시 아랄해로 흘러들어가 염도를 가중시켰다. 

게다가 관개시설이 열악하였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증발되는 물도 많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정작 목표였던 목화 재배량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단적인 예로 고려인들의 콜호스(집단농장)인 김병화 콜호스는 50년대~7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 정부가 지정해준 쌀과 면화 생산 목표의 두 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던 괴물같은 농장이었다. 

7개년 계획을 4개년 만에 초과달성하는 위엄을 보여주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농장은 80년대 아랄해의 사막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까지 진행되자 

생산량이 소련 평균을 밑돌 정도로 몰락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 인근의 카라칼파크인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에 독립을 요구할 재력조차도 없다고 한다. 

 또한 높아지는 염도 외에도 목화 및 쌀을 재배하기 위해 뿌려진 각종 화학 비료와 살충제는 

고스란히 아랄해로 들어가게 되었고 호수의 오염 자체도 심화되어 갔다. 

이러한 오염은 아랄해를 식수로 이용하는 지역 주민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고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아랄해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카라칼파크스탄 지역의 1989년 당시 어린이 사망률은 세계 최고였다.

 또한 서식하던 물고기가 32종에서 6종으로 줄었고 

1960년대 연 4만t에 달했던 어획량은 1970년대 1만t으로, 2006년에는 20t으로 급감했다. 

그래서 관련된 일자리 6만 개가 사라져 주민들은 도시로 떠났다.  

결국 수량이 줄어 바닥이 드러나면서 아랄해는 카자흐스탄 쪽의 북(北)아랄해와 

우즈베키스탄 쪽의 남(南)아랄해로 두 쪽이 났다. 

우즈베키스탄은 면화 산업을 유지하고 호수 바닥에서 가스와 석유를 개발하겠다며 

아랄해 재생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 상태에서 환경전문가들은 2020년에는 아랄해가 완전히 말라붙을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한 마디로 말해 죽음의 땅으로 도래한 셈이다. 

 구 소련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함께 아랄해를  2대 환경재앙으로 발생시켰다.

 이것은 산업화와 생산량 달성만을 추구하였던 소련 공산당이 저지른  대재앙이었다. 

소련은 목화를 위해 아랄해를 성급하게 개발했지만 정작 목화 재배도 실패하였으며 

아랄해와 지역 주민에게는 지옥 같은 환경만을 남겨주게된 것이다

소련 공산당의 자연 환경 파괴에 의한 대재앙으로 줄어버린 아랄해의 면적은

 1960년대와 비교하면 90~95%가량까지 줄어들다. 

그나마 세 개의 호수로 나뉘어진 상황에서 카자흐스탄 영토 내의 북아랄해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2003년부터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노력을 전개해 

시르 다리야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남아랄해는 계속 수량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북아랄해는 수량이 늘고 있다. 

그것은 카자흐스탄 쪽 시르 다리야강 강물이 말라붙은 남아랄해로 흘러가는 걸 막고 북아랄해로 유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세계은행과 카자흐스탄은 2001년부터 5년간 8800만 달러(약 1040억 원)를 들여

 말라붙은 아랄해 한중간에 쾨카랄(Көкарал) 댐을 세웠다. 

초연약지반인 말라붙은 호수 바닥에 댐을 건설하는 것이라 1분이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작은 댐인데도 불구하고 

도로도 아예 없고 어쩌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진흙탕이 되어 차량이 일체 접근할 수 없는 등

 난공사의 연속이었지만 댐이 완공되자 효과는 극적이었다. 

물의 염도(鹽度)가 바닷물 이상이었다가 원래 아랄해의 염도로 떨어지고 타지에서 

물고기를 산 채로 잡아서 아랄해에 방생하는 등의 노력으로 물고기가 늘면서 

2007년 어획량이 1년만에 100배인 2000t으로 늘었다. 

그래서 아랄해 북쪽의 항구였다가 물가까지 최대 100km를 가야 하는 내륙 도시로 변했던 아랄스크도

 물가까지 거리가 25km 정도로 줄어들었다.

 덤으로 북아랄해 주변 지역 한정이지만 날씨도 상대적으로 온화하며 

소금모래폭풍도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정부는 쾨카랄 댐 북쪽에 댐을 한 개 더 만들어서 확실하게

 아랄스크를 다시 원래의 항구도시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이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2011년의 모습은 오히려 호수가 더 줄어들었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북아랄해는 살아남고 오히려 수량이 늘었지만 나머지 아랄해는 계속 말라가기 때문이다.

 애초에 북아랄해가 살아남은 것도 성과가 매우 좋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아랄해는 두 개의 강에서 들어오는 물이 증발로 상쇄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고작 1개의 강만, 그것도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해서 

수량이 줄어든 물만 집어넣어봤자 달궈진 후라이팬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격으로

 순식간에 증발할 뿐 더 이상 호수가 마르는 것을 멈추거나 원상복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래 면적의 10%도 안되는 북아랄해만 간신히 살아남은 상황에서는 

아랄해의 대부분의 면적이었던 소금사막에서 불어오는 소금모래폭풍을 약화시키고

 일부 지역을 보호할 수는 있어도 사태를 예전처럼 완전히 원상복구할 수는 없다. 

만일 아랄해를 원상복구시키고 싶다면 다른 지역에서 대규모의 물을 일시에 끌어오는 수밖에 없는데 

주변이 사막 천지인 곳에서 그런 수자원을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애초에 주변에 다른 수자원이 있었다면 아랄해 재앙의 시초가 되는 댐을 쌓지도 않았을 것이다.






photo from : Nick Han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