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수투카 Ju87 급강하 폭격기의 1톤 폭탄에 격침된 소련전함 마라[Stuka Ju87 dive Bomber,s 1 Tonne Bomb attack Soviet Navy Battle Ships Mara sank]

슈트름게슈쯔 2014. 5. 27. 14:11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의 수투카 급강하폭격기




Ju 87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가 투하시킨 250kg 짜리 폭탄의 폭발로 파괴된 소련군의 KV-1중전차 - 1941년  




한스 울리히 루델[ Hans Ulrich Rudel : 1916 ~1982]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한스 울리히 루델은 2,530회의 임무 비행을 기록했다.

 그는 4년에 걸친 복무기간 동안 거의 전선을 떠난 적 없는 충실한 조종사 역할을 해낸 불굴의 전사였다.


한스 울리히 루델이 기록한 성과  

 

518대의 적전차 격파  

 700 대의 트럭 격파  

150 대의 대공포와 포대 격파  

100 개 이상의 다리, 철도, 벙커 파괴 , 

소련의 전함 "10월혁명" 반파, 마라(Marat)격침

  70 여대의 적 함정 격파 

임무 비행중인 적 전투기 11기 격추  


 훈장 수상 내역   


 백엽 기사 철십자장   

백엽검 기사십자장   

다이아몬드검 백엽 기사 십자장 

황금 다이아몬드검 백엽기사 십자장(8백만 독일군 중에 루델 혼자 수상)


    루델은 이러했던 성과는 독일 지상군 1만명을 포위에서 구해내는 것과 같은

 엄청난 전과를 달성한 것이라 볼수있다. 

그러나 루델도 임무도중 수차례에 걸쳐 격추된다.

 이것은 적 지상군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대공포화속을 헤챠나가야야만 

가능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루델은 총 32회 격추당했고 그때마다 꿋꿋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적의 진영에 추락하면 그속에서 헤쳐나왔다.

          루델은 총 2530회의 임무비행을 수행했다. 

그중에서 400회에 달하는 임무는 수투카가 아닌 Fw 190 전투기에 탑승해 수행했는데

 이때 적기 11기를 격추시켰다. 

적기는 2대의 La-3기와 슈트르투모빅 지상공격기였다. 

그가 임무를 수행하면서 사용해던 연료는 5,000,000 리터나 되었고

 비행거리는 600,000 Km나 되었다.

 루델이 투하한 폭탄은 1,000,000 kg (1000 톤)에 달했으며,

발사한 기관총탄수는 약 1,000,000 발에 이르렀고

20 mm 기관포는 150,000 발, 37 mm 대전차 기관포는 5000 발에 달했다.







한스 울리히 루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히틀러 






한스 울리히 루델이 수여 받은 다이아몬드 백엽검 철십자훈장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에이스였던  한스 울리히 루델




한스 울리히 루델의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에서 투하시킨 1000kg 짜리 폭탄에 대파되어 


레닌그라드 크론스타트항에 반쯤 가라앉은 소련 해군의 전함 마라 




1941년 9월 23일 레닌그라드 크론스타트항에 정박해 있던 소련 전함 마라호는 

독일 공군의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의 JU87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가 

투하시킨 1000kg 짜리 폭탄 공격을 받고 격침당했다. 

이 폭격으로 소련 해군 수병 326명이 사망하였다.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의 1000kg 폭탄 공격을 받은후 파괴된 후부의 선체를 


콘크리트로 보강하여 해안포로 활용하는 소련 해군 전함 마라  



소련 해군의 전함 마라는 1.4톤 철갑폭탄으로 완전 격침됐다고 여겨졌으나 침몰후

 하필 항구에서 가라앉는 바람에 포탑 2기가 여전히 사용 가능했다.

그래서 가라앉은 부분에 콘크리트로 응급복구를 거쳐 항구 바닷에 떠 있는 해상포대로 활용되어 

레닌그라드 포위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독일군을 괴롭혔다. 

이후 마라의 폐함은 1952년에 이뤄졌지만 격침 당시 항해능력과 동력 및 사격관제능력을 모두 상실해서 

전함으로서의 능력은 모두 상실해 버린 점을 감안할때면 격침된 것으로 인정되었다.





크론스타트 항 해군기지에서 정박해 있던중 독일 공군 수투카 Ju 87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은 소련 해군의 중순양함 키로프 - 1941년 9월 23일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에게 항복한 수투카 승무원들 -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한스 울리히 루델은 주로 소련군 전차들을 대상으로 격파시켰다.

소련의 스탈린은 그를 소련 인민 최대의 적으로 규정하고 

10만 루블의 현상금을 걸었지만 그 현상금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직전 한스 울리히 루델은 미군쪽으로 비행기를 몰고 가서 항복했다.

그러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미군에 항복했던 입장에 따라 그는 전후에 또다른 독일 공군의 에이스였던 에리히 하르트만 처럼 

시베리아로 끌려가서 전쟁 포로로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지는 않게 되었던 것이다.

 전후에는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목발을 짚고 등산가로도 활동했으며

 1965년 49세 때 21세의 독일 여성과 재혼하여 자식을 한명 두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발생했던 여러 해전들은 1차 세계대전때와는 달리

 본격적인 항공모함전을 알리는 항공모함 시대의 도래를 보여주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해군과 영국해군의 대표적이었던 유틀란트 해전처럼 

전함 대 전함과의 전투와는 달리 적함대에 대한 비행기의 공격자체가 

보편화된 성격의 전투 양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또한 일찌기 1차 세계대전 이후 대형폭격기에 의한 대량폭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와같은 형태의 공중폭격이 미래의 전쟁승패를 가늠한다던  

영국 해리슨경의 주장을 증명해주듯 여러가지 형태의 폭격과 

그에 따른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침공의 예와 일본 연합함대를 대파시킨 미드웨이 해전및 

일본 항공대의 영국 프린스 오브 웨일즈,레펄스전함 격침,영국군의 북해 틸피츠 전함 격침,

영국 항모 아아크로얄에서 발진한 소오드피쉬의 독일전함 비스마르크 공격등은

 해전의 양상이 비로소 1차 세계대전때의 상황과는 달리 비로소 항공기를 이용한

 항공모함 시대의 전투형태로 옮겨진 상황을 보여주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본의 카미카제 특공기의 250kg 폭탄으로 

미 항모 공격의 사례외에 독일의 급강하 소형폭격기 1대가 

2만9천톤급 전함을 폭탄 단 1발에 격침시킨 사례는 

독일의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 울리히 루델의 전사가 유일하다고 볼수있다.  

독일의 루프트바페 에이스였던 한스 울리히 루델 그의 자로 잰듯 정확했던 

수투카 JU-87 급강하 폭격기의 고공폭격은 단 1발의 폭탄으로 정확히 

1943년 9월 23일 소련전함 마라호를 격침시켰다.  

그러했던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 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름은 바로 

한스 울리히 루델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는 독일군 전군을 통털어 유일하게 다이아몬드 백엽검 철십자훈장을 받은자였다. 

1941년 영국령 그리스 크레타섬 공수작전때  두드러진 활약으로 

독일공군의 에이스로 인정받은 그는 1943년 북해에서 독일군의 위협거리였던 

소련해군의 마라전함 공격을 지시받는다. 

독일군은 그들의 공군 에이스 루델의 신기에 가까운 급강하 폭격술을 신뢰하여 

기존의 500kg짜리 폭탄1발을 장착시킬수있었던 수투카에

 그 무게의 2배가되는 1000kg의 폭탄을 장착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소련 해군의 마라 전함을 격침시키기 위하여  본국에서 

특별히 1000kg짜리 폭탄을 레닌그라드 후방까지 수송하여 

단 1발의 제대로된 공격에 소련전함을 침몰시키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것은 어찌보면 대단히 무모한 작전이기도 했다. 

전투기와는 달리 속력이 느린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에 한계 적재중량의 2배가 되는

 폭탄을 실었을때 급강하 공격시 내리 치닫는 그속도 또한 위험스러운 입장으로 배가 된다. 

즉 급강하시 정확한 폭탄투하 시점을 놓치게 되어버렸을때 잘못하면 

그 폭탄 무게로 인한 급속한 급강하 가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리꽂혀 카미카제 특공기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공격은 비상한 조종술을 가진 파일럿이 아니면 

수행하기 대단히 어려웠던 작전이었다. 

그러나 루델의 능력을 전폭적으로 신뢰한 독일 공군은 

한스 울리히 루델의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에 1000kg의 폭탄 1발을 장착시켜 

결국 레닌그라드 크론스타트 항구에 정박해있던 마라전함을 격침시킨다.

 이 성과로 인하여 한스 울리히 루델의 존재는 단숨에 

일약 독일의 공군의 영웅이자 독일군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했던 한스 울리히 루델도 또다른 소련 마라 전함의 자매함 

10월 혁명호는 격침시키는데는 실패한다. 

그는 이후 동부전선의 전투에서 수투카 급강하폭격기에 의한 소련전차 킬러로서의 명성을 떨친다.

 한스 울리히 루델은 종전까지  2000여대의 육상 목표물을 명중시킨바있다.

 그중 800여대의 트럭및 장갑차량과 519 대의 탱크와 150문의 대포를 파괴시키는 성과를 올린바있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개전이후 시간이 점점 흐르는 가운데 

이미 구식화된 무기가 되어버린 저속의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로도 

그많은 성과를 올린 것을 보면  그의 대단한 급강하 비행술을 엿볼수있다.   

 한스 울리히 루델은 전쟁말기에 전투중 한쪽 다리가 절단되었으나 

그러한 몸으로도 종전까지 전투 비행을 계속한다.

 이같은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조종사들의 투지는 

히틀러와 나찌스를 위한 전투라기보다도 전쟁 막바지 연일 계속되는 

독일 여러도시들에 대한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인한 

독일국민들의 대량살상을 저지시키기위해 필사적으로  

연합군 폭격기들을 막았다고 그들은 후일담으로 술회한바 있다.




photo from : worldwar2daybyday.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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