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考古學]

항조우를 점령하여 진희와 왕씨 부인의 동상을 보는 일본군[Hangzhou occupied by the Japanese army to see the statue of Jin Hee & his wife Wang]

슈트름게슈쯔 2015. 9. 16. 17:41



중국 항조우를 점령하여 마을에 놓여 있는 악비 장군을 모함한 간신 진회와 

그의 부인 왕씨의 꿇어앉은 석상을 보며 웃는 일본군 -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이 석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수가 없다.









중국 항조우 악묘의 악비 장군 기념관 


 



악비는 중국인들에게 중국사에 있어 영웅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일단 가장 먼저 나올 인물이다.

  악비는 중국 북송 말기의 무장으로 금나라에 대항해 싸웠던 남송의 명장으로 

 자는 붕거(鵬挙).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흔히 악왕(鄂王)이라고 일컫는다. 

악비는 그가 태어날 당시 황하가 범람해 그의 아버지 악화는 익사하고, 

그의 어머니 요부인은 악비를 안은채 커다란 바구니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았다고 전한다. 

그 후 큰 매가 지붕위에 앉아서 이름이 비(飛)가 되었다고 한다.  

북송이 멸망할 무렵에 의용군을 조직해 금나라에 항거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남송에서 장군이 되어 악가군을 조직해 수많은 무공을 세운 명장이다.

 얼마나 강했는지 금나라 병사들은 '태산을 움직이는 건 쉽지만 

악비의 군사를 움직이기는 어렵다.'라고 할 정도였다.  

악비는 악가군을 이끌고 금나라 군대를 여러 번 쳐부수고 낙양과 정주 등을 회복했다. 

또 악비는 북송의 수도였던 개봉에서 불과 40여리 떨어진 주선진까지 점령했다. 

이 때 금나라 대장 올술은 여러번 패전하자 개봉을 버리고 퇴각하려고 했으나, 

한 문관의 만류로 개봉을 끝까지 수비한다. 

그 문관은 올술의 말고삐를 잡으며 "예로부터 간신이 조정에서 전횡하면 

외지에서 아무리 능력 있는 장군도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곧 송나라 내부에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올술은 문관의 말을 들었다.

  악비는 원래 술을 좋아했지만 전쟁시에는 이를 금했다. 

그러나 금나라 수도 근처의 황룡부까지 진격하면 병사들에게 

거나하게 먹자고 약속하고 다음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과 화친해야한다는 온건파의 거두 재상 진회와 여러 차례 마찰을 겪었는데, 

북송이 멸망한 뒤 북쪽에 있던 한족들은 여진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남송인의 일부는 여진족과 싸워 국토를 회복해야한다는 의견이 들끓었으며 

악비는 그 주전파의 대표격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송황제 고종도 진회쪽에 더 기울어져 있던 터라 그를 12번이나 불러 

소환시키고 악비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로 감옥에서 처형당하고 만다. 

죽기 전에 유언으로 "나의 결백한 마음은 하늘의 태양처럼 밝을 것이다."라 하였다 한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는데, 

일설에는 살가죽을 벗겨 죽였다고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독살 당했을 것으로 본다.  

이때 악비의 전우이자 또다른 주전파인 한세충이 "악비의 죄가 무엇이오?

"라며 따지자 진회는 "아마 있을지도 모르오"(막수유, 莫須有)라고 대답했고

 한세충은 "그 세 글자로 천하가 납득하겠소이까!"라며 한탄했다 한다. 

그의 시체를 진회가 훼손할 것을 두려워한 옥지기가 악비의 시체를 자신의 집에 묻었고,

 자신이 죽을 무렵 아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후에 악비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져, 악비의 묘는 크게 지어졌고 

커다란 동상도 만들어지게 되어 악왕묘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매국노 진회는 그 부인 왕씨, 묵기설, 장준과 함께 무릎 꿇고 있는 

동상이 만들어져 악비 동상 앞에 놓이게 된다. 

아내의 동상까지 만들어진 것은, 진회조차 죽이기를 주저할 때 

아내의 재촉으로 처형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도 부부에게 침을 많이 뱉어서 지금 악왕묘를 가보면

 동상에 침을 뱉지 말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근데 사람들이 아직도 싫어하는지 침이나 쓰레기 투척은 예사고 오물 투척도 툭하면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섭다는 공안이 이런 오물 투척을 한 사람을 폭력을 안 쓰고 

팔짱 끼고 끌고간 것을 보아 아마 정부에서도 워낙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 적당히 봐주는 듯 하다.





악비를 모함하여 죽게한 간신 진희와 그의 부인 왕씨의 석상 





악비를 모함하여 죽게한 간신 진희와 그의 부인 왕씨의 동상 




간신 묵기설과 장준의 동상



중국 항저우의 악묘는 남송의 명장 악비를 기리는 사당이다.

관우와 더불어 악비는 중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장군이다.

12세기 금나라에 의해 수도 카이펑을 함락당한 송나리는 수도를  항저우로 옮기고 남송 왕조를 건국한다.

평소 오량캐라 얕보던 북방민족에게 수도를 빼앗긴 중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업었는데

 다행이 명장 악비의 활약으로 빼앗긴 땅의 일부를 찾는다.

이미 온백성의 영웅이 된 악비는 여세를 몰아 금나라를 몰아내자고 주장하지만 

강력한 현실론자이던 재상 진회의 반대로 인해 번번이 고배를 마신다.

주전파와 화의파의 정면충돌은 병약한 황제에 의해 화의파의 승리로 끝나고 악비는 처형당한다.

만약 악비의 주장대로 금나라와 일전을 벌였을 때 남송이 이길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은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화두였을 정도로 중국인들에게 아쉬운 사건이다. 

악묘 내부에는 악비를 기리는 기념관과 가묘가 조성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가묘 근처에 악비를 모함하여 죽음으로 이끈 

진회와 그의 부인 왕씨의 꿇어앉은 동상이 있는데 

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그것을 보며 침을  뱉고 지나간다.

중국 문화재 당국에서도 제발 침 좀 뱉지 말라고 호소하는 듯 간판을 붙여 놓았지만

 중국인들은 그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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