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아돌프 히틀러의 정치 선전술이었던 빈약한 식사 테이블[Adolf Hitler political propaganda poor table]

슈트름게슈쯔 2015. 9. 27. 17:42

 



전선을 방문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독일군 장교들의 채식 식단 점심 식사  - 1940년




히틀러와 나치 선전상 요셉 괴벨스및 나치 장교들의 채식 식단 정찬 - 1945년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주치의 테오도르 모렐및 나치 폴란드 단치히의 지방장관 알베르트 포스터의 처

거투르드 디츠(Gertrud Deetz)와의 진수성찬이 아닌 빈약한 테이블 식사후의 티타임   - 1939년 오베르잘쯔베르크



이제까지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히틀러의 식사 테이블은 언제나 채식위주의 식단이었다. 

이것은 히틀러가 육식에 대한 식탐이 없음을 국민들에게 선전하는 고도의 정치 선전술이기도 했다.  

역사속 인물중에서 독일의 제 3제국 시절 아돌프 히틀러의 곁에서

물방울 무늬의 핑크빛 블라우스를 입고

손바닥을 맞대며 오베르잘쯔베르크의 히틀러 별장 접견실에서

환희에 젖어있는 어떤 독일 여성을 대하게 된다.

그녀는 바로 나치의 악명 높았던 폴란드 단치히 지방장관

알베르트 포스터의 처 거투르드 디츠(Gertrud Deetz)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임박시 알베르트 포스터는 소련군대의 공격을 피해 

영국군의 점령지역으로 피난을 갔다.

하지만 이후 연합군에 의한 나치 전범들의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그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의 탄원서에 의해 국립재판소의 형 집행은 1948년 끼지 지연되면서

그는 그단스크 모코토우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4년뒤 폴란드의 대통령은 유대인  대량 학살 인종 범죄의 주범이자

 나치의 단치히 지방장관 알베르트 포스터의 사면을 거부했다.

알베르트 포스터는 1952년 2월 21일 그단스크(단치히) 모코토우 형무소에서

바르샤바로 이송된 뒤 2월 28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처 거투르드 디츠(Gertrud Deetz)는 2년후 1954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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