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히틀러의 시식(試食)시종(侍從) 여성이었던 마고트 뵐크[Margot Woelk was Adolf Hitler's female food taster]

슈트름게슈쯔 2015. 9. 27. 20:19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애인 에바 브라운

 

 

 

 

아돌프 히틀러와 시식 시종 여성

 

 

 

 

젊은 시절의 마고트 뵐크

 

 

 

 

 

아돌프 히틀러의 음식 시식 시종 여성이었던 마고트 뵐크-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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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제 3제국 시절 나치 독일에는 고대 제국 황제들의 수랏상 시종들과 마찬가지로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를 감별하기 위해 먼저 먹어보는 시식 시종이 존재했다.

히틀러는 항상 독살을 당할것을 두려워 하였다.

그래서 히틀러는 독일 여성으로  시종 15명을 두어 삼시 세끼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자기가 그 음식을 먹기전에

시종 여성들에게 음식을 먹어 보게 하였다.

마고트 뵐크라는 여성은

  독살 당할 것을 두려워한 히틀러가 삼시 세끼 독이 들어 있는지

음식을 먹어보게 한 독일 여성 15명 중의 한명이었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마고트 뵐크 할머니는 2015년 올해로 나이가 97세이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했고 슬하에 자식은 두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련군의 폭력으로 인해 아이를

영원히 갖지 못하는 석녀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기구한 운명의 탓이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을 가졌었다.

그녀의 남편이 1941년 징집당하고 집이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후

 친정 근처로 피신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히틀러가 은신해 있던 동부 기지 근처에

어느 날 들이닥친 나치의 친위대가 매일 차량으로 출퇴근을 시켰다

그것은 회전식 연발 레볼버 권총에 총알 1발을 넣고 원형 탄창을 돌린뒤

총구를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룰렛 게임과도 같았다.

그녀는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오늘은 내가 죽는것이 아닌가 두려워 했다.

그러곤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감사에서였다.

2차 세계대전 말기 1944년 일단의 독일군 장교들이 히틀러의 은신처 안에서

폭탄을 터뜨려 암살시키려 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뒤에는

 수용소에 가둬놓고 더욱 철저히 감시했다.

 어떤 친위대 장교가 도와줘 그녀는 베를린으로 도망을 갔지만

이후 그녀의 운명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1945년 4월 베를린은 소련군(軍)에 점령당했다.

강간은 전쟁 도구라는 스탈린의 명령을 받은

소련 군인들을 피해 할머니처럼 옷을 꾸며 입고 숨어 있었지만

 어느 날 그녀는 소련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감금당한채 무려 14일간 밤낮으로 강간을 당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소련군 병사들은 그녀의 옷을 찢어발겨 끌고 다니며 온갖 짓을 다했다.

그로인해 그녀는 자궁이 파열되어 나중에

아이를 낳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것이다.

 1년후  1946년의 어느 날 행색이 초라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의 남자 한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 그 남자가 누구인지 거의 알아볼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는 전쟁통에 죽음은 면했지만 소련군에 잡혀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고초를 심하게 겪은후 삐쩍 마른 45kg의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몇년 후 남편은 그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전쟁 통에 겪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녀에게서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그녀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이후에도 남편은 그녀를 아끼며 45년을 함께 살다 떠났다.

그녀는 100세를 앞둔 지금까지 소련군에게 윤간당한 그 14일간의 악몽을 밤낮 꿈꾸고 있다.

 

 

 

 

photo from : www.dailymail.co.uk

                  www.telegraph.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