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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에게 학살된 폴란드 19세 여성 체슬라브 소렉카 - Polish 19 years old girl Czeslaw Solecka murdered by the UPA

슈트름게슈쯔 2016. 5. 29. 23:52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UPA) 세력에 학살된 19세의 폴란드 여성 체슬라브 소렉카 

- 1946년 9월 10일 폴란드 로드지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 (UPA)은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한 일련의 게릴라전에 

참가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준군사 조직이었자 후기 당파 군대였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 (UPA)은 소련, 체코슬로바키아의 지하 조직및 

공산주의 폴란드의 지하 조직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단체 반데라 당파(OUN-B)와

  우크라이나 국가 애국전선에서 형성된 다른 무장 세력과 우크라이나 보조 경찰의 이탈자와

동원된 지역 주민들과 분리된 무장 세력 조직등에서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단체 반데라 당파(OUN-B)는 반군의 정치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볼리니아 지역과 동부 갈리시아에 거주했던 폴란드인 학살의 주범이었다. 

공식적인 단체 창립  날짜는 테오 토스 축제일인  1942년 10월 14일이었다. 

1941년 12월에서 1943년 7월까지 우크라이나 인민 혁명군

(Ukrainian People's Revolutionary Army)은 (UPA : Ukrayins'ka Povstans'ka Armiya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와 같은 성격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OUN의 즉각적인 목표는 우크라이나 소수 민족들의 영토에 대한 

통합적이고 독립적인 단일 민족국가의 재설립이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  사회 집단 조직은 저항 단체로 시작하여

게릴라 군대로 발전했다. 

1943년  UPA는 OUN (B)에 의해 통제되었고 다양한 정치적 이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었다. 게다가 독일과 소련에 대항하는 대중의 지지가 필요했다. 독재라는 개념을 포함한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대부분은 공산당의 독재 정권을 경험한 구 소련 시민들에게 호소하지 않았다. 따라서 OUN (B) 이데올로기와 정치 프로그램의 개정은 필수적이었다. OUN (B)은 1943년 8월 21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제 3 회 특별 총회에서 러시아와 볼셰비키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국제주의와 국수주의적 국가주의 - 사회주의 계획과 정치 개념"을 비난하고 "자유 민족과 독립 국가 체제 세계 질서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 "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의 사회 프로그램은 이전의 것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지만 광범위한 사회 서비스와 경영자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와 혼합된 경제, 직업과 직장의 선택, 자유 노동 조합을 강조했다. OUN (B)은 언론 및 사상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음을 확인했다.그리고 우크

라이나를 위한 우크라이나"란 획일적인 슬로건의조기 국적 정책은 국가 소수 민족의 권리를 위해 폐기되었다.

 

독소전쟁 중반기였던  1943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UPA)은 

소련 공산군 부대와의 전투에서 독일군과 많은 협력을 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빨치산 병력이 지속적으로 운용되었던 동안 

그들은 폴란드와 소련군을 주적으로 삼아 싸웠다.

그리고 1943년 2월부터는 독일군과 싸웠다. 

1944년 봄부터 UPA와 소련의 동부전선 진격에 직면 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기구 B (OUN-B)는

 일시적으로 소련과 폴란드에 맞서 싸웠고 

독일군과 협력하여 우크라이나 독립 국가를 창설하기를 희망했다. 

또한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기구(OUN)는 볼리니아와 

동 갈리시아의 폴란드인 인종 청소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폴란드 남동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인의 추방을 막았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 인민군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UPA)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싸웠다. 

그와 반대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UPA) 세력은  1947년까지 

폴란드 인민 공화국과 맞서 싸웠고 1949년까지 소련에 대항해서 싸웠다. 

근대 우크라이나 서부의 카르파티아 산맥지역과 갈리시아 지역 전체및 

볼리니아 지역에서 특히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번군 세력의 결집은  강성했다.

 1940년대 후반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우크라이나 저항 세력과 싸웠던 

소련 군대의 사망률은 냉전기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 동안의 사망률보다도 높았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UPA)은 

반 나치 저항 운동중에서도

 외국에서 중요한 군수물자의 지원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독특했다.

그러했던 서부 우크라이나인 저항의 원동력은 국수주의적 성향에 의한 

타민족 배척및 동족 보호 기질이 강력하게 반영된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