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수경선생 사마휘 - 水鏡先生 司馬徽

슈트름게슈쯔 2017. 12. 21. 16:33





인생을 살다보면 주변에서 수경이란 이름을 지닌 인물들을 가끔 접할수가 있다.

그때마다 수경이란 이름이 들어간 인물중에 단연  수경선생(水鏡先生) 사마휘(司馬徽)가 

뇌리 속에 바로 떠오르게 된다.

아마 그것은 삼국지(三國志)를 여러번 읽어본 효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의 수경은 세계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중국 원나라때의 천문학자였던 곽수경(郭守敬)이다.

삼국지속에서 유비가 채모의 계략에 빠져 죽기 직전 적로라는 말과 함께

 단계라는 강을 건너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최악의 죽을 고비를 넘긴 유비에게 피리소리와 함께 동자가 소를 타고 나타난다.

 유비는 동자의 사부 수경 선생 사마휘를 만나기 위해 동자를 따라간다.

 사마휘는 동양화 속의 초당 같은 곳에 살고 있었다. 

유비는 가서 아뢰라고 동자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사마휘는 이미 방문객의 출현을 알고 있었다.  

방문객이 유비임을 확인한 사마휘는 반갑게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러자 유비의 신세한탄이 한동안 이어진다. 

결국 유비는 사마휘로부터 와룡이나 봉추, 그중의 한 명을 얻는다면

 천하는 손바닥에 있다는 귀중한 충고를 듣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유비는 조자룡에게 구출돼 신야의 성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사마휘가 찾아오는 바람에 다시 만나게 된다. 

유비가 곧 와룡, 즉 제갈량을 만나러 갈 예정이라고 말하자 

사마휘는 하늘을 보며 “아, 와룡 선생. 그 주군을 얻었다 해도, 

안타깝게도 그 때를 얻지 못했구나! 

그 때를 얻지 못했어!” 외치고 표연히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 속에서는 뛰는 제갈량 위에 나는 사마휘가 있었다.

사마휘는 당시 제갈량이 유비와 손을 잡더라도 

삼국통일은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물론 천문을 본 것이다. 

 제갈량은 자기가 삼국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몰랐다. 

그래서 ‘출사표’를 올리고 수명 연장을 시도하면서까지 출정했던 것이다.

 사마휘는 제갈량보다 훨씬 단수가 높았다. 

바로 뛰는 제갈량 위에 나는 수경선생 사마휘가 있었다.

나중에 사마휘와 같은 성씨의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사마염이 있다.

사마휘는 자기 집안 사마씨 가문에서 삼국통일을 이룰 것도 미리 알고 있었을것이다.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의 할아버지가 바로 사마의 사마중달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만들다 라고 할 때 중달이 바로 사마의이다.  

‘삼국지’ 어디에도 사마의와 사마휘 두 사람의 관계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사마의가 조조의 아들 조비의 신하였으니 나이로 보면 

사마휘의 조카뻘 아니면 손자뻘이었을 것이다.

 아마 사마의는 사마휘에게 천문을 배웠을 것이다. 

사마의의 두 아들은 곧 사마사와 사마소이고 사마염은 사마소의 아들이다. 

그렇다면 사마휘가 삼국통일에 개입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든다.  

사마의로는 역부족 으로 경륜이 수경선생 사마휘 정도는 되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수경선생 사마휘 정도 인물이면 속세 일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경선생 사마휘는 감정능력 및 인재발굴 능력에 특출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유비가 서서(徐庶)가 조조(曹操)의 가짜 편지에 속아 조조에게 떠나며 

제갈량을 알려 주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을 때 서서가 가지 않았으면 

서서의 노모가 무사했을 거라며 한탄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그 후에 서서의 노모는 아들에 대한 실망감과 조조에 대한 분노로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수경선생 사마휘는 형주 자사 유표가 죽은 후 조조가 형주를 점령했을 때, 병으로 죽었다.  

그의 제자로는 서서, 제갈량, 방통이 대표적이며, 최주평, 석도, 맹건 등도 제자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삼국지연의]상의 허구이며, 

그들은 제자가 아닌 그저 그에게 인정받은 인재들이라고 한다. 

이선과 윤묵은 형주 유학 시절에 사마휘, 송충 등에게서 수학하였다.  

 삼국지연의 속에서 그는 누구의 말에도 항상 ‘좋다, 좋아!’라고 대답을 해서, 

‘호호선생(好好先生)’이라는 별명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