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세계

베트남 하천의 돌무더기 어복포(魚腹浦 )메기 잡이

슈트름게슈쯔 2019. 8. 17. 14:31









베트남 하천의 돌무더기 어복포(魚腹浦 )메기 잡이 -2019년 7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속 제갈량의 어복포(魚腹浦) 계책은 허구이다. 

 

오나라 동정에 나선 유비는 오반(吳班), 풍습(馮習)을 선봉으로 삼고 무현을 방어하고 있던 

이이(李異), 유아(劉阿)를 물리치고 자귀까지 전진한다. 

그 후에 황권의 권고를 무시한채 몸소 대군을 이끌고 장강 남안에서 산을 따라 동진했다. 

장무(章武) 2년(222) 이월에 촉군은 효정까지 전진하여 진영을 구축했다. 

촉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고 군사력도 막강했다. 

오의장수 육손(陸遜)은 강공으로 대항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우선 일보 후퇴하여 촉을 제압하는 작전을 세웠다.

 유비는 육손의 이러한 작전을 유념하지도 않고, 이릉의 동서쪽 전선에서 본영에 맹공을 가했다. 

 육손은 견고하게 지키기만 할뿐 싸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쌍방은 6,7개월 동안 계속 대치했다. 

촉군은 전투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헛되이 시간을 보내게 되어, 

군량미의 공급이 곤란해진 데다 더위로 병사들의 사기는 나날이 떨어졌다. 

여기에서 유비는 수륙병진의 유리한 조건을 포기하고, 배를 버리고 산속에 요새를 구축했다. 

반격의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 육손은 모든 군사를 이끌고 일제히 공격에 나서, 

촉군의 사십여 요새를 연속하여 함락시켰다.  

유비는 패잔병을 이끌고 백제성으로 도망쳤다. 

연의 제84회에는 제갈량이 교묘히 팔진도(八陣圖)를 설치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갈량은 서천으로 들어가면서 봉절(奉節)의 어복포(魚腹浦)에 오군의 침공을 막기 위한 석진을 펼쳐 놓았다. 

이 석진, 곧 팔진도가 있으면 언젠가 오의 대장이 여기에 들어와 헤매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유비가 이릉에서 대패하여 퇴각하자, 육손은 기문관(지금의 사천성 봉절) 부근까지 추격하였다.  

육손이 보아하니 전방의 장강 연안에서 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촉군이 기다리고 있는 것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솔하게 나아가려 하지 않고, 서둘러 정찰병을 보냄과 동시에 군사를 후퇴시켜 적에게 대비했다. 

이윽고 정찰병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전방에는 촉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복포 일대에 돌산이 팔구십 개 흩어져 있을 뿐입니다."  

육손은 너무 이상하여 몸소 수십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전방에 있는 산의 경사면에 올라 관찰했다.

 산에 올라 보니 사방 팔방에 돌산이 흩어져 있고 각 방위마다 입구가 있어 통행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육손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건 도대체 뭔가? 돌산으로 놀라게 하여 물러서게 할 작정인가?' 

 육손은 몇 기의 병사를 이끌고 석진안으로 들어가 관찰했다. 

한동안 둘러보았지만 특별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때 한 부장이 말했다.  

"이제 해도 저물었습니다. 빨리 본영으로 돌아가십시오." 

 육손이 진을 나오려고 하자, 갑자기 광풍이 일어나고 모래와 돌이 천지를 뒤덮을 듯 날렸다. 

괴석(怪石)은 검처럼 우뚝 솟고, 모래나 흙이 산처럼 겹겹이 쌓이고,

 성난 파도가 으르렁대며 천군만마와 같이 습격해 왔다

. 육손은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제갈량의 계략에 빠졌다."  육손이 진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이때 제갈량의 장인인 황승언(黃承彦)이 나타나 길을 안내하여 겨우 탈출할 수가 있었다.

 육손은 그제서야 이 석진의 형태가 팔진도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해서 육손은 황승언에게 예를 올리고 군사를 돌이켰던 것이다. 

 그럼 육손은 정말로 제갈량의 팔진도로 곤경에 처했던 것인가?  

삼국지 정사의 [유비전]과 [육손전]에 의하면 유비가 백제성으로 도망치자, 

오군의 장수인 서성, 반장, 송겸 등은 추격하여 

유비를 생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육손은 이이, 유아의 소부대로 한동안 추격하게 하였을 뿐, 

대부대는 위의 침공을 막기 위해서 재빨리 후퇴시켰다. 

 애초에 육손이 유비를 추격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제갈량의 팔진도에 혼나는 따위의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원대의 [삼국지평화] 속에 이미 제갈량이 여덟개의 돌산을 이용하여 육손을 격파한 간단한 이야기가 있다. 

원대에는 [제갈량이 돌로써 육손을 항복시키다]라는 제목의 잡극도 있는데,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복현의 현성은 전한때에 설치되었고 파군에 속했다. 공손술(公孫述)이 촉을 차지하고 있을 때에

 백제성이라고 개명하고, 유비때 다시 영안성이라고 개명하였다.

 원래 이 성은 지금의 사천성 봉절현 백제산성에 있었다.  

육손이 곤경에 처했다는 팔진도는 성의 서쪽 어복포에 있는데 사람들이 수팔진(水八陣)이라고 불렀다. 

유비가 수팔진의 동쪽 백제성으로 후퇴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육손이 만약 촉군을 추격했다 해도 우선 백제성을 넘기 전에 수팔진에 이를 수가 없다.   

당시에는 백제성을 넘기전에 수팔진으로 가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따라서 제갈량이 교묘하게 팔진도를 설치하여 육손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것은 단순한 전설일 뿐이다. 

어복포는 소설가 나관중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인하여,

 수백년 동안 그것을 진짜로 받아들인 그 지방 사람들이 여러가지 전설을 남긴 것이다.